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1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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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살인사건


시작하면서...


나는 이 추리소설을 쓰면서 한 가지 걱정을 하고 있다. 독자들이 내 글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읽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할 사람이 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김철수를 비롯한 이 소설 속의 모든 인물은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느 소설과 같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은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지어낸 것이지 저자인 나를 비롯하여 그 누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면서 그 누구도 실존하는 인물을 모델로 한 사람은 없다. 그들의 극단적인 말이나 행동은 단지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과장한 것뿐이다. 특히 그들이 펼치는 주장이나 논리는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과장된 말이나 행동, 혹은 생각이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흥부가 금은보화를 얻고 놀부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소설이니까 이런 과장된 일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흥부전의 저자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은 아니다. 난 이 소설 속의 그 누구의 주장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특히 김철수의 말이나 행동, 논리나 주장은 내 생각과 조금도 같지 않다는 걸 분명히 밝혀둔다.

단지 재미있게 읽어 주시길 바란다.


2002. 3. 6 수요일


이제 창을 통해 밖을 보고 있으면 제법 봄기운을 느끼게도 된다. 홀 중앙에 놓여 진 난로 위에서 혼자 끓고 있는 주전자가 마지막 가는 겨울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을 뿐이다.

막 점심을 끝낸지라 최소장은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눈을 아예 감아 버렸다. 졸고 있는 최소장의 얼굴에서 무상하게 흘러가 버린 세월과 함께 이 조그만 포구의 평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약간 뚱뚱한 몸매에 어느덧 머리는 반 이상이나 벗겨져 가고 있었고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는 주름과 함께 평화스러운 미소가 숨어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주 아주 조용하고 한가로운 오후였다.

“소장님, 되게 피곤하신가 봅니더. 저, 다녀왔심니더.”

“아저씨, 저도 왔어요. 커피 한 잔 하시라구요.”

젊은 사람들의 호들갑에 최소장은 무거운 눈을 떴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박순경과 지혜가 최소장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최소장은 가볍게 기지개를 한 번 펴고는 말했다.

“어, 니들 언제 왔노?”

“이제 막 왔어요. 오빠는 요 앞에서 만났고요. 그런데 어젯밤에 뭘 하셨길래 저희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주무세요?”

지혜가 밝게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꽤 길게 졸았었나보다. 같이 점심을 마친 박순경이 포구에 나가보고 오겠다고 했었는데, 어느덧 한 바퀴 돌아본 모양이다. 지혜라는 아가씨는 파출소 맞은편의 길모퉁이에 자리 잡은 바다다방이라는 조그만 시골 다방에서 차심부름을 하고 있는데, 아주 붙임성이 좋은 아가씨였다. 박순경을 포함해 동네 청년들에게는 죄다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는 최소장에게도 소장이라는 호칭은 안한지 오래다. 그저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바다다방 주인아주머니는 지혜에게 버릇없다고 늘 나무랐지만 이 아가씨는 전혀 아랑곳없이 제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다닌다. 하지만 최소장은 그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뭘 하긴 뭘 해? 씰 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기왕 온 거니까 커피나 한 잔 주고 퍼뜩 가라.”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언니가 아저씨를 좋아하나 봐요. 제가 여기 온다면 아무 말 안하고 좋아하는 걸 보면 말이예요.”

지혜는 보따리를 풀어 커피를 타기 시작하면서 계속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이 무슨 소리고? 우리 마누라 들으면 내 쫓겨나는 거 볼라카나?”

“에고, 아저씨를 누가 쫓아내요? 그리고 쫓겨나면 우리 집으로 오세요. 언니도 좋아할걸요.”

“얘가 점점.. 씰 데 없는 소리 고마 해라. 그라고, 앞으로 이래 자주 오지 마라. 장사하는 집에서 공짜 커피 자꾸 주면 우짜노?”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모두들 착한 사람들이었다. 바다다방 주인아주머니는 수시로 지혜를 시켜 파출소에 커피를 보내 주고 있었다. 파출소에 간단한 음료를 제공하면서 약간의 편의를 바라고 있을지는 몰라도, 최소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더구나 이 시골에서 제공할만한 편의랄것도 그리 없는 것이다. 그저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다방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인 것이다. 최소장은 그래서 이 마을에서 근무하게 된 걸 늘 고마워하고 있었다.

“니는 니거 아줌마는 언니라면서 우리 소장님은 와 늘 아저씨고? 소장님이라 카든지 아이면 오빠라 카든지. 니거 아줌마하고 나이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박순경이 말참견을 했다. 예기치 못한 말이었지만 박순경 말이 재미있었고, 최소장은 지혜의 대답이 궁금했다.

“오빠는.. 언니는 처녀고 아저씨는 결혼했잖아. 총각은 오빠, 결혼하면 아저씨, 아냐?”

너무나 명쾌한 답이었다. 예상치 못한 지혜의 대답에 최소장은 살짝 놀랐으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맞아, 나는 결혼을 했으니까 아저씨지.’ 실제로 최소장에게는 이미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지혜 나이만한 딸도 있었다.

“그리고 소장님은 싫어. 아저씨가 좋지. 아저씨라 부르는 게 싫으세요? 원하시면 소장님이라고 해 드릴께요.”

“아이다. 소장은 나도 싫다. 아저씨가 좋다”

“니거 아줌마가 처년지 아인지 우째 아노?”

박순경이 다시 한 번 딴지를 걸었다.

“어쨌든 혼자 살잖아. 그러면 언니지 뭐. 오빠는 뭐 총각인가?”

그러고도 두 사람은 한참동안이나 찌그락째그락했다. 이제 최소장은 두 사람의 얘기보다는 커피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원래 최소장은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를 좋아했었으나, 지혜는 설탕을 아주 조금만 넣는다. 뚱뚱한 최소장은 설탕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제 최소장은 약간 쓴 맛이 나는, 지혜가 타주는 커피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최소장은 진한 커피 향과 함께 이 나른한 오후의 한가로움이 너무나 좋았다. 이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했던 경찰 생활이 이 초로의 늙은이에게는 그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뚱뚱한 몸매가 말해주듯 여유로움과 한가로움 그리고 따뜻함이 함께 했던 세월들이었다. 큰 딸아이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고, 작은 딸은 고등학생이고, 늦깎이 아들놈은 내년에나 중학교를 갈 것이다. 그렇게 자랑스러울 것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과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경찰로서, 별 탈 없이 지금껏 지내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진한 커피 맛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아직까지도 두 젊은이들은 뭔가를 쉴새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꿈 많은 경찰초년병이었던 적도 있었고, 세상이 역동적으로 보이던 젊은 시절도 있었지.’ 이제 최소장의 눈꺼풀은 다시 반쯤 감겨 있었다. 그때였다. 최소장 책상 위에서 같이 졸고 있던 전화기가 길게 울어댔다.

“여보세요.”

외부 전화를 받으면서 파출소라든가 최소장이라든가 하며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그저 ‘여보세요’하는 일반 가정용 전화랑 다를 바가 없었다.

“아저씨, 저 민혼데요, 크, 큰 일 났심니더. 사람이 죽었어예. 빨리 좀 와 보이소.”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사는 강씨집 큰 아들 놈이었다. 간간히 외부 사람들에게 낚시 재료를 팔기도 하는 구멍가게인데 가게는 주로 민호놈 엄마가 지키고 있고, 그 아버지나 아들놈은 그저 빈둥대며 낚시하기나 즐기는 처지였다.

“뭐라꼬? 사람이 죽어? 와? 어덴데?”

“뭐라꼬예?”

박순경도 갑자기 지혜와의 재잘거림을 멈추고 얼굴이 굳어졌다. 실제 최소장의 손과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퍼뜩 좀 오이소.”

“무슨 일이고? 누가 죽었노? 니, 거 어데고?”

“여기 자갈마당 구석인데예, 서울서 온 김철수씨 있잖아예? 그 사람이 죽었어예.”

“와? 와 죽었는데?”

“몰라예. 물에 빠져 있어예. 퍼뜩 좀 오이소.”

“그래, 알았다. 거 가마 있거라.”

일단 최소장은 전화를 내려놓았다. 한기가 느껴지며 몸이 떨려왔다. ‘젊은 사람이 왜 죽었지?’

“무슨 일인데예? 누가 죽었어예?”

박순경도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저씨, 누가 죽었어요?”

“몰라. 지씨 집에 세 들어 있던 서울 총각이 죽었단다. 빨리 가보자.”

“저도 가예?”

박순경이 물었다.

“그라모, 니도 가야지. 빨리 가자.”

최소장은 모자를 찾아 들고 또 뭘 해야 하는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 서울 오빠가 왜 죽어요?”

지혜가 벌써 커피잔들을 보자기에 싸며 역시 호들갑을 떨었다.

“저도 갈래요, 아저씨.”

허둥지둥 서둘러 나가는 최소장과 박순경을 지혜가 따라 나섰다.


자갈마당은 동네 앞에 펼쳐진 해안가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다. 산자락을 끼고 있는 조그만 해변엔 모래 대신 크고 작은 자갈과 바위들만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남쪽 곡면을 돌아가면 제법 더 큰 갯바위들이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곤 했다.

봄기운이 감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매서웠다. 특히나 바닷바람은 더하고 이곳 자갈마당은 늘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물들인 듯 푸른 하늘과 검푸른 바닷물 사이에 간간이 하얀 파도가 부서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민호가 다시 한 번 호들갑스럽게 최소장 일행을 맞았다. 베이지색 면바지와 흰색 셔츠를 입은 남자 하나가 바위에 엎어져 있었다. 민호가 말한 대로 김철수였다. 김철수는 원래 이 곳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여름이 끝나가던 무렵이니까 한 육개월 전쯤부터 이곳에 나타난 타지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알려진 김철수는 동네에서 몇 안되는 중국음식점인 중화루를 하는 지씨네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2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라고 최소장은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에 이 청년이 마을에 나타났을 때, 최소장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다. 서울이나 타지에서 낚시를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은 종종 있어도 결코 며칠을 넘기지 않고 다들 썰물처럼 다시 빠져나가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떡하니 방까지 세내어 눌러 앉아 버린 것이다. 서울말을 쓰는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 왜 이런 곳엘 찾아 들었는지 최소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행색으로 봐서 그렇게 넉넉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충분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외딴 곳에 들어 온 것인지, 그리고 여기서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뭔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으나 사람 좋은 최소장은 김철수에게 대놓고 이런 걸 물어보지를 못했었다. 그저 뭔가 말썽을 일으킬 조짐이 있으면 그때 가서 따지고 알아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김철수는 뭔가 특별히 하는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말썽은커녕 동네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게 행동했다. 간간이 민호네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갖고 그를 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최소장은 그에 대해서 더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워낙이 조용한 사람이라 경계를 갖고 지켜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조용하던 김철수가 이렇게 느닷없이 죽어버리다니, 최소장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엎어져 있는 김철수에게 다가간 최소장은 시체를 찬찬히 훑어봤다. 바닷물에 씻겨 버리긴 했지만 그의 뒤통수에서 피가 흘러나왔던 흔적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머릿카락이 피에 엉켜 있었다. 지금은 썰물 때라 그의 시체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지만 간밤의 밀물 때에는 시체의 상당부분을 바닷물과 파도가 씻었을 것이었다. 뒤통수의 상처 말고는 눈에 띄는 상처가 없었다. 최소장은 시체를 돌려 눕혀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역시 이렇다 할 상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저씨, 와 죽었을까예? 누가 죽인겁니꺼, 사고가 난겁니꺼?”

민호가 최소장에게 계속 질문을 해댔다.

“내가 아나? 그런데 와 누가 죽인거라고 생각하노?”

“죽인 거라고 생각하는게 아이라 어찌된긴가 싶어서예.”

“어찌된긴지 낸들 아나. 만호야, 대동병원에 전화해 갖고 상황설명하고 앰블런스 좀 보내라 캐라.”

“예, 소장님.”

대동병원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병원이었다. 제법 규모를 갖추고 앰벌런스까지 있는 병원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특별히 큰 병원이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인근에 병원이 없다보니 이 일대 동네들을 비껴가는 국도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환자를 보기 위해 누군가가 지은 병원이었다. 박순경은 전화기에 대고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으나 이미 최소장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날이었다. 사람이 죽기에는, 그것도 김철수같은 젊은이가 죽기에는 너무 밝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는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고 민호도 입을 닫고 있었다.

“소장님. 저, 담배 하나만 피우겠심니더.”

“그래, 피아라. 민호 니도 담배 피아라.”

“아임니더.”

“개안타. 피아라.”

“예, 그라믄 하나 피우겠심니더.”

민호와 만호가 담배 하나씩을 피워 물었다.

“오빠, 나도 한 대만 줘.”

“가시나가 버릇없이 어른 앞에서..”

박순경이 지혜를 나무랐다.

“아이다. 개안타. 걔도 하나 줘라.”

지혜마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최소장은 지난해 초부터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1년도 넘었다. 젊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 최소장은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그는 수첩에다가 지금 상황을 적었다.

‘2002년 3월 6일 오후 2시 48분 강민호 전화신고. 김철수 사망. 자갈마당 서쪽 귀퉁이.’

“그런데, 니는 여기 뭐하러 왔노?”

최소장이 불쑥 민호에게 물었다.

“지야 뭐.. 낚시하러 왔지예.”

바위 저 편에 민호가 가져온듯한 낚시도구가 있었다. 민호가 이곳에서 자주 낚시를 한다는 걸 최소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니 이 사람 잘 아나?”

“김철수씨예? 잘 모름니더. 간혹 우리 집에 이것저것 사러오긴 하는데, 그것 말고는 모름니더. 한 번도 제대로 얘기도 안해봤어예.”

“와? 젊은 사람들끼리 친하게 안 지내나?”

“아니예. 이 사람은 서울 사람인데다가, 워낙 조용해서 우리하고 얘기도 안했심니더. 내뿐만이 아이고 동네 사람 누구하고도 친하게 지내진 않았을 거라예.”

“지혜 니도 이 사람 잘 모르나?”

“예, 아저씨. 간혹 저희 다방에 오긴 했는데, 조용히 신문만 보다가 가곤 했어요.”

지혜는 약간 망설이는 듯 했으나 이내 대답했다. 최소장은 미간을 한 번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

“이 사람 서울 집 알 만한 사람 없나?”

“없을걸요. 중화루 아줌마가 혹시 아실런지 모르지만요.”

그때, 저편에 엠블런스가 와서 서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들 것을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만호야. 이 사람 호주머니 뒤져 소지품 다 꺼내라.”

“예? 제가예?”

“그럼, 니가 하지 누가 하노? 내가 하까?”

“알았어예.”

김철수 소지품을 다 챙기고 난 뒤 병원에서 온 사람들로 하여금 시체를 가져가게 하며 최소장은 당부의 말을 했다.

“연고자를 찾아 곧 연락할 거이까네 고때까지만 시신 보관 좀 해 주이소. 원장님께 따로 전화 드리겠지만 해부는 않더라도 와 죽었는지는 좀 살펴봐 달라고 하이소.”

앰벌런스는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민호, 니 낚시 하고 갈꺼가?”

“아임니더. 낚시할 기분이 나겠심니꺼.”

“그래. 집에 가 좀 쉬라. 나중에 또 연락할지도 모르겠데이. 그라고, 사람들한테 아직까지는 소문내지 마라. 우째된 긴지는 알아봐야 안 되겠나, 알았제?”

“식구들한테도 말하믄 안됨니꺼?”

“식구들한테는 말해도 된다. 그래도 다른데는 말 못하게 해라, 알았제?”

“예, 알았심니더. 그럼 가볼께예.”

“우리도 가니까 데리다 주께. 지혜야, 니도 소문내지 마래이.”

“예, 알겠어요. 언니한테는 얘기해도 되죠?”

“그래. 자, 우리도 가자. 만호야 소지품 잘 챙기라.”

“예, 소장님.”


파출소로 돌아온 최소장은 대동병원으로 전화를 해 원장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김철수의 사인을 찾아줄 것을 다시 한 번 부탁했다. 그리고는 박순경이 쏟아내 놓은 김철수의 소지품을 살피기 시작했다. 휴대폰과 지갑, 동전과 약간의 지폐, 몇 개의 열쇠가 같이 묶여 있는 꾸러미 하나 그리고 담배와 라이터가 전부였다.

“만호야. 이 전화기에 기억돼 있는 전화번호 전부하고, 온 전화, 건 전화 전부 좀 찾아서 적어 놔라.”

“예, 소장님.”

최소장은 휴대폰을 박순경에게 건네고 자신은 지갑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갑 속에는 또 약간의 돈과 신용카드 둘, 전화번호를 빼곡히 적은 쪽지 하나, 그리고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이 나왔다.

“어, 여기 서울집이라고 된 전화번호도 있는데예.”

“그래, 전부 좀 적어라. 건 전화, 받은 전화도 전부.”

“예.”

그런데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을 보던 최소장은 약간 놀랐다. 이름이 김철수가 아니라 김요셉이라고 되어 있었다.

“만호야. 이 사람 이름 김철수 맞나?”

“예, 맞는데예.”

“누가 그라던데?”

“예?”

“누가 김철수라 카더노?”

“누구라니예? 다들 김철수라 카든데예.”

“그래? 그런데 여기는 김요셉이라고 돼 있는데.”

“그래예? 잘 모르겠는데예.”

“그래, 알았다.”

김철수, 아니 김요셉의 나이는 31살이었다. 보기보다는 나이가 든 편이다.

“이 사람, 서른 한 살이나 됐나?”

“그래예? 몰랐는데예. 그래 나이가 많나? 난 내하고 비슷한 줄 알았는데.”

“니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 그래, 아는 게 이래 없나?”

“민호 말대로 이 사람하고 친한 사람 없어예. 사실 이 사람, 늘 집에만 있지 밖에 나와 잘 돌아 다니지도 않았어예.”

주민등록증에 나와 있는 주소는 서울의 강남구 논현동으로 되어 있었다. 면허증에도 똑같았다. 이제 서울 집으로 연락을 해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게 최소장에게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그는 계속 지갑을 뒤져 나갔다. 그런데 또 하나의 면허증이 나왔다. 그것은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발행된 면허증이었다. 발행일은 1997년 6월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적어도 1997년 6월 좀 전부터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을 미국에서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짧은 기간 다니러 간 사람이 미국 면허증을 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국에 아주 오랫동안 산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사람, 한국말 잘했나?”

“예? 그럼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 잘하지 못 합니꺼?”

“미국에 산 사람인 모양인데?”

“그래예? 몰랐어예.”

“알았다.”

최소장은 박순경이 동네에 같이 사는 이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아는 게 없는가 싶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아무리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짜증이 났다.

“여기 전화번호 다 적었어예.”

박순경이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어서 건넸다. 시키지 않았는데, 기억시켜 놓은 번지수도 같이 적어 놓았다. 그리고 최근에 받은 전화 10개와 최근에 건 전화 10개도 같이 적어 놓았다. 최소장은 시킨 일을 꼼꼼히 잘 해준 박순경에게 조금 전에 비록 속으로이긴 하지만 짜증을 냈던 사실이 좀 미안해졌다. 다시 한 번 서울의 김요셉 가족에게 그가 죽은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사람 서울 집에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려야 할긴데.. 만호야, 니가 할래?”

“예? 싫어예. 소장님이 하이소.”

“니가 좀 하지.”

“에이, 싫어예. 제가 뭐라캅니꺼. 소장님이 하이소.”

“그래, 알았다. 야, 나가자. 병원에 갔다 오자.”

“아니, 전화는 안 하십니꺼?”

“갔다 와서 하지 뭐. 어차피 우예 죽었는지도 알고 하는 게 안 낫겠나.”

“예.”


병원은 생각보다 붐비고 있었다. 이런 시골에 무슨 환자가 그렇게 많을까 싶은데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과 줄무늬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최소장은 곧바로 원장을 만나러 갔다. 박순경이 뒤에서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다. 평소에 실없고 부실해 보이던 박순경이 오늘따라 약간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장원장과 최소장은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장성진원장은 서울의 조그만 종합병원 정형외과병동에서 근무하다가 몇 해 전부터 이곳으로 와서 대동병원의 원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최소장과 나이는 비슷해 보였다. 그 역시 최소장과 비슷하게 이곳 사람들을 아주 좋아하고 있었다. 의사로서의 예리함보다는 수더분한 시골 사람으로 보였다. 서로 수인사를 나눈 뒤 최소장은 곧바로 김요셉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전화로 부탁드렸던 거.. 서울 총각 말인데예. 와 죽은 거 같십니꺼?”

“머리 뒤에 상처가 났어요. 아마 바위에 심하게 부딪힌 모양이예요. 다른 곳엔 이렇다 할 상처가 없어요.”

“바위에 부딪혔다고예? 넘어져서 그런 겁니꺼? 누가 돌로 때린 거는 아임니꺼?”

“글쎄요. 자갈마당 바위에서 미끄러져 크게 머리를 찧을 수는 있겠죠. 아니면 누가 큰 돌로 머리를 가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거구요. 저로서는 미끄러졌다, 때렸다를 알 수는 없죠.”

“누가 뒤에서 밀어서 머리를 다치게 했을 수도 있겠네예?”

“예, 그렇겠네요.”

“아까 제가 살펴본 바로는 단 하나의 상처로 즉사한 거 같던데, 원장선생님도 그렇게 보심니꺼?”

“예, 그건 소장님 말씀이 맞을 겁니다. 머리 뒷부분의 큰 상처 말고는 다른 상처가 없었거든요. 그 곳에 쓰러진 뒤 바위에 쓸린 상처들만 있고요. 그것도 대부분 사후에 생긴 상처들이라고 보입니다.”

“다치고 나서 죽을 때까지 살려고 발버둥 친 흔적도 없었어예?”

“네, 없다고 봐야 될 겁니다. 즉사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바위 위에 넘어진다고 그렇게 즉사할 수도 있슴니꺼?”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재수 없이 넘어져 곧바로 사망할 수도 있죠. 더구나 그곳은 아시다시피 바람도 심하고 좀 미끄러운 편이잖아요.”

“사람이 뒤에서 돌로 때리는 경우는 어떻슴니꺼? 단 한 번의 가격으로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기도 함니꺼?”

“글쎄요, 그것도 그럴 수도 있겠죠.”

“원장선생님이 보실 때,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크다고 보심니꺼?”

“글쎄요, 아시다시피 전 단지 의사라서 다른 건 잘 모르죠. 싸움을 했다거나, 반항을 했다거나 하는 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사고였다고 보는 편이 나을 듯 한데요.”

“알겠슴니더. 그라고 다른 뭐 특별한 거는 없었슴니꺼?”

“아뇨, 뭐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해부를 해보실 필요는 없심니꺼?”

“없다고 봅니다. 워낙 눈에 뻔히 보이는 큰 상처 하나뿐이라서요.”

“죽은 시간은 언제쯤으로 봐야 합니꺼?”

“바닷물에 많이 닿긴 했지만, 시체의 경직 정도나 피부 상태로 봐서는 어젯밤쯤으로 봐야 할거예요.”

“좀 더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예?”

“글쎄요, 해부를 해보면 좀 낫긴 하겠지만 우선 보기는 어젯밤 9시나 10시부터 오늘 새벽 한, 두시로 보시면 될거예요.”

“잘 알겠심니더.”

“해부 해볼까요?”

“아니예. 아직 그럴 필요는 없겠지예. 여하튼 고맙심니더.”

“별 말씀을요. 그런데 소장님은 타살로 보십니까?”

“글쎄요. 지금까지 봐서는 타살은 아닌 것 같심니더.”

“어째서요?”

“원장님 말씀대로 싸우거나 반항한 흔적이 너무 없어예. 하지만 바람소리, 파도소리 등으로 시끄러운 바닷가에서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내리쳤다면 반항할 틈이 없었을 수도 있겠지예. 그런데 결정적인 거는 상처가 하나뿐이라는 겁니더. 사람이 사람을 돌로 내리칠 때, 딱 한 번만 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함니더. 한 번 내리치고 사람이 아무리 곧바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더라도, 죽었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몇 번 더 내리치게 되겠지예.”

“아, 그렇군요. 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자,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심니더. 도움 주셔서 정말 고맙심니더. 이 사람 수첩에서 서울 가족 전화번호를 알아냈는데, 곧 연락해서 수습하도록 할테니까 고때까지만 좀 시신을 보관해 주이소.”

“알겠어요. 염려마세요. 그럼 조심해 가십시오. 언제 소주나 한 잔 하시지요. 이곳에 친구가 없어서요.”

“아이구, 저야 좋지예. 일간 한 번 연락 드리겠심니더. 진짜 소주나 한 잔 하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