소풍

amawriter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소풍


하늘은 너무 맑고 예뻤어요. 색색깔의 깃발들이 빼곡이 걸렸고 새가 노래하는 소리와 형 누나들이 떠드는 소리, 그리고 갖가지 놀이기구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했어요. 내 또래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무언가가 들려 있었어요. 토끼를 닮은 머리띠, 옅은 분홍빛의 솜사탕, 나무 젓가락에 끼워진 핫도그, 여러 가지 색깔의 풍선들. 그리고 고소한 치즈 냄새와 싱그런 풀냄새가 봄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어요.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에 하이얀 구름이 몇 점 수놓여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 아이인가가 놓쳐버린 은색 풍선 하나가 하늘거리며 땅에서 멀어지고 있었어요. 고개를 젖히고 그 풍선을 눈으로 쫒았어요. 햇빛을 받은 은색 풍선이 빤짝 하고 빛을 발하고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어요. 잠깐 눈을 감았다 떴어요. 은색 풍선은 별로 위치를 바꾸지 않고 조금 더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팝콘 냄새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어요. 그때까지 거의 수직으로 오르던 풍선이 비틀거리며 방향을 바꾸었어요. 바람을 맞은 풍선은 춤추듯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풍선을 쫒아 갔어요. 사람들과 몇 번인가 부딪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풍선만을 쫒아 갔어요. 풍선은 점점 더 작아졌고 더 이상 쫒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점이 되어 하늘 위로 사라졌어요. 다시 또 현기증이 났어요. 눈을 감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눈을 떴어요. 여전히 맑고 파란 하늘이 보였어요. 그런데 엄마가 안 보였어요. 나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어요. 엄마가 없어요. 까치발을 하고 주변을 살폈지만, 엄마의 모습은 없었어요. 엄마 아닌 사람만 너무 많았어요. 사람들에 가려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요.

“엄마”

몇 번이고 불러봤으나 엄마는 없었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자 했으나 어디서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어요. 여기 저기 엄마를 찾아 돌아 다녔어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 가려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요. 폴짝 폴짝 뛰어도 보고, 이리 저리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녀봐도 그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어요. 내 키가 너무 작아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다리가 아주 아주 길고, 빨간 코에 하얀 얼굴을 한 아저씨가 보였어요. 나는 그 아저씨에게 달려갔어요.

“아저씨, 엄마가 보이지 않아. 엄마 좀 찾아 줘.”

그 아저씨는 아주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 봤어요. 다시 한 번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현기증이 났어요.

“엄마를 잃어 버렸니?”

“응. 엄마 좀 찾아 줘.”

“너, 이름이 뭐니?”

“동훈이.”

“몇 살이니?”

“6살.”

아저씨는 엄마를 찾아줄 생각은 않고 묻기만 했어요.

“아저씨, 엄마 좀 찾아줘.”

내가 다시 한 번 부탁을 했어요.

“엄마가 어떻게 생겼니?”

“응,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뻐.”

“엄마는 몇 살인데?”

“몰라”

“엄마 전화번호는 아니?”

다시 질문만 하기 시작했어요.

“몰라, 엄마 좀 찾아 줘. 나는 키가 작아 안보여. 아저씨는 키가 커서 잘 보일 거잖아. 엄마 좀 찾아줘.”

“나는 너희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 주니?”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니까. 여기 저기 좀 둘러봐봐.”

“내가 둘러본다고 너네 엄마를 알 수가 있니?”

그러면서 아저씨는 그 긴 다리를 접으며 내 앞에 쪼그려 앉았어요.

“그럼, 네가 내 목에 올라타고 찾아 봐.”

“응.”

나는 아저씨 목을 타고 앉았어요. 그리고 아저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섰어요. 아저씨는 정말이지 컸어요. 다른 어른들의 2배는 되는 듯 보였어요. 그런 아저씨의 목을 타고 앉으니 주변이 아주 잘 보였어요. 한참을 둘러보았으나 엄마는 없었어요. 엄마 비슷해 보이는 사람은 많았으나 정작 엄마는 없었어요.

“없어, 아저씨.”

“안 보이니?”

“잘 보이기는 하는데, 엄마는 없어.”

“엄마를 어디서 잃어버렸니?”

아저씨가 다시 물었어요.

“몰라.”

“어느 쪽에서 왔는지도 모르겠어?”

“응, 몰라.”

“그럼 여기 저기 돌아 다녀보자.”

“그래.”

아저씨는 나를 목발을 태운 채 사방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나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려고 목까지 쑥 빼고 살폈으나 끝내 엄마는 보이지 않았어요.

“없니?”

“응, 없어. 아저씨, 저리로 좀 가봐.”

“그래.”

아저씨는 내가 가리키는 쪽으로 옮겨 갔어요. 하지만 엄마는 없었어요.

“아저씨, 이번엔 저쪽으로 좀 가봐.”

“그래.”

그렇게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으니 엄마는 없었어요.

“우리, 좀 쉬었다 다시 찾자.”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나를 목말 태우고 꽤나 오랫동안 돌아 다녔어요. 힘이 들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나와 아저씨는 한쪽 구석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았어요. 아저씨는 그 긴 다리를 앞으로 쑥 뻗어야만 앉을 수 있었어요.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내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어요. 그리고 멋쩍은 듯 한 번 웃고는 다시 물었어요.

“너네 집 주소나 엄마 이름도 모르니?”

“응, 몰라.”

“엄마랑 둘이 왔니?”

“응.”

“형이나 누나, 아빠는 안 오셨니?”

“그런 거 없어.”

“그럼, 엄마랑 너랑 둘이 사니?”

“응.”

“여기 올 때, 어떻게 왔니?”

“버스 타고, 또 전철 타고.”

“그랬구나.”

그리고 아저씨는 말이 없었어요. 나도 입을 닫고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혹시라도 엄마가 보일지 모르잖아요. 하지만, 역시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때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뒤에 있는 나무가 눈에 띄었어요.

“아저씨, 저 나무에 올라가 보자. 높아서 엄마가 보일지 모르잖아.”

“그래, 그러자.”

아저씨가 불편한 자세로 벤치에서 일어섰고 나도 일어섰어요. 그리고 아저씨는 다시 나를 목말태워 주었어요.

“여기 저기 잘 살펴 봐.”

“응.”

한참동안 사방을 살펴봤지만 역시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나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아저씨 목에서 내려왔어요.

“없어?”

“응, 없어.”

아저씨와 나는 또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이예요. 새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맑고 예쁘던 하늘에 흰색 구름이 좀 더 많아져 있었어요. 여전히 주변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어요.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아이, 솜사탕을 들고 가는 아이, 그리고 풍선을 들고 가는 아이, 모두들 그 곁에는 엄마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한 손으로는 엄마들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나도 엄마 손을 놓는 게 아니었어요. 엄마 손을 절대 놓지 말고 꼭 잡고 있었어야 했어요.

“우리, 저기 가보자.”

아저씨가 손을 들고 먼 곳을 가리켰어요. 거기에는 커다란 원을 그리고 조그만 깡통들이 매달려 돌아가고 있었어요. 멀리서 봐도 아주 높은 곳까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나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요. 저렇게 높은 곳에 가면 틀림없이 엄마가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

아저씨와 나는 그 높은 깡통차들이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저씨, 저게 뭐야?”

“응, 대관람차라는 건데, 아주 높이 올라가니까 아마 엄마가 보일거야.”

“맞아.”

그런데 자꾸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파왔어요. 그래서 자꾸 아저씨의 큰 걸음을 쫒아가기 어려워졌어요. 나는 다시 무서워졌어요. 엄마도 잃어버렸는데 이러다가 아저씨마저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아저씨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아저씨는 키가 너무 커서 손이 내 머리보다도 한참 높이 있어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아저씨에게서 조금 멀어졌다가는 다시 종종걸음으로 아저씨 가까이 가고, 다시 멀어지고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아직도 대관람차라는 건 저 멀리, 너무 멀리 보였어요.

“목말 태워줄까?”

아저씨가 말했어요.

“응.”

아저씨는 다시 나를 목말태우고 걷기 시작했어요. 좀 전보다 훨씬 빨리 대관람차에 다가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저씨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저씨는 힘 안 들어?”

“하하, 아니. 너는 힘드니?”

“아니, 그냥 다리가 좀 아파.”

“아저씨는 힘 안 드니 괜찮아. 저기 가는 동안에도 혹시 모르니 엄마가 보이나 찾아봐.”

아저씨가 말했어요.

“응.”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드디어 대관람차에 도착했어요. 물론 그때까지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어요. 가까이 와서 보니 대관람차는 훨씬 더 크고 높았어요. 이제 됐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깡통차를 타고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틀림없이 엄마가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자.”

“응.”

아저씨와 나는 깡통차 하나에 올라탔어요. 그 차 안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어요. 양쪽으로 조그만 의자가 있고 사방은 다 유리로 되어 있어서 멀리까지 아주 잘 보였어요. 드디어 우리가 탄 차가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나는 밖을 내다보았어요. 우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땅 위에 있던 사람이랑 건물이랑 나무들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엄마를 찾는 것도 잊어버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기 시작했어요.

“엄마 찾아야지.”

아저씨가 그런 내게 말했어요. 맞아 엄마를 찾아야지. 나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찾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어요. 드디어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왔으나 엄마는 없었어요.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왔던 우리가 탄 깡통차가 다시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이 엄마는 없었어요.

“엄마 안보이니?”

“응.”

“그래도 계속 찾아봐.”

“응.”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리고 파란 하늘에 흰색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던 하늘이 점차 어두운 색으로 변했어요. 구름 색이 검게 변했어요. 세상도 조금 어두워졌어요. 나는 세상이 어두워지는 게 싫었지만, 계속 엄마를 찾았어요. 그런데 어느새 우리가 찬 깡통차는 땅에 내려왔어요.

“이제 내리자.”

아저씨가 말했어요. 나는 내리기 싫었지만 그냥 앉아 있을 수도 없었어요. 아저씨와 함께 땅으로 내려왔어요. 이러다 진짜 엄마를 못 찾는 게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하늘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나더니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한두방울 커다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소나기가 되어 쏴아 하고 쏟아져 내렸어요.

“우리, 저기 가서 좀 앉자.”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벤치로 갔어요. 거기는 초록색으로 된 지붕이 있어서 비를 맞지 않아도 되었어요. 천둥과 비는 점점 더 심해졌어요.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안보였어요. 모두들 비를 피해 어딘가로 숨어든 거예요.

나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엄마..”

하고 울고 말았어요.

“왜 우니? 천둥이 무서워서 그러니?”

아저씨가 물었어요.

“응. 그리고 엄마를 못 찾을까봐 무서워.”

“괜찮아, 남자가 뭐 이런 천둥을 무서워하고 그러니. 그리고 엄마는 꼭 찾아줄게.”

“약속해?”

나는 울면서도 물었어요.

“그래, 약속해.”

나는 아저씨 손을 잡았어요. 벤치에 앉으니 아저씨 손이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어요. 아저씨는 다리만 긴 아저씨였거든요.

“그런데 너, 배 안고프니?”

“응, 배고파.”

아저씨가 그렇게 물으니 진짜 배가 고파졌어요.

“그럼 여기 있어. 아저씨가 가서 뭐 좀 사올게.”

“아냐, 아저씨. 나 김밥 있어.”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서 안에 있던 김밥과 사이다를 내놓았어요. 엄마가 아침에 싸서 내 가방에 넣어준 것들이었어요.

“그래, 그럼 어서 먹어.”

아저씨가 김밥과 사이다를 열어주며 말했어요.

“아저씨도 같이 먹어.”

“아저씨는 배 안고파.”

“그래도 같이 먹어. 엄마가 많이 싸줬어. 엄마가 만든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김밥 하나를 들어 아저씨에게 내밀었어요. 아저씨는 손으로 받아서 먹었어요.

“그래, 진짜 맛있네. 어서 먹어.”

나도 김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아저씨랑 김밥을 먹다보니 어느새 다 먹었어요. 그리고 나는 배가 불렀어요. 우리가 김밥을 먹는 동안 그렇게 무섭게 내리던 비도 많이 약해졌어요. 그리고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하늘이 다시 밝아졌어요. 비오기 전만큼 밝지는 않았지만 하늘에 다시 해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비 온 뒤의 풀냄새 물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그리고 해와는 다른 쪽 하늘에 하얗고 커다란 달이 떴어요.

“아저씨, 저거 달이지?”

나는 달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응, 정말 달이네.”

“저기 달에 가면 엄마가 보일텐데. 달이 세상에서 제일 높잖아.”

“그런데 저기는 올라갈 수가 없잖아.”

“응.”

나는 배가 부르고 잠이 오기 시작했어요. 아저씨 손을 꼭 잡고 나는 아저씨 품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어요. 아마 많이 자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저씨가 나를 깨웠어요.

“동훈아, 동훈아, 일어나봐.”

나는 눈을 가늘게 떴어요.

“무지개가 떴어.”

“무지개가 뭐야?”

“저기 봐. 저게 무지개야.”

아저씨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하늘에 길고 둥그렇게 아름다운 다리가 만들어져 있었어요. 아주 예쁜 색깔로 말이예요.

“저게 무지개인데, 저건 달에 갈 수 있는 다리야.”

아저씨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그 무지개의 한쪽 끝이 하늘에 떠 있는 달에 닿아 있었어요.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그럼 우리 저거 타고 달에 가, 아저씨.”

“그래.”

“저기 가면 진짜 엄마가 보일거야. 저기에서는 온 세상이 다 보일 거니까.”

“그래, 맞아.”

나와 아저씨는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 걷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무지개의 한쪽 끝이 있는 곳에 왔어요. 우리는 그 무지개에 올라타 무지개다리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조금 걷다가 아저씨는 다시 나를 목말태워 줬어요. 우리는 또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걸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달에 도착했어요. 달은 덥지도 춥지도 않았어요. 기분 좋은 바람이 작게 불고 있었어요.

“어서 엄마를 찾아봐.”

아저씨가 말했어요. 나는 아래를 내려다 봤어요. 달은 정말 높이 있나 봐요. 정말로 온 세상이 다 보였어요. 우리들이 엄마를 찾아 헤매던 놀이동산이 그대로 다 내려다 보였어요. 나는 구석구석 엄마를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엄마는 없었어요. 엄마는 그 놀이동산에 없나 봐요. 그런데 그때 그 놀이동산과는 좀 떨어진 곳에 내가 잘 아는 곳이 보였어요.

“아, 놀이터다.”

간혹은 엄마랑 같이, 또 간혹은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에 혼자서 놀던 놀이터가 보였어요. 내가 늘 타던 그네랑 미끄럼틀도 보였어요.

“아저씨, 저기 저기가 내가 놀던 놀이터야.”

나는 손가락으로 그 놀이터를 가리켰어요.

“그래? 누구 아는 사람은 안 보이니?”

아, 그러고 보니 아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구멍가게 아줌마도 보였고, 같이 그네를 타선 선희도 보였어요. 그리고 해피라는 개와 그 개를 기르는 미진이 누나도 보였어요. 선희는 혼자서 그네를 타고 있었어요. 그리고 미진이 누나는 해피와 놀이터 안을 것도 있었어요. 구멍가게 아줌마는 평소와 똑같은 자세로 가게 앞의 작은 의자에 나와 앉아 있었어요.

“다 보여, 아저씨. 선희도 보이고 미진이누나, 해피도 보여.”

나는 그 놀이터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어요. 아저씨도 그 쪽을 내려다 봤어요.

“아, 저기가 네가 사는 동네구나. 그런데 엄마는? 엄마는 안보여?”

“잠깐만.”

나는 우리 집을 찾아봤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다른 높은 집들에 가려 잘 보이지를 않았어요. 나는 다시 여기 저기 엄마를 찾아봤어요. 그리고 마침내, 아 마침내 엄마가 보였어요. 그렇게 보고 싶던 엄마가 거기 있었어요.

“있어. 아저씨 저기 엄마가 있어.”

“누구? 누가 네 엄마니?”

“저기 제일 예쁜 사람.”

나는 다시 손가락으로 엄마를 가리켜줬어요. 아저씨도 이제 엄마를 찾은 것 같았어요.

“아, 그래. 진짜 예쁘네.”

“그치? 진짜 예쁘지?”

“응.”

엄마는 평소에 자주 가는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엄마는 소주잔을 들고 있었고 그 잔을 든 손의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꽂고 있었어요. 엄마 앞에는 아래층에 사는 집주인 할머니가 앉아 있었어요. 둘은 소주를 마시고 있었어요. 나는 엄마가 담배를 피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싫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저 엄마를 찾았다는 기쁨만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울고 있었어요. 주인 할머니도 울고 있었어요.

“자꾸 생각하지 마. 생각하면 뭣해?”

할머니가 엄마에게 말했어요.

“그래도 어떻게 생각을 안 해요? 저는 진짜 천벌 받을 거예요.”

“동훈이 엄만들 그러고 싶어 그랬나.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지.”

“그래도요.”

엄마는 들고 있던 술을 홀짝 마셨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다시 엄마의 잔에 숭를 부어 주었어요.

“나쁘게 생각하지 마. 이게 동훈이에게도 나은 거야. 어디 좋은 곳에 들어가 여기보다 훨씬 더 잘 살 거야.”

“진짜 그럴까요?”

“그럼. 잘 살 거야.”

“그럼 다행이지만요.”

“동훈이 안 버리면, 동훈이 엄마도 죽지만, 동훈이도 죽어. 여기서 이렇게 커서 어떡하겠어? 그 생각을 해야지.”

엄마는 대답은 않고 울기만 했어요.

“이제 그만 좀 울어.”

엄마는 다시 할머니가 부어준 술을 마셨어요.

“그래, 술 마셔. 그리고 다 잊어버려. 절대 다시 찾아온다는 생각은 마. 알잖아? 찾아온다고 뭐가 나아지나? 여기서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밖에 더 있나.”

할머니가 다시 엄마에게 술을 부어주며 말했어요.

“알았지 동훈이 엄마? 절대 다시 찾을 생각하면 안돼.”

“네.”

엄마가 울면서도 아주 작은 소리로 할머니에게 대답했어요. 그리고는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었어요.

나는 엄마와 할머니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아저씨를 쳐다보니, 아저씨는 무슨 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보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어요. 나는 아저씨를 톡톡 건드렸어요.

“아저씨, 이제 엄마한테 가. 저기 엄마 있으니 가면 돼.”

아저씨는 말이 없었어요.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다시 말했어요.

“저기 가면 된다니까. 어서 가, 아저씨.”

잠시 더 그렇게 앉아 있던 아저씨가 마침내 일어났어요.

“그래, 가자.”

“이제 엄마 찾았으니 목말 말고, 업고 가자.”

아저씨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목말이 아니고 아예 나를 업고 걷기 시작했어요.

“응.”

아저씨 등은 참 따뜻했어요. 엄마도 찾았겠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졌어요.

“아저씨, 우리 엄마 정말 예쁘지?”

“응.”

“그런데 또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있네. 나는 싫은데.”

“그래.”

“아저씨 고마워.”

나는 처음으로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아무 말이 없었어요. 나는 엄마를 찾아 기분이 좋은데 아저씨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나는 몇 마디 더 떠들다가 다시 잠이 들었어요. 엄마는 찾았고, 아저씨 등은 따뜻하고 그렇게 잠이 든 모양입니다. 얼마나 잤는지 몰라요. 눈을 떠 보니 여전히 아저씨 등에 업혀 있었고 아저씨는 걷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미 무지개다리는 아니었어요. 내가 잠이 든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다 걸어서 땅에 내려온 모양입니다. 아저씨 등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에 있던 그 놀이동산 안이었어요. 사람은 아주 적었고 주변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어요. 그 사이에 밤이 온 것입니다.

“아저씨, 나 내려줘.”

아저씨는 말없이 나를 땅에 내려줬어요.

“이제 엄마한테 가자.”

“그래.”

아저씨는 조그맣게 말했어요. 그리고는 아저씨는 또 말이 없었어요.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서 어느 건물 앞에 도착했어요.

“너, 여기 좀 앉아 있어. 아저씨 잠깐 여기 들어갔다 나올게.”

아저씨는 그 건물 옆의 벤치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응. 빨리 와야 돼.”

“알았어.”

나는 벤치에 앉았고 아저씨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저씨가 안 오는 것이었어요. 나는 다시 겁이 났어요. 아저씨가 안오는 건 아닌가? 진짜 아저씨가 안 오면 어떡하지? 갑자기 겁이 나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어요. 건물 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아저씨를 찾았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울면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데 어떤 형아 하나가 내게 다가왔어요.

“왜 우니?”

그 형아가 말했어요.

“아저씨가 없어졌어. 키다리 아저씨가 없어졌어.”

나는 울면서 말했어요.

“없어지긴 누가 없어져? 동훈아, 나야 나.”

목소리가 아저씨 목소리였어요. 모습은 달랐지만 분명히 키다리 아저씨 목소리였어요. 나는 약간 어리둥절했어요.

“나라니까 동훈아.”

“그런데 왜 이래?”

목소리는 아저씨였지만, 그 모습이 너무 달랐어요. 하얗던 얼굴은 다른 동네 형아나 아저씨들처럼 노란색이었어요. 오히려 검은색이 비쳐 보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키가 아저씨 키가 아니었어요. 나보다 약간 더 큰, 조그만 모습이었어요.

“아저씨가 옷을 갈아입어서 그래.”

아저씨가 내게 말했으나 아직 나는 완전히 믿기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키가 왜 이렇게 작아졌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하고 물었어요.

“응. 아저씨 키가 원래 이만한데 아까는 아주 높은 신발을 신고 있어서 그래.”

세상에 그렇게 높은 신발도 있는지 이상했으나 나는 다른 걸 물었어요.

“얼굴은 왜 안 하얘?”

“응. 얼굴도 원래 이 색깔인데 아까는 분장을 하고 있어서 그래.”

“분장이 뭐야?”

“분장이란,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해서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거야.”

“왜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한 건데?”

“그렇게 분장을 해서 다른 사람처럼 보여야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한거야.”

“왜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

“글쎄, 그건 아저씨도 모르겠어.”

나는 아저씨가 하는 말이 하나도 이해는 안 되었지만 그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랑 같이 엄마를 찾아다닌 그 아저씨가 맞기는 맞으니까요. 나는 아저씨 품에 안겼어요.

“엄마처럼 아저씨도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아까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아저씨가 너무 안 오니까 왔지.”

“그래. 이제 가자.”

“이제 엄마한테 가는 거지?”

아저씨는 잠시 말이 없었어요. 그러다 대답했어요.

“그래.”

나는 또 아저씨를 잃어버릴까봐 아저씨 손을 꼭 잡았어요. 아저씨가 높은 신발을 벗고나니까 손이 잡기 좋은 높이에 있었어요.

“가자.”

우리는 손을 잡고 건물을 나왔어요. 그리고 놀이동산을 벗어나 길거리로 나왔어요. 어느새 밖은 완전히 깜깜해졌어요. 우리들이 걸어감에 따라 우리들의 그림자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나는 깜깜한 밤인데도 별로 졸리지도 않았어요.

한참을 걷다가 아저씨가 말했어요.

“그런데 동훈아. 우리 엄마한테 말고 다른 데 가면 어때?”

“다른 데 어디?”

내가 물었어요.

“엄마하고 말고, 다른 아줌마 아저씨하고, 그리고 다른 친구들 하고 사는 데.”

“왜?”

“아저씨가 엄마 있는 곳을 찾지를 못하겠어.”

“왜? 아까 봤잖아.”

“그런데 지금은 안보이잖아.”

“그럼 다시 달에 가서 보면 되잖아.”

“이제 무지개다리가 없어서 달에 못가잖아.”

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러다 약간 화가 나서 말했어요.

“아까 아저씨가 엄마한테 데려다 준다고 했잖아.”

이번에는 아저씨가 말을 못했어요. 아저씨가 잠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어요. 어른들은 담배를 참 좋아하나봐요.

“담배 피워. 괜찮아. 엄마도 늘 피우는데 뭐.”

아저씨는 다시 담배를 꺼내 말없이 입에 물었어요. 그리고 라이터 불을 붙이고 한참을 담배를 피웠어요. 다 피운 담배를 끄고 아저씨가 말했어요.

“그럼 이렇게 하자. 며칠만 다른 데 가서 있어. 그럼 아저씨가 다음에 무지개다리가 생기면 그때 엄마를 찾아갈게. 그래서 엄마를 동훈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게.”

나는 잠시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무지개다리가 생길 때까지 아저씨랑 있으면 안 돼?”

“그건 안 돼.”

아저씨가 시무룩하게 대답했어요.

“왜 안 돼?”

아저씨는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어요.

“아저씨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살아서 네가 잘 데가 없어.”

“아저씨랑 같이 자면 안 돼?”

“아저씨 방은 너무 작아서 같이 못 자.”

“나는 작아도 같이 잘 수 있는데...”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저씨가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저씨랑 살면 네가 학교도 못 가.”

“나, 학교 안 가.”

나는 다시 밝게 말했어요. 나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학교를 안 가거든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처럼 유치원이나 학원에도 안가거든요.

“학원도 안 가.”

그러자 아저씨가 다시 말했어요.

“아저씨 집에는 밥도 없어.”

“밥도 없어?”

“응, 없어.”

“그럼 아저씨는 뭐 먹고 살아?”

“아저씨는 안 먹고도 잘 살아.”

“나도 안 먹어도 돼.”

아저씨는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어요.

“그러지 말고, 아저씨가 말하는 데 가서 있어. 그러면 아저씨가 꼭 엄마 찾아서 데리고 갈게.”

“못 찾으면?”

“무지개다리만 뜨면 달에 가서 다시 찾으면 돼.”

“알았어.”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어요.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어요.

“그래, 동훈이 참 착하네.”

나는 다시 물었어요.

“무지개다리 안 뜨면 나한테 안 올거야?”

“무지개다리 안 떠도 한 달에 한 번씩 동훈이 보러 갈게.”

“한 달에 한 번? 그게 뭔데? 몇 밤 자고 올거야?”

“30밤.”

“30밤? 그렇게 많이? 10밤만 자고 오면 안 돼?”

“안 돼. 30밤 잘 때마가 동훈이 보러 갈게.”

“알았어.”

나는 다시 마지못해 대답했어요. 그러자 저 길 끝에 희미한 불이 반짝이는 큰 집이 나타났어요.

“여기야. 여기가 동훈이가 앞으로 살 집이야.”

그 말을 하는 아저씨가 유난히 더 작게 느껴졌어요. 나보다 아주 조금 더 크기만 했어요. 그 집 앞에는 처음 보는 아줌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저씨는 내 손을 놓았고, 그 처음 보는 아줌마가 내 손을 잡았어요.

“동훈이, 울지 말고 잘 살아야 돼.”

“응. 아저씨 30밤만 자면 꼭 와야 돼.”

“그래. 30밤 자고 올게.”

아저씨는 뒤돌아 온 길을 걸어갔고, 나는 아줌마 손을 잡고 처음 보는 낯선 집으로 들어갔어요. 아저씨는 몇 번이나 뒤돌아서 아줌마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약속대로 30번 잘 때마다 아저씨는 나를 보러 와줬어요. 올 때마다 과자나 맛있는 것들을 사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도 한 번도 무지개다리가 뜨지를 않았고 아저씨는 결국 엄마를 찾아서 데리고 오지는 않았어요. 이제 이 땅에는 영영 무지개다리가 안 뜨는 건 아닌지 걱정이예요.


뱀 다리. 아름답지 못한 글에 대한 변명.


동화를 하나 써 봤다. 어떤 분들은 애들이 읽기에 좀 불편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애들이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애가 놀이동산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어찌어찌 다시 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애들 동화에 불만이 많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얘기해 보자. 신데렐라 얘기를 해보자.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살았다. 어느 날 왕자가 개최하는 무도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도 꼭 참석하고 싶어 한다. 무도회에 가기 위한 옷도, 교통편도 없는 신데렐라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았다. 옷도 주고, 신도 주고, 마차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원조자는 꼭 12시까지는 돌아와 달라고 말한다. 그녀는 무도회에 참석하여 왕자와 춤을 춘다. 하지만 약속했던 12시를 넘겨 버리고 만다. 부랴부랴 무도회장을 빠져나오던 그녀는 신발 한 짝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왕자는 그 신발을 매개로 하여 신데렐라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신데렐라와 왕자는 재회를 하게 되고 결혼을 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건 애들이 읽기 좋은 이야기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신데렐라는 계모 밑에서 살면서 고생을 한다.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애들에게 준다. 요즘 같이 이혼율이 높은 세상에서 계모가 생모보다 못하다는 일반화가 옳은 것인가? 애들에게 재혼한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주는 건 아닐까? 그리고 왕자가 개최하는 무도회에 참석하고 싶은 신데렐라는 입고 갈 옷이나 신발에 대해 걱정을 한다. 왕자가 개최하는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좋은 옷과 좋은 구두, 그리고 꽃으로 장식된 마차가 필요한 것인가?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면 안 되는 것인가? 그동안 입고 있던 옷을 깨끗이 빨아 입으면 안 되는 것인가? 좋다, 누군가가 나타나 신데렐라를 도왔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옷과 구두, 마차를 도와준 사람이 뭐라고 했나? 마음대로 즐겁게 놀다가, 12시 전에는 돌아와 달라고 했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춤추고 노는데 빠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게다가 원조자가 준 구두 한 짝 마저 잃어버린다.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것인가? 누군가가 물건을 빌려 줬으면, 최대한 잘 사용하고, 가능한대로 원상태대로 돌려줘야지. 마지막이 압권이다. 왕자가 신데렐라를 찾아 둘이는 결혼을 한다. 왜? 왕자가 왜 신데렐라와 결혼을 하는가? 그들이 오래 오래 사랑을 키워온 사이인가? 아니다. 신데렐라가 마음씨가 착하고 현명한 여자인가? 그럴수도 있지만 왕자가 그걸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그들은 단 하루 저녁 만나 함께 춤을 추었을 뿐이다. 그런데 왕자는 왜 그녀와 결혼을 했나? 이유는 간단하다. 예쁘니까. 신데렐라가 예뻐서 왕자는 그녀를 찾아 다녔고,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럼 신데렐라는 왜 왕자와 결혼을 하나? 왕자니까. 그가 왕자가 아니고 그녀의 마차를 모는 마부라면 과연 그녀는 그와 결혼을 했을까? 오히려 그녀는 왜 그녀에게 옷과 구두와 마차를 만들어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을 생각을 안 하는 것인가? 왕자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 역시 간단하다. 돈과 권력이다. 결국 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계모는 나쁜 사람이다. 춤추러 가고 싶으면 옷이랑 구두를 빌려 입고서라도 가는 게 좋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 그런 물건들을 만들어준 사람과의 약속은 꼭 지키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된다. 남자는 돈과 권력만 있으면 된다.

콩쥐팥쥐는 신데렐라와 똑같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심청전도 비슷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심봉사네에서, 그나마 집안을 돌보던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서 집을 떠났다. 당연히 공양미는 절에 기부되었다. 심청이마저 떠나간 심봉사 네에 뺑덕어미가 들어와 산다. 그녀가 나쁜 여자인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눈이 멀어 앞도 못 보는 심봉사 네에 들어가 그를 돌보고 살아준 여자다. 왜 그녀를 나쁜 여자로 생각하는가? 심청이가 왕과 결혼하는 이유는 신데렐라와 같다. 예쁘니까. 그리고 심청이가 왕하고 결혼하는 이유는? 돈 많고 권력이 있으니까. 여자는 예뻐야 된다. 남자는 돈과 권력이 있어야 된다.


백설공주도 마찬가지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은 듯이 잠이 든 백설공주에게 왕자가 키스를 하고 그들은 결혼을 한다. 왜? 예쁘니까. 왜? 왕자니까. 여자는 예뻐야 된다. 남자는 돈과 권력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 그동안 어려움에 빠진 백설공주를 성심성의껏 돌봐준 일곱 난장이는? 그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그녀를 마음속으로 사모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키가 작고 돈이 없는 루저라서 안 되는 것인가? 어려움 속에서 키가 작고 돈이 없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다가, 왕자가 나타나면 그렇게 떠나버려도 좋은 것인가?


예쁜 여자가 아니어도, 돈과 권력이 없어도, 주체적으로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 얘기를 아이들에게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너무 적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졌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적게 가졌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정말로 아기 하나 키울 힘이 없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현실이다. 그녀들은 그 아기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하는 아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엄마에게서 버려진 아이들이 자라서는 또 그들의 아기를 버려야 하는 사회가 아닌 곳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날 사회를 이렇게 만든 어른의 한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며 슬픈 이야기를 썼다.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 예쁜 그림을 곁들인 동화책으로 다시 엮어주겠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