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관한 터무니없는 세가지 추리 2 마지막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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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세계에 대한 터무니없는 추리 하나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나?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인가?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가 인간의 전부인가? 그러면 소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나? 머리와 몸통과 다리인가? 개는?

시체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나?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가 아닌가? 쇠고기는? 머리와 몸통과 다리가 아닌가?

인간과 시체 사이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와 쇠고기도 차이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아주 쉽게 인간은 시체와는 다르게 적어도 ‘생명력(生命力)’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인가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있어 인간을 살아 있게 하고, 근본적으로 시체와 다르게 구별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영혼(靈魂)’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소의 경우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다. 소를 쇠고기와 다를 수 있게 해 주는 그 무엇, 소를 살아 있게 하는 그 생명력, 그것이 영혼이다. 물론 인간의 영혼과는 다소 다른 소의 영혼이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해 보자. 인간이 시체로 바뀌면 어떻게 되나? 소가 쇠고기가 되는 순간 어떤 일이 발생하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 거다. 영혼이라고 불리는 생명력이 있는 인간에서 그것이 없는 시체로 바뀌는데 어떻게 아무 변화가 없을 수 있나? 적어도 인간에게는 있던 그 영혼이라는 것이 시체에서는 없어지는 일은 발생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엄마 뱃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어린애가 만들어질 때 어떤 일이 생기나? 단지 나무에 못을 박아 가구를 만드는 일과 동일한 변화만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영혼이라 불리는 생명력에 관한 어떤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낸 엄마 뱃속의 태아(인간)에게 시체와는 구별 지어 주는 영혼이 생길 것이다.

인간이나 소가 죽음을 맞을 때, 영혼이 없어진다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그리고 인간이나 소가 태어날 때, 영혼이 생긴다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지금부터 이 문제를 포함한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인간이 태어나고 죽을 때, 그때마다 영혼이라는 것도 같이 생겨났다 없어지는 것일까? 아무 것도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나고, 멀쩡히 존재하던 것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영혼은 원래 존재했었는데 인간이 태어날 때, 그 몸(육신(肉身))에 깃들었다가 그 인간이 죽으면 그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이라는 것은 육신을 갖고 있지 않을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아마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비밀이 여기에 숨어 있을 것이다.

영혼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단지 개념상 만들어 낸 거짓 환영이 아닌가? 천만에. 영혼은 엄연히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영혼에는 무게도 있다. 여러분은 영혼의 무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여러 가지 실험으로 영혼의 무게는 약 20g에서 40g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영혼은 스스로의 질량을 갖고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면 영혼은 어떻게 생겼나? 소의 영혼은 소를 닮고, 개의 영혼은 개를 닮고, 인간의 영혼은 인간을 닮았을까? 아마 그렇겠지. 그러면 서태지의 영혼은 서태지를 닮고, 옆집 아저씨의 영혼은 옆집 아저씨를 닮고, 강수연의 영혼은 강수연만큼 예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구별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옆집 아저씨나 서태지나 강수연은 아주 다르게 생겼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의 차이고 크게 봤을 때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는 것이다.

영혼은 아주 부드러운 젤 상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일정한 외형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아주 부드러워서 쉽게 그 모양을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남자의 몸에 깃들어 있던 영혼이 다음엔 여자의 몸을 받기도 하고 개의 몸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영혼의 속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영혼은 한정적인 육신과는 달리 말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가? 어떤 경우에도 죽거나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영혼도 ‘소멸(消滅)’을 한다. 여기서 죽음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소멸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단지 죽는 것이 아니라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죽음이란 다시 태어남을 함축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소멸은 그게 아니다.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영혼이 소멸하는 것인가? 이는 나중에 애기하도록 하겠다.

또 다른 영혼의 속성에 대해 얘기해 보자. 영혼이 소멸하기도 한다면 새로이 만들어 지기도 하는가? 그렇다 만들어 지기도 한다. 물론 영혼의 소멸과 마찬가지로 극히 한정적으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영혼이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을 ‘생성(生成)’이라고 한다.

영혼은 동물이나 인간처럼 ‘성장(成長)’도 하는가? 그렇다. 성장한다. 어린애일 때의 영혼에서 어른이 되면서 영혼도 같이 성장을 한다. 마찬가지로 송아지의 영혼에서 소의 영혼으로 성장을 한다. 그래서 인간의 경우 태아일 때와 아주 어린아이일 때와 성장한 어른이 되었을 때의 그 영혼의 무게가 각기 다른 것이다. 앞에서 한 번 언급되었지만 인간은 다 성장한 영혼의 무게가 약 30g쯤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혼도 다른 동물들처럼 ‘진화(進化)’를 하는가? 그렇다. 진화를 한다. 그리고 이 진화야 말로 영혼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개념인 것이다. 나중에 얘기가 나오겠지만 영혼에게는 급수(Level)가 있는데 이 급수를 높이는 게 바로 진화이다.

결론적으로 영혼은 인간처럼 생성(生成), 성장(成長), 진화(進化), 소멸(消滅)을 한다. 그리고 또 영혼만이 가진 속성이 있다. 그것이 ‘분열(分列)’과 ‘융합(融合)’이다. 융합은 영혼 2개 내지 3개가 합쳐서 하나의 영혼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분열은 반대로 하나의 영혼이 2개 내지 3개로 나뉘어지는 것을 말한다.

영혼은 생성, 성장, 진화, 소멸, 그리고 분열과 융합이라는 여섯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자,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영혼이 육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영혼들이 사는(존재하고 있는) 곳을 영계(靈界)라고 한다. 영혼들은 영계에 모여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영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영계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선계(善界)와 마계(魔界)가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선계는 착한 영혼들의 세계이고 마계는 악한 영혼들의 세계이다. 그리고 영계는 영문자 V자와 흡사한 구조를 하고 있다. 한쪽은 선계이고 다른 한쪽은 마계이다. 그리고 V자의 위로 갈수록 아까 잠깐 언급된 적이 있는 급수가 높은 영혼들을 뜻하고 반대로 아래로 갈수록 급수가 낮은 영혼을 뜻한다.

그리고 다시 영계를 세분하면 인도(人徒)와 축도(畜徒)로 나눌 수 있다. 선계도 인도와 축도로 나눌 수 있고 마계도 인도와 축도로 나눌 수 있다. 인도에는 사람과 여자와 개의 영혼이 살고 축도에는 그 밖의 동물들의 영혼이 산다. 말이나 소나, 심지어는 바퀴벌레의 영혼도 축도에 있다. 여기서 남자라고 표현하지 않고 사람이라고 표현한 점이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여자들이 들으면 상당히 기분 나쁘겠지만 안 할 수가 없다. 영어로 표현하면 아무도 기분 나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대신에 Man이라고 할 것이니까. 그리고 여자대신에 Woman이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의 Man은 사람이지 남자가 아니다. 영계의 급수로 봐서 분명히 여자는 사람보다 아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V자 구조로 된 영계를 종합적으로 설명해 보자. V자의 위에 두 꼭지점에는 선계와 마계의 절정고수가 존재하고 있다. 사람 중에서 극단적으로 착한 영혼들이 선계의 제일 위에 존재하고 있고 사람 중에서 극단적으로 악한 영혼이 마계의 제일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영문자 V상에서 이 둘은 아주 사이가 벌어져 있다. 그리고 점차 조금씩 영혼의 급수가 낮은 사람들의 영혼들이 V자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며 존재한다. 그리고 여자가 존재하고 개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축도의 영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소나 말은 쥐나 바퀴벌레보다는 위쪽에 존재할 것이다.

쥐나 바퀴벌레는 사실 선계와 마계를 나누기가 어려울 정도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바퀴벌레가 착하면 얼마나 착하고 악하면 얼마나 악할 것인가? 바퀴벌레보다는 좀 차이가 나겠지만 소나 말도 개보다는 훨씬 더 그 착하고 악함의 차이가 적은 것이다. 그리고 여자도 남자에 비해서 극단적으로 착하고 악한 경우가 드물다. 선계의 고수로 예수나 석가를 들 수 있겠고 마계의 고수로 히틀러나 알렉산더를 들 수가 있을 것인데 그들은 그만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만 해도 남자들만큼 극단적인 선인도 없고 극단적인 악인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영계의 V자 구조에 대한 설명이다.

다음으론 아까 질문을 했다가 답을 미뤄 왔던 부분을 얘기하자. 영혼은 언제 소멸하는가 하는 문제다. 근본적으로 영혼은 육신을 가져야 살아갈 수가 있다. 육신 없이 영계에서만 사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은 얼마나 오랫동안 육신을 갖지 않고 살 수가 있는가? 그것은 그 영혼의 급수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선계든 마계든 급수가 높은 영혼은 오랫동안 육신을 갖지 않아도 존재할 수가 있고, 급수가 낮은 영혼은 짧은 기간동안만 육신 없이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답이 있다. 영혼이 육신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을 지나도록 육신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때, 그 영혼은 소멸하는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들은 누구나 육신을 탐을 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지나서 훨씬 더 영혼의 육신에 대한 애착 내지는 욕심은 강한 것이다. 그들의 존재와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선계출신의 영혼이 죽었을 때, 그 영혼은 선계로 가야 되는데 자신이 잘 몰라서 마계로 갔다거나, 아니면 마계에서 그 영혼을 거짓 유도하여 마계로 데려갈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영혼은 마계에서 오랫동안 육신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은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마계의 영혼을 선계에서 데려다가 육신을 주지 않고 소멸시켜 버리는 경우 말이다.

또 한 가지 영혼이 소멸되는 경우가 있다. 죽어서 육신을 벗어난 영혼이 자신이 가야할 영계를 잘 찾아가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여기 지구를 관할하는 영계가 아닌 우주의 다른 곳에 있는 영계로 가버리는 경우 말이다. 그런 경우 그 영혼은 영원히 육신을 받지 못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영혼의 소멸이라는 경우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 경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선계와 마계에서는 왜 서로 상대방의 영혼을 데려다 소멸시켜 버리는 것인가? 선계와 마계는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너무나 다르다. 선계는 선을 추구하고 마계는 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악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끊임없이 싸움을 한다. 말하자면 전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영혼은 상대방에게 육신을 주지 않는 일 이외에는 어떤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를 못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Ghost’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죽어서 영혼만 남은 페트릭 스웨이즈가 어떤 물리력을 행사하려 하자 뜻대로 안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듯이 영혼은 실제적인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물론 ‘Ghost’에서는 연습을 통하여 결국 물리력을 행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실제와 다소 차이가 난다. 영혼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Ghost’에서는 물리력을 행사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그동안 갖고 다니던 육신을 버린 영혼은 더 이상 그 육신에 집착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육신을 버린 영혼은 이승에서 육신이 맺고 있던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를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혼은 스스로 어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소위 전쟁이 성립되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하여금 대리전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의 양상에 따라 인간 세상이 선계가 강하면 마계에서 히틀러 같은 절정고수를 내려 보내고, 반대로 마계가 강해지면 선계에서 예수나 석가같은 고수를 내려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세상은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영혼들은 어떻게 어떤 영혼이 어떤 육신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지우나? 영혼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는 것인가?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다. 영혼 스스로가 적절한 시기에 자신이 갖고 싶은 육신을 선택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의 선택대로 그 육신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결국 최종결정은 ‘선관(選官)’이라는 고수들이 한다. 물론 예수나 석가는 선관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히틀러도 마계의 선관이기는 마찬가지고. 이렇듯 영혼은 자신이 다시 받고자하는 육신을 스스로 희망하게 되고 그 희망에 따라 선관이 최종적으로 그 영혼에게 그 육신을 주는 것이다. 소위 인간으로, 혹은 여자로, 혹은 개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나 여자의 경우, 언제 육신에 영혼이 깃드는 것인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눠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인 그 순간? 아니면 임신 중의 어느 순간? 그것도 아니면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태어나올 때? 여러분이 한 번 추리해 보시라. 언제쯤 영혼이 육신에 들어가겠는가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육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지 약 3개월 정도가 지나면 그 어렴풋이 만들어진 육신에 영혼이 들어간다.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 아주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말이다. 이때부터가 소위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탄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3개월 이상 된 태아를 없애는 것은 살인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아까 언급한 것처럼 처음엔 아주 가벼운 영혼이 되어 육신으로 들어가고 아이가 태어나고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그 영혼도 같이 무게가 무거워 지며 성장을 한다.

그러면 영혼은 어느 정도까지 육신을 받지 않고도 존재하며 견딜 수 있나? 이는 영혼의 등급에 따라 많이 다르다. 보통의 사람인 경우, 짧게는 49일부터 길게는 약 5대로 표현되는 150년 정도를 견딜 수 있다. 물론 영혼의 등급이 상당히 높은 경우에 이를 훨씬 더 초월해서 존재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인간의 생각으로 볼 경우 거의 영원이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을 견디기도 한다. 석가 정도 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영혼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존재 자체가 목적이다. 하지만 존재를 보다 더 확실히 보장받는 방법이 바로 영혼의 등급을 높이는 것이라는 건 이미 여러 번 언급되었다. 결국 영혼의 존재 목적은 영혼 자신의 등급을 높이는 것이다. 바퀴벌레에서 소나 말로, 소나 말에서 개로, 그리고 개에서 여자로, 인간으로. 인간 중에서도 등급이 높은 영혼으로 나아가는 게 최대의 목적이다.

영혼의 등급이 언급되면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개도 사람보다 나은 경우가 있고, 특히 여자는 많은 경우 사람(남자)보다 훨씬 그 등급이 높아 보이는 경우(훨씬 착하거나 훨씬 악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맞는 얘기다. 영혼도 진화를 하고 반대로 퇴보도 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긴다. 남자든 여자든 그 정신적인 능력이 선천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개나 비교적 지능이 높은 다른 동물보다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대개의 경우 그 영혼이 개의 영혼에서, 심지어는 축도에서 바로 사람(남자나 여자)이 되어 태어난 경우이다. 결코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경우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와 남자 정도의 경우 허다하게 진화내지는 퇴보를 거듭하는 것이다. 서로가 한 번의 육신을 가진 생에 의해 그렇게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영혼은 근본적으로 육신에 대한 집착 내지는 욕심이 대단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나 여자, 혹은 개의 육신에도 영혼은 서둘러 들어가고자 서로 경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개나 소의 영혼으로 떨어져 버리면 다시 인간으로 등급을 올리는 일은 상당히 어렵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자. 그러면 영혼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불교용어처럼 들리겠지만 ‘보시(布施)’를 해야 한다.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누구에게나 영혼이 있는 모든 것에게 착하게 대하고, 자기를 희생하며 까지 남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이를 보시라고 한다. 불교에서처럼 보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잘 아는 물보시, 밥보시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 많은 보시중에 가장 좋은 보시가 무엇인가? 그것이 ‘육보시(肉布施)’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영혼은 누구나 그 육신을 아끼고 자신의 육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귀중한 자신의 육신을 남에게 먹이로 제공을 하는 것이 육보시다. 축도의 동물들은 이 육보시만한 보시가 없다. 그것도 영혼의 등급이 높은 사람이나 여자에게 하는 육보시는 최상의 보시가 된다. 하지만 인도에 있는 영혼의 등급이면 이 육보시가 필요 없다. 육보시를 통한 등급을 높이는 행위가 필요 없는 단계인 것이다. 인도에는 개가 포함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 바란다. 따라서 개도 육보시를 할 필요가 없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사람이 소나 말이나 돼지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소나 돼지에게는 육보시를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되지만, 개를 먹는다고 해서 그 개의 영혼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사실, 개고기는 먹을 필요가 없다. 영혼 문제에서만 보면 말이다.

결국 영혼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남에게 최대한으로 베풀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선계출신의 영혼일 경우에 해당한다. 마계출신인 경우에 이는 정반대가 된다. 어떡해서든 남에게 악하게 굴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남을 못살게 굴고 죽여야 자신의 영혼의 등급이 올라가는 것이다.

실제로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과연 내 영혼이 선계의 영혼인지 마계의 영혼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걸 알아야 착하게 살든지 더 악하게 살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러면 과연 자신이 선계의 영혼인지 마계의 영혼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실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 비단 안다고 해도 말할 수 없다. 단지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일러 준다면 간단하다. 자신이 자신을 한 번 돌아보라. 스스로가 선계의 출신답게 남에게 베푸는 게 기분 좋고 남에게 잘 대해 주고 싶은가, 아니면 남에게 못되게 굴고 싶고 남이 안되는 게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냉철히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선계출신인지 마계출신인지를 따지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다 착하게, 남에게 베풀면서 살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자신이 마계의 영혼이더라도 이번 생부터는 선계로 전향하여 향후는 선계의 절정고수가 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선계의 마지막 목표는 모든 영혼이 다함께 행복하게 오랫동안 소멸하지 않고 잘 살자는 것이고, 반대로 마계는 될 수 있는 한 남을 깔아뭉개고 죽여 없애서 자신만이 잘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영혼에 대한 얘기를 어느 정도 다 한 것 같다. 이제 앞의 ‘인류의 기원에 관한 터무니없는 추리 하나’에서 모호했던 부분, 왜 선사인류들이 동물과의 직접교접까지를 해 가며 종족번식을 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 제5혹성대의 폭발 같은 특별한 일로 인해 그 영혼들이 깃들어야할 육신들이 갑자기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소멸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육신을 확보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그들은 유전자변이 및 직접교접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를 동원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집, 육신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것이다.

향후에도 마찬가지다. 만약 지구에 커다란 변화가 와서 인류의 절대다수가 한꺼번에 멸망할 운명에 처해 있다면, 그래서 단시간 내에 영혼들이 깃들 육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자신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을 때까지 육신을 얻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여 결국엔 그 영혼들이 소멸해 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단기간 내에 육신을 확보하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이 소멸해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육신을 늘리는 일에 열중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츠출현이 잦아진 UFO는 혹시, 지구에서 영혼의 대량 소멸 사태를 염려한 선사인류들의 우주선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결국, 영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착하게 살고, 남을 위하는 생활을 하고, 최대한으로 많은 육신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유일한 목표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터무니없는 추리 하나


지금 세상에는 ‘기독교’라는 종교와 ‘예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책에 대해서도 누구나 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기독교 신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성경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을 다 읽어 본 사람도 마찬가지로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런 반면, 또 누구나가 예수의 신비로운 탄생과 수많은 기적, 그리고 마지막 부활에 대해서는 또 많이들 들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성경책을 바탕으로 해서 성경책이외에서의 예수의 행적까지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일생을 추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처음으로 그의 탄생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목수인 요셉, 그리고 그의 약혼자인 동정녀 마리아. 처녀의 몸으로 알려진 마리아가 갑자기 임신을 해 버리니 그의 약혼자인 착한 요셉은 그녀와의 파혼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자 여호와의 목소리가 그에게 들려온다. 그녀는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니 나쁜 생각하지 말고 그녀와 결혼하라고. 서구의 과학문명에 익숙해 있는 여러분은 이 말을 정말로 믿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 일이 과연 어떻게 된 것인지 추리를 해 보자.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을 했는데 결혼 때까지 참지 못한 요셉이 술 먹고 마리아를 자빠뜨려 버린 것이다. 그러니 결혼 날은 아직 멀었고 약혼녀는 임신은 했고 결국 애는 먼저 나오게 생겼고,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궁리 끝에 그런 연극을 했을 수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가 성령으로 잉태시킨 것이지 결코 우리가 결혼 전에 속도위반을 한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동정녀 마리아가 물레방앗간을 지나다 동네 건달들에게 당했을 수가 있다. 물론 이 경우 황송하게도 여러 건달놈들에게 윤간을 당했을 수도 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눈물을 흘리며 요셉에게 모든 걸 고백했고 마리아를 깊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 착한 요셉이 그런 연극을 꾸며서 마리아의 임신을 정당화해 결혼을 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마리아가 요셉 말고 달리 사귀는 사람이 있어 비록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마리아는 요셉 몰래 그 남자와 계속적인 사랑을 나누었고 그러다 덜컹 임신을 해 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동네 건달에게 당했다는 앞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다.

이것 이외에 달리 추리할 수 있는 게 있나? 성경책에 나온 대로 정말로 여호와의 뜻에 의해 성령으로 잉태를 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동원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단지 여호와의 뜻에 의해 성교를 갖지 않고, 정확히는 마리아의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지 않고도 임신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만약에 여호와라는 존재가 진짜 정액을 마리아의 자궁에 넣었다면 어떠한가? 결론적으로 여호와라는 남성이 마리아를 자빠뜨려서 임신을 시킨 것이다. 여호와라는 남성은 누구인가? 그는 선사인류인 것이다. 선사인류나 그의 후손이 마리아를 직접교접을 통해서 임신시킨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라고 인간인 요셉에게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만약에 성경책이 맞다면(물론 나는 성경책이 다 맞다는 것을 가정하고 얘기하는 것이다.) 여호와나 성령이라는 것은 적어도 마리아를 임신시킬 수 있는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의 탄생에는 또 한 가지 신비를 안고 있는 부분이 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세 사람의 동방박사에 관한 부분이다. 그들은 동방에서 별자리를 보고 위대한 아기예수의 탄생을 미리 예견하고 그 머나먼 길을 단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들에 관한 얘기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왜 왔으며, 그 이후 어디로 갔으며 무엇을 했나? 그리고 그들이 성경책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아기예수의 탄생은 멀리 동방에서 세 사람이나가 와서 경하를 할 만큼 위대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책은 세 명의 동방박사를 깜짝 출연 시키고 그 후에 어떻게 되었다는 얘기 하나 없이 그들을 성경책에서 퇴장시켜 버렸나?

티벳에는 ‘라마교’라는 종교가 있다. 불교와 흡사하지만 엄격히 불교와는 확연히 다른 종교이다. 라마교의 최고 지도자를 그들은 ‘달라이라마’라고 부른다. 마치 카톨릭에서 교황을 정해 놓고 모시듯이. 그런데 카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것과 라마교에서 달라이라마를 정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들은 달라이라마의 위대한 영혼이 환생을 하는 것을 그들의 종교지도자는 알 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달라이라마의 환생이라고 믿어지는 위대한 영혼이 태어나면 그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달라이라마로 정해 놓는다. 현재의 달라이라마도 5살 정도의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라마승들에 의해 달라이라마로 정해졌었다. 또한 지금도 그들은 다음 달라이라마를 정해 놓고 있는데, 역시 그 아이가 5살 정도의 나이였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선정은 아직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아이의 탄생에서부터 달라이라마의 위대한 영혼이라고 알아보고 미리 정해뒀던 아이들은 전부 자라서 하나같이 위대한 달라이라마의 역할을 훌륭히 해 낸 것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그들에겐 없었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정신적인 성숙도 면에서 라마승들을 따라갈 종교지도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천문을 보고 위대한 영혼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왔던 세 사람의 동방박사는 달라이라마가 파견한 라마승들이었다. 어느 날 달라이라마든 아니면 다른 위대한 라마승이 천문을 보고 멀리 서쪽 나자렛지방에 위대한 영혼이 하나 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상은 위대한 영혼들은 동방에서 태어났었는데 이번엔 정신적으로 아주 미개한 지방에서 그렇게 위대한 영혼이 태어난다니 그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태 적어도 위대한 영혼의 탄생에 대해 예견한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기에 직접 라마승 세 명을 파견하여 그 사실여부를 보고 오도록 시킨 것이다. 그래서 세 사람의 라마승들은 먼 길을 와서 예수의 탄생을 보고 정말 보기 드물 정도의 위대한 영혼의 탄생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배를 드리고 갔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확인만 하고 조용히 티벳으로 돌아 왔다.

다음으로, 예수의 탄생 이후 성인이 되어 나자렛에 다시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하고 설교를 하기 시작할 때까지의 젊은 시절에 대한 언급이 성경책 어디에도 없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동안 예수는 인도에서 불교공부를 했었다는 식의 책은 이미 여러 권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읽혔다. 그런 책들은 부족하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증거들도 제시하고 있다. 상당 부분 맞는 얘기다.

이것을 보자. 예수가 태어나고 동방박사가 와서 경배를 드리고 갔다는 소문이 나자 당시 로마왕은 그 위대한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권좌를 뺏을까봐 겁이 나서 나라 안의 그 또래 사내아이를 모두 잡아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다고 성경책에는 나온다. 정확히는 예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이가 다 죽었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예수를 죽이기 위해 내린 명령에 의해 예수 한 사람을 제외한 또래의 사내 아이들이 전부 죽을 수가 있는가? 도대체 예수는 그때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었길래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단 말인가?

성경책에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지만 여기에 동방박사의 역할을 포함하여 이런 추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영혼, 아기예수의 탄생을 눈으로 확인하고 동방박사로 묘사된 라마승들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천문에 하나의 징조가 나타났다. 위대한 영혼 아기예수의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들이 알게 된 것이다. 라마승들은, 또는 달라이라마는 부랴부랴 동방박사라는 라마승들을 또다시 나자렛에 파견했다. 처음엔 아기예수의 탄생을 확인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지만 이번엔 이 아기예수의 목숨을 구해 오는 중요한 임무를 띄고 갔다.

그들은 예수가 로마왕에게 목숨을 잃기 전에 그를 빼돌려 티벳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이 머리 좋은 예수에게 라마교리를 가르쳤다. 워낙이 머리 좋고 영특한 예수는 티벳의 어느 라마승보다도 더 빨리 교리를 터득해 갔다. 그리고 라마교를 완전히 익힌 예수는 가까운 인도로 유학을 떠난다. 그래서 예수가 젊은 시절을 인도에서 불제자로 보냈다는 주장들이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추고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서의 예수의 수학능력도 탁월했다. 날고 긴다는 불교승들 사이에서도 예수는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예수는 일반적인 불교승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도에서 철저히 지켜지던 계급제도까지를 부정하며 인간의 평등사상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인간간의 평등이야말로 진정한 박애요 사랑인 것이다.

자, 이렇게 되자 인도에서는 난리가 났다. 인도의 특권층인 승려나 귀족들은 서서히 예수가 눈에 가시가 되었고 마침내 위험인물로 취급받게 되었다. 그들이 그때까지 쌓아 올렸던 계급제도가 붕괴되는 것을 묵시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를 없애버리기로 작정을 하고 이를 눈치챈 예수는 피신을 결심하게 된다.

어릴 때 티벳의 라마승에 의해 이곳까지 와서 수학을 해 온 예수로서는 마땅히 숨을 만한 곳도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을 피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으로 제일 먼저 예수가 떠 올린 곳은 어디일까? 세상천지에 예수가 갈 만한 곳이 어디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자기가 태어난 곳, 결국 고향만한 곳이 어디에 있는가? 결국 예수는 인도에서 야반도주하여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어, 유명한 연예인이 되어 금의환향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되어 귀향한 것이다.

이스라엘로 돌아 온 예수는 처음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티벳이나 인도는 정신적으로 발달을 하여 라마교, 불교를 위시해서 자율적이고 서로를 사랑하며 정신이나 영혼의 레벨을 올리는 생활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반해 이곳은 형편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인간의 범주에 넣기도 어려울 정도의 미개인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정신은 황폐할 대로 황폐했고 아무 생각 없이 힘의 논리에 의해 강자가 약자위에 군림하는 것을 당연시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배운 도둑질이 그거라고 어쨌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져야겠는데 도대체 이들이 그 가르침을 10분지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머리 좋은 예수도 며칠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구상해 내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날의 기독교가 안고 있는 폐단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위에 군림하는 종교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인도나 티벳의 위대한 사람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도 라마교나 불교에 많이 그 흔적이 남아 있다시피 그들의 지도자는 단지 행동으로 보여 주기만 했다. 말하자면 ‘세상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내가 사는 방법을 보고 옳다고 생각이 되면 너희들도 따라 해라. 그것이 영혼을 높이는 지름길이다.’하고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결코 강제하거나 겁을 주거나 그들 위에서 군림하려 들지를 않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느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 도대체가 이런 정상적인 방법으로 교화가 될 성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그들 위에 군림해서 그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양이고 여호와는 목자이니 너희는 너희들의 의지라는 것을 버리고 무조건 복종만 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 서로를 사랑해야 하고, 도둑질하면 안 되고, 간음하면 안 되고, 뭐 하면 안 되고, 뭐 하면 안 된다.’하는 식으로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대로 오늘날의 기독교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자렛에 도착해서의 예수의 행적은 성경책에 상세히 나와 있다. 예수는 그렇게 이스라엘인들을 지도하며 살았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의 지도자보다도 더 훌륭하게 그는 지도자의 역할을 해냈다.

마지막으로 성경책에 나와 있는 예수의 죽음을 되짚어 보자. 그가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교화시키도록 애를 썼지만 너무나 시간이 짧았다. 아무리 예수가 위대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편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사실 예수는 그때까지 최선을 다했었다.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교화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맞는 얘기지만 그 당시의 무지몽매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그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가 마지막으로 택한 이 방법이야 말로 예수를 덜 위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실수가 된다.

그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때까지 그의 얘기를 잘 듣지 않고 올바르게 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극히 적은 것을 보고 부활이라는 기적을 그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경외심을 일으켜 나중에라도 그들이 두려움을 갖고 그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해서 여러 제자들 앞에 나타났다.

여기에서 성경책은 부활한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여러 해 동안을 예수 하나만 믿고 따라 다니던 측근 제자들이 부활하여 나타난 예수를 아무도 알아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나 자기가 예수라고 한 것이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왜 모습이 달라 보였는가?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모시던 스승이 죽은 지 사흘 만에 그 모습마저 잊어버린 것인가? 적어도 그렇지는 않겠지.

영화 ‘사랑과 영혼(Ghost)’를 기억해 보자. 죽어서 영혼만 남은 페트릭 스웨이지가 사랑하는 여자 데미 무어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육신이 없어서 그게 불가능할 때 어떻게 했나? 그는 우피 골드버그의 몸에 들어가 데미 무어와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그때 데미 무어는 우피 골드버그를 깜둥이 여자 우피 골드버그로 보고 키스를 나누었나, 아니면 비록 몸은 우피 골드버그의 것을 빌었지만 그를 자신이 사랑하는 페트릭 스웨이지로 보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했겠는가? 비록 그가 페트릭 스웨이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페트릭 스웨이지로 인정을 한 것이다.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고 아무도 그를 예수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는 예수가 더 이상 예수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트릭 스웨이지의 영혼이 우피 골드버그의 몸에 들어가듯이 예수의 죽은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영화와 예수의 경우가 다른 점이 있다면, 페트릭 스웨이지는 우피 골드버그의 허락을 받고 양해 하에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고, 예수는 강제로 했다는 점이다. 다시 한 번 영화의 그 장면을 기억해 보자. 페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애틋한 사랑을 지켜보던 우피 골드버그는 결심했다는 듯이 자기 몸에 들어오라고 페트릭 스웨이지에게 말한다. 페트릭 스웨이지는 뜻밖이라는 듯이 정말 그래도 괜찮겠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피 골드버그의 몸에 들어가 사랑하는 데미 무어의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잠깐 춤을 춘다. 채 5분도 흐르기 전에 나쁜 친구가 들이 닥치게 되고 페트릭 스웨이지는 급하게 우피 골드버그의 몸에 서 빠져 나온다. 그때 우피 골드버그의 상태가 어떠했나? 단지 5분 미만으로 몸을 빌려 줬는데도 우피 골드버그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렇다. 우리의 몸이라는 것은 그렇게 함부로 빌려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잠깐 동안이지만 탈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 더 있었다면 우피 골드버그는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예수의 경우는 어떠했나? 부활하고 40일을 제자들 곁에 머물다가 승천했다. 즉, 40일간을 남의 몸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원래 몸의 임자는 40일간을 그 몸에 있지를 못한 것이다. 그는 당연히 죽었을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의 완성을 위해 이렇게 남의 목숨을 빼앗는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추리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보다 더 과학적인 설명을 난 들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