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10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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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3. 9 토요일


“니, 그 글 다 읽었나?”

“예. 소장님도 다 읽었심니꺼?”

“그래.”

“굉장하지예.”

“그래.”

그리고 두 사람은 더 말이 없었다.

“김마리아씨한테는 언제쯤 전화 하실겁니꺼?”

“지금은 너무 빠르다 아이가. 조금만 있다 해야지.”

출근하고 얼마 안 된 시간이라 전화를 하기에는 좀 이른 느낌이라고 최소장은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때 전화벨이 먼저 울었다. 최소장은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소장님이시죠? 저, 김마리아예요. 김철수씨 동생되는.”

최소장은 자세를 바로 했다.

“예, 최소장입니더.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던 참인데예.”

“일찍 나와 계시네요.”

“그래, 장례는 잘 치루셨심니꺼?”

“예, 덕분에요.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저, 바쁘시지 않으면 지금 좀 찾아 뵈도 될까요?”

“예? 지금예? 서울아이심니꺼?”

“사실은 가까이 와 있어요.”

“아이구, 그래예. 언제든지 오이소. 안 그래도 물어볼 게 많심니더.”

“예, 그럼 곧 가겠어요.”

전화는 끊겼다.

“와.. 김마리아씨가 지금 여기 온담니꺼?”

“그래.”

최소장은 김마리아가 이렇게 서둘러 그를 만나러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둘고 있는 건가? 최소장 생각에는 어제 겨우 오빠의 장례를 치뤘을텐데 이렇게 이른 아침에, 그것도 서울서 그래도 5시간은 떨어져 있는 이곳에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최소장은 눈을 감고 책상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차가 다가오는 느낌도 없이 파출소 문이 열렸다. 최소장은 놀라 눈을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아니었다. 김마리아가 아니라 지혜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최소장을 재미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손에는 예의 커피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아니, 아저씨. 누구 기다리고 계세요? 왜 그렇게 깜짝 놀라세요?”

“어, 아이다. 그런데 오늘은 와 이래 꼭두새벽부터 왔노?”

“오늘 철수오빠 동생한테 연락하실거잖아요.”

“그것 때문에 이래 일찍 왔나?”

박순경이 끼어들었다. 지혜는 박순경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최소장에게 말했다.

“아저씨, 지금 전화해 보세요. 뭐라 하나 좀 듣게요.”

“그랄 필요 없다. 지금 그 아가씨 이리 오고 있다. 다 왔단다.”

박순경이 지혜에게 말했다. 지혜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요?”

잠시후 지혜가 말했다.

“그래서 나 들어올 때, 아저씨가 깜짝 놀랐구나. 그 아가씨인줄 알고.”

“그라이까네 퍼뜩 가라. 그 아가씨 오기 전에.”

“싫어. 내가 왜 가? 나 여기 있을래.”

최소장도 지혜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처 그 말을 하기도 전에 하얀색 코란도 한 대가 파출소 앞에 멈춰 섰다. 검은색 쟈켓과 바지로 된 정장차림의 여자가 내렸다. 김마리아였다. 170센티가 넘을 것 같은 키에 늘씬한 몸매였다. 다시 봐도 매력적이었다. 여전히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파출소로 들어왔다. 잠시 동안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최소장은 예의를 다해 다시 한 번 오빠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를 표했고, 김마리아는 그런 최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리 좀 앉으시지예.”

최소장은 한 쪽에 마련된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김마리아는 지혜를 보고 있었다. 지혜도 김마리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저기, 둘이서만 얘기하면 안될까요? 어디 커피숍에라도...”

김마리아는 조심스럽게 최소장에게 얘기했다.

“그랄게 아이고 저희가 잠깐 나갔다 오겠심니더.”

박순경이 눈치 빠르게 먼저 거들고 나왔다. 그는 이미 지혜의 손목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래, 그래라. 다방에라도 가 있어라.”

“예.”

지혜는 커피 보따리도 챙기지 못하고 박순경의 손에 끌려 나가고 말았다.

“죄송해요.”

그들 뒤에다 대고 김마리아가 예의바르게 고개까지 숙여가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최소장은 김마리아를 의자에 앉히고 지혜가 풀어 놓은 커피를 잔에 따라 주었다. 둘은 마주보고 앉았다.

“그럼 제가 먼저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세요.”

“아가씨는 아가씨 아버님이 오빠를 죽였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가 화장실에 둔 것, 찾으신 모양이네요.”

“찾고 말고 할게 있심니꺼.”

박순경 말에 따르면, 쪽지와 디스켓은 숨겨진 게 아니고, 누구나 화장실에 들어가면 쉽게 눈에 띠는 곳에 곱게 놓여 있었다고 한다.

“네. 혹시 디스켓, 읽어 보셨는지요?”

“예,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을 죽인다는 건 이해가 안 가는데요.”

“오빠한테서 사고가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흔적은 전혀 없었나요?”

김마리아는 내 말에 반응은 안하고 다시 물었다.

“예. 찾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사고라는 증거는 있나요?”

“글쎄요... 사고라는 증거라기 보다는 사고라고 추정되는 사항들은 좀 있어요.”

“그게 뭔데요?”

최소장은 잠시 일어서서 잔에다 물을 가져왔다. 그는 물을 홀짝거리며 얘기를 계속했다.

“우선, 오빠의 사인이 뒷머리에 받은 충격 때문이었는데.. 단 하나의 상처뿐이었습니다. 보통 살인을 한다면 한 번만 내리치지는 않습니다. 죽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두세 번 더 가격을 하게 되어 있죠. 그런데 오빠에게는 말씀드린 대로 하나의 상처뿐입니다. 미끄러운 바위에서 넘어져 재수.. 운 나쁘게도 뒷머리를 다치신 거고, 즉사하셨다고 봐야 합니다.”

“그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죠.”

“그리고 또요?”

“오빠의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는 겁니다. 동네 불량배들에 의한 우발적인...”

“소장님, 전 동네 불량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예요. 아빠가 죽였다니까요.”

“아버님이 그날, 집을 비우셨나요? 오빠가 사고 난 날 말이예요.”

“아뇨. 하지만 사람을 시켜서 죽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까지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디스켓 보셨잖아요?”

“그건 이유라고 보기엔 좀...”

“소장님. 소장님도 그날 저희 엄마와 아빠를 보셨잖아요. 아빠는 목사예요. 평생을 교회와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살아오셨어요. 엄마와 아빠는 오빠를 자식이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악마라고 생각했어요. 평생을 확신을 갖고 믿으며 살아온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남도 아니고 자식이 그렇게까지 부정하고 비방하고 욕을 해대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길 사람들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식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희생할 사람들이예요. 다시 말하면 그 누구라도 죽여 버릴 거라는 얘기예요.”

김마리아는 약간씩 흥분해 가고 있었다. 선글래스에 가려져 눈은 안 보였지만 팔이 가늘게 떨려 오고 있음을 최소장은 느낄 수 있었다.

“소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땠어요? 저희 아빠 보셨잖아요.”

“예, 물론 교회에 아주 열심이시구나 하는..”

“그 정도가 아니잖아요.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소장님도 저희 엄마 아빠가 오빠를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랬다. 최소장도 그런 생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예, 솔직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에요. 그들은 미쳤다니까요. 교회나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오빠나 저라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예요.”

김마리아는 선글래스를 벗었다. 그녀는 급기야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선글래스에 감춰져 있던 두 눈은 지금 처음 우는 눈이 아니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밤새 울었었나 보다. 최소장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곧 잠잠해졌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이해합니다. 실은 저도 약간은 아버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아가씨가 이렇게까지 확신을 하시는 게 좀 이해가 안 갑니다. 더구나 그분들은 어쨌든 아가씨 부모님이잖아요.”

“제 오빠가 죽었는데요, 소장님. 전 오빠를 잘 알아요. 결코 남에게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에요. 종교나 신에 대해서는 나쁘게 말할지 몰라도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착하게 대했어요.”

“그래요. 비록 오빠가 조용히 지내기는 했지만 동네 사람 모두가 오빠를 나쁘게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모두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빠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단 말이에요. 오빠가 불쌍해요. 오빠는 사고가 난 게 아니에요. 절대로요.”

“알았어요, 아가씨. 진정하세요. 사실 저도 좀 더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김마리아는 점차 이성을 되찾는 듯했다. 최소장도 조용히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김마리아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왜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김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 아가씨, 누구예요?”

“예?”

“아까 여기 있던 아가씨 말이에요. 젊은 경찰아저씨 애인이에요?”

그녀는 지혜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아이라예.”

그때가지 표준말을 쓰던 최소장이 진한 사투리로 대답했다.

“그럼, 저희 오빠 애인인가요?”

최소장은 깜짝 놀랐다.

“그런 건 아니고...”

“괜찮아요.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전 처음부터 알았어요. 그 아가씨 저희 오빠 좋아했었죠?”

“예.. 하지만 특별한 사이는 아이고...”

“그걸 소장님이 어떻게 아세요? 특별했는지 아니었는지.”

“지혜가...”

“그 아가씨 이름이 지혜예요?”

“예, 정지혜예요. 아니 최지혜예요. 걔는 아주 좋은 아이예요. 거짓말 같은 거 할 아이가 아니고...”

“예, 그렇게 보였어요. 다방에서 일하나 보죠?”

“예. 그걸 어떻게?”

“여기 커피가 있잖아요. 보통 경찰서에 이런 커피랑 커피 잔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요.”

“아, 예.”

“나중에 저녁에 다 같이 만날 수 있을까요? 지혜아가씨하고 말이예요. 오빠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 해 드릴게요.”

“사실 여쭤볼 게 아주 많습니다. 아버님이나 어머님, 오빠에 대해서 말이예요. 물론 김마리아씨에 대해서도요.”

“예,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저녁에요. 지금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요. 사실 밤새 운전해 왔거든요.”

“아, 예. 그래서 이렇게 일찍...”

“예. 도착해서 호텔 방만 잡아 놓고 바닷가 구경 좀 하다 바로 이리로 온 거예요.”

“하지만 오늘 서울 가실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안 갈 거예요. 그 지옥 같은 데 다시는 안 갈 거예요.”

“예?”

“그럼 있다 봬요. 제가 저녁에 전화 드리면 되겠죠?”

“몇 시쯤에...?”

“글쎄요, 일어나는 대로 전화 드릴게요. 참 토요일인데 일찍 퇴근하시는 거 아니에요?”

“여긴 시골이라 그런 거 상관없어요. 제 핸드폰으로 전화하세요.”

최소장은 깨끗한 메모지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럼 전화 드릴게요.”

“예. 푹 쉬시고 전화주세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참 핸드폰 갖고 계시죠?”

“그럼요.”

“아, 그리고... 저녁에 우리 박순경하고 같이 가도 될까요? 그 친구도 아주 괜찮은 친구예요. 더구나 어차피 저를 도와 같이 수사를 할 친구거든요.”

“그럼요, 소장님. 소장님은 참 좋으신 분 같아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좋은 말만 하시는군요.”

“아니, 정말로 괜찮은 아이들이라서...”

“나중에 뵐게요.”


어느덧 시간은 점심때가 돼 가고 있었다. 최소장은 박순경에게 전화를 했다. 박순경은 지혜가 일하는 다방에 앉아 최소장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장은 김마리아와의 대화를 대충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저녁에 그녀와 만나기로 했다는 것도. 물론 지혜에게도 그렇게 얘기하도록 했다.

“니도 인자 들어가 좀 쉬어라. 나도 집에 들어갔다 올란다.”

“예.”

“그런데 니는 토요일인데 그래 데이트도 안하나? 혹시 지혜하고 데이트하는 거 아이가?”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예. 나중에 전화 주이소.”

“그래, 알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최소장, 박순경, 지혜 그리고 김마리아는 바닷가 식당에 앉아 있었다. 최소장은 어디서 만나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바닷가 말고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들은 오징어회, 소라, 멍게 등 몇 가지 해산물과 매운탕을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김미리아는 이미 자신의 부모와 오빠,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적어도 최소장이 궁금해 할 만한 얘기는 거진 다했다.


그녀의 얘기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할아버지도 목사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아버지 김수영은 어릴 적부터 교회 일에 열성을 다했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주 총명하고 공부를 잘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신학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목사의 길을 선택했다. 신학대학을 마친 그는 당시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던 유학을 갔다. 영국왕실신학대학이었다. 유학 중에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얼마 안 있어 그는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지금의 믿음교회를 만들어 목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전 인생을 믿음교회에 바쳤다. 그는 오빠인 요셉과 동생 마리아를 낳았고 둘 다 교회 속에서만 자라났다. 그녀나 그녀의 오빠는 교회 밖의 일은 아예 모르고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녀나 그녀의 오빠는 착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평범하게 자랐다. 김요셉은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을 들어갔고 2년 있다 그녀도 연세대학교로 진학했다. 그녀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성가나 교회음악 위주로 노래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얌전하게 아버지와 교회와 신앙과 하나님에게 복종만 해오던 오빠가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점차 말이 없어지더니, 신앙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과 회의를 품는 듯했다. 하지만 이를 심각히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들 요셉이 머지않아 평소의 착한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유학길에 나섰다. 아버지와 달리 그는 미국으로 갔다. 시카고에 있는 신학대학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그가 유학을 간 지 단지 한 학기가 지나서 그는 학교를 옮겨버리고 말았다.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으로 다시 입학을 했다. 그의 부모는 깜짝 놀랐다. 수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오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더 이상 엉터리 사기극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은 제가 살 거예요. 인간답게 말이예요. 엉터리 여호와의 종이 아니라 주체적인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말이예요.’ 그의 부모는 몇 번이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마침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오빠를 악마, 마귀, 사탄이라고 부르는 걸 여러 번 들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런 악마를 더 이상 아들로 인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고, 그 시점에 그녀의 오빠도 독립을 선언했다. 그녀도 나중에 유학을 해봐서 아는데, 경영대학원에는 장학금이라는 게 없다. 그녀의 오빠는 비싼 시카고대학의 학비를 벌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했을지 짐작이 간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그녀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녀는 오빠가 있는 시카고 쪽으로 가기를 원했으나 아빠가 결단코 반대하여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에서도 성악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그녀와 오빠가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부모가 그들이 만나는 걸 극히 싫어했기도 했고, 사실상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둘 다 하는 학업이 있어서 쉽게 만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 전화 통화나 이메일을 주고받긴 했다. 여전히 오빠는 기독교와 여호와를 부정하는 얘기들을 많이 했었다. 그즈음 오빠는 자신의 이름은 김요셉이 아니라 김철수라고 했다. 비록 아버지가 지어 주셨지만 요셉이라는 서양 이름을 그는 거부한다고 했다. 여호와의 종, 하나님의 아들 김요셉에서 사람의 아들 김철수로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단 한 번 그녀가 학기 중에 잠깐 짬을 내어 시카고로 가서 오빠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오빠는 약간 야위긴 했지만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평화스러워 보여서 좋았다. 그녀의 오빠는 기독교와 여호와를 벗어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수 차례 얘기했었다.

김철수는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는 박사과정의 공부를 계속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깨끗하게 거절하고 미련 없이 귀국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는 가지는 않았다. 그는 마땅히 취직도 하지 않은 채, 친구 집들을 전전하며 가벼운 아르바이트 일만 하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주변의 얘기를 들으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간히 주식투자도 했는데,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기독교를 비난하는 갖가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만 인터넷에 자신이 쓴 글들을 간간히 올리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잡지사에 글을 보내기도 했다. 그 중에 몇몇은 실제 활자매체를 이용한 출판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버지 김수영은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악마가 태어났다며 노여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렵 실제 김철수에 대한 몇 건의 린치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 린치는 점점 도를 더해 갔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녀의 생각에는 그 중 일부는 틀림없이 아버지 김수영의 사주에 의해서 이뤄진 일이라고 했다. 그녀는 오빠에 대한 당시의 린치가 모두 아빠에 의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그 중 일부는 틀림없이 자신의 아빠같이 정신 나간 일부 기독교 중독자(그녀가 그렇게 표현했다)들에 의해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김철수가 쓰는 글은 그 정도를 더해 갔고 그에 대응하는 린치도 더해갔다. 그러다가 그녀의 오빠가 사라졌다.

미국에서 그녀의 오빠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녀는 무척 놀랐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악마 같은 놈이 악마 같은 짓만 하고 다니니 어디 성할 수가 있겠냐며 분명히 하나님의 벌을 받아 어디선가 죽어 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도 오빠가 죽었을지 모른다는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녀는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나무랐다. 하나님의 벌을 받아 없어진 악마 때문에 휴학을 했다고 화를 낸 것이다. 그녀도 점차 그녀의 부모와 기독교, 여호와와 교회가 싫어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어느새 그녀 오빠의 지지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오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 동안 오빠가 지내온 얘기며 린치를 당한 얘기, 그리고 오빠가 썼다는 몇 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으로는 사라진 오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두 달 전쯤에 오빠에게서 이메일이 왔었다. 다름 아닌 마리아가 최소장에게 준 바로 그 내용의 글이 첨부파일로 붙어 있는 메일이었다. 그는 아직 그녀가 미국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녀의 학업을 걱정하고, 그녀의 생활을 걱정하고, 마지막으로 기독교라는 수렁에 빠져 있는 그녀의 인생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읽어보라며 예의 그 글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는 지금은 예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했었다. 물론 그는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린치를 당한 것에 대한 얘기도 없었다. 틀림없이 그는 동생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꺼려했기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오빠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졌다. 그녀는 부모님께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부모의 반응은 그야말로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무서움이었다. 오빠가 자신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는 얘기를 그녀의 부모에게 했을 때 그녀는 분명히 보았고 분명히 느꼈다. 엄마나 아빠 두 사람에게선 똑 같이 ‘아니, 그 악마같은 놈이 아직도 안 죽었단 말이야?’ 하는 실망감이 표현되어졌다. 엄마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주여, 감사합니다.’도 이번에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할 수 있다면 ‘주여, 왜 이 악마를 없애지 않고 아직까지 살려 두십니까?’ 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니 그녀는 분명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리아는 어머니의 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인 김수영목사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끈질긴 놈...’ 마리아는 분명 들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에 대해서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그 순간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했다. 오빠의 말이 옳다는 확신이 그녀에게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단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 그녀는 집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둘이서만 조용히 수근거리는 일이 잦아진 엄마, 아빠. 외출이 잦아진 아빠. 더구나 아빠는 기사도 없이 손수 운전해서 외출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녀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져 간다고 느꼈다. 그녀는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그녀에게 보내온 파일!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를 확인했다. 없었다. 오빠가 보내준 기독교를 비방하는 파일이 없어졌다. 그녀의 컴퓨터에서 뿐만이 아니라 아예 메일서버에서도 지워져 버린 이후였다. 그녀는 아빠가 그녀의 컴퓨터를 손댔다는 걸 알았다. 컴퓨터에서 파일 하나를 지우는 일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비밀번호도 모르는 남의 메일을 서버에서부터 지워버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빠의 컴퓨터 실력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었고, 그 일은 아빠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몇 가지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녀의 메일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일은 아빠에겐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서버에서 지워버리면 된다. 간단한 일이다.

그녀는 아빠에게 이 일을 따졌다.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나쁜 글을 읽고 아빠에게 얘기하지 않은 딸을 나무랐다. ‘오빠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니고 분명히 마귀가 들린 거야. 그러니 그런 얼토당토않은 글을 쓰고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것 아니겠니? 너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엉터리 같은 오빠의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놈은 이미 네 오빠가 아니고 악마이고 사탄이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될 것이다. 주님은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도 오빠가 빨리 제정신이 들거나 아니면 차라리 빨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나는 이미 네 오빠가 순종적인 주의 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면 차라리 네 오빠가 빨리 죽는 게 낫지 않겠니? 하나님께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말이다.’ 그녀는 아빠의 이 같은 말에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빠가 오빠의 소재를 찾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물론 그때는 설마 아빠가 오빠를 죽이기 위해서 소재를 찾는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단지 오빠를 찾아서 더 이상 그런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그런 생활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설마 오빠가 죽는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바로 그녀는 오빠에게 메일을 보냈다. 자신은 지금 휴학 중이고 한국에 나와 있으며 아빠가 오빠를 찾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물론 오빠가 보내준 글을 아빠가 읽었고 아빠는 그 글을 컴퓨터에서 지워버렸다고도 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다시 한 번 글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고, 오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답장 메일을 보내왔었다. 물론 첨부파일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디스켓에 복사를 해서 조심스럽게 간직을 하고 자신의 컴퓨터에서는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녀가 오빠에게서 받은 그 마지막 메일에서 오빠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지옥 같은 교회로, 아빠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가 지금이라도 그 엉터리 같은 교회 일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신이 보기에 좋은 삶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삶을 사신다면 언제라도 아빠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세 젊은이는 주거니 받거니 술들을 마시고 있었다. 김마리아는 특히 오징어회가 아주 맛있다고 했다. 김마리아는 보기하고는 달리 술을 곧잘 했다. 최소장이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세 젊은이들은 벌써 다섯 병째의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최소장은 김마리아가 했던 얘기들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게 이해가 갔다.

“아저씨,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지혜가 최소장에게 말했다.

“어, 아이다.”

최소장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내일 서울로 가 볼까 합니다. 아버님을 뵈러요. 같이 올라가시겠어요?”

최소장이 김마리아에게 말을 건넸다.

“아뇨. 전 거기에는 안가요. 그곳은 제 숨통을 막히게 하는 곳이예요. 거기 있다가는 언젠가 저도 숨이 막혀 죽고 말거예요. 다시는 안가요.”

“그럼 우짤긴데예?”

박순경이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글쎄요. 며칠 여기서 바람이나 쐬고 나서 생각해 보죠, 뭐.”

“미국은 다시 안 가세요?”

이번에는 지혜가 물었다.

“가긴 가야죠. 하지만 모르겠어요. 언제 갈지...”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잤어요?”

갑자기 김마리아가 지혜를 쳐다보며 뜬금없는 말을 뱉았다.

“네?”

“오빠랑 같이 잤냐고요.”

지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린 단지 몇 번 만나...”

“죄송해요. 나쁜 뜻으로 물은 건 아니예요.”

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김마리아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자지 그랬어요.”

“예?”

“우리 오빠랑 자 주지 그랬어요. 오빠, 매력 있잖아요.”

“......”

“오빠, 정말 불쌍한 사람이예요. 지금까지 자기 뜻대로 해본 게 한 번도 없었어요. 늘 엄마 아빠에게 고분고분했죠. 우리 엄마 아빠는 항상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데도 말이예요. 여자 친구 한 번 못 사귀어 봤어요”

김마리아는 약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진정하이소.”

박순경이 쩔쩔매며 김마리아를 다독였다.

“철수오빠,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저도 오빠랑 자고 싶었는데 오빠가 원치 않는 것 같았어요. 오빠는 저를 무시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어요. 늘 저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어요. 전 눈빛을 보면 알아요. 철수오빠는 진정으로 저를 좋아해 줬어요... 오빠가 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지혜마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최소장과 박순경은 약간은 난감했다. 드디어 김마리아가 먼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만해요, 지혜씨. 저도 지혜씨 마음 알아요. 오빠는 그래도 복 받은 사람이네요. 마지막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랑 같이 있다 갔으니...”

그녀는 지혜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오빠는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지혜씨 덕분에요.”

마리아는 더욱 힘주어 지혜를 안았다. 지혜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지혜씨, 오빠 좋아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이예요.”

흐느끼는 지혜에게 마리아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언니...”

지혜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던 둘이 결국엔 떨어졌다.

“미안해요.”

지혜가 눈을 부비며 김마리아에게 말했다.

“아니예요, 지혜씨. 오히려 고마워요. 오빠를 위해서 울어 주는 사람은 저 말고 지혜씨 뿐이예요.”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요, 지혜씨.”

“언니가 좋아졌어요.”

“전 처음부터 지혜씨가 좋았어요.”

“사실 어제도, 그제도 사람들 모르게 많이 울었어요.”

“그랬어요? 고마워요.”

“저도 고마워요, 절 좋게 봐 줘서요.”

“좋은 사람이니까 좋게 보죠.”

이제 어느 정도 슬픈 분위기는 진정된 것 같아서 최소장과 박순경은 안도했다. 술잔이 몇 차례 더 오갔다.

“내일 아빠 만나러 가실 거예요?”

김마리아가 최소장에게 물었다.

“예, 그럴까 합니다.”

“뭘 하실 건데요.”

“글쎄요. 이것저것 물어 봐야죠.”

“......”

김마리아는 말이 없었다.

“뭘 물을 건지는 그때그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제 질문에 대한 아버님의 반응이죠.”

“아, 예. 알겠어요.”

이번에는 김마리아가 이해를 했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우리 소장님, 왕년에는 민완형사로 날리셨심니더.”

박순경이 거든답시고 한마디 보탰는데 오히려 최소장은 무안해졌다.

“언니 참 이쁘다.”

지혜가 빨개진 볼과 물기어린 눈으로 김마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라꼬?”

박순경이 말했다.

“언니, 참 예뻐.”

이번에는 모두 다 알아들었다.

“지혜씨도 예뻐요.”

“아이, 언니. 언니 동생 하기로 했는데 말 놓아. 그냥 지혜야 하고 부르고.”

김마리아는 귀엽다는 듯이 지혜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눈에 웃음이 가득했다. 마치 막내 동생을 쳐다보는 언니의 눈빛이었다.

“언니, 나 언니한테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여전히 웃으면서 김마리아가 물었다. 지혜는 약간 취해 보였다.

“이름!”

“뭐!”

모두들 지혜를 쳐다봤다.

“마리아가 뭐야, 마리아가. 그건 요셉과 똑같이 서양귀신 이름이잖아. 언니도 이름 바꿔!”

“지혜야!”

박순경이 김마리아 눈치를 살피며 지혜를 나무랐다.

“아니예요. 지혜씨 말이 맞아요. 확실히 오빠는 요셉이 아니고 철수였고, 저도 이제 마리아 안 할래요. 누가 제 이름 좀 지어 주세요. 지혜씨, 그럼 지혜씨가 내 이름 하나 지어줘요.”

“영희! 영희가 좋아요. 오빠가 철수니까 언니는 영희. 철수야, 영희야 할 때 영희!”

“어머, 정말 좋아요. 오빠가 너무 좋아 하겠어요. 영희, 김영희.”

“이제부터 언니 이름은 영희다 김영희. 아저씨도 그렇게 불러야 돼요.”

“얘가 점점...”

최소장도 김마리아 눈치를 보며 지혜를 나무랐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김마리아는 단지 술취한 지혜의 술주정을 받아 주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아니예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저도 진작 이름을 바꿨어야 했어요. 이제부터 진짜 김영희할래요.”

김마리아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야 최소장과 박순경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한참 있다 김마리아, 아니 김영희가 지혜에게 살짝 말했다.

“사실 아까 지혜씨한테 이름 지어달라고 할 때, 지혜씨가 어떤 이름을 지어 줘도 그대로 할려고 했어요.”

“왜, 언니? 언니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아뇨, 지혜씨. 전 그때, 지혜씨가 지어 주는 이름이 오빠가 지어 주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혜씨는 오빠 여자친구잖아요.”

“맞다 맞아. 난 언니 오빠 여자친구지. 그러니 언니, 앞으로도 나한테 잘 해야 돼.”

“물론이죠, 지혜씨. 그런데 영희라는 이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지혜씨 아니면 그런 이름 아무도 생각 못했을 거예요.”

“진짜 마음에 들어?”

“그럼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에이, 말 놓으라니까...”

“아셨죠? 소장님도 박순경님도 앞으로는 영희라고 불러 주세요. 김마리아는 정말 싫어요. 역겨워 졌어요. 어떻게 그런 이름을 여태 썼는지...“

그리고도 그들은 몇 잔씩의 술을 더 마셨다. 김마리아, 아니 김영희가 불현듯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참. 오빠 컴퓨터 조사하셨다고 했잖아요... 혹시 뭐가 좀 있었나요? 신약에 대한 글이라든가...”

“아뇨. 우리 박순경이 꽤 꼼꼼히 뒤져봤는데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심지어 아가씨가 주신 글도 없었어요.”

“그렇겠죠. 그럼 신약에 대한 얘기도 전혀 없었겠네요.”

“예. 일기라든가 메모도 하나도 없었어요. 어쨌든 우리 박순경이 컴퓨터를 그대로 복사해 놓았으니까 아가씨가 한 번 더 살펴봐 주실래요?”

“그러죠. 어디에 복사해 놓으셨어요?”

김영희는 박순경에게 물었다.

“예, 파출소에 있는 컴퓨터에 하드카피해 놓았어예.”

“그럼 제가 내일부터 파출소로 가겠어요. 아, 내일은 일요일이네.”

“괜찮습니더. 아침부터 파출소에 나가 있겠심니더.”

“제가 내일 하드를 하나 사서 가겠어요. 아예 저도 하드카피해서 천천히 살펴봐야겠어요. 보관해 두고 싶은 것도 많을 테니까요.”

“그라이소.”

“물론 그 날 가져가신 오빠 컴퓨터는 아버님이 없애버리셨겠죠?”

최소장이 별 기대 없이 김영희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빠 시신도 내려놓기 전에 컴퓨터를 부셔 버렸어요. 물론 다른 짐들도 하나 남김없이 없애버렸고요.”

최소장도 김수영목사의 광기가 느껴졌다. 그쯤하고 시간이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아서 최소장이 그만 가자고 했고 젊은이들은 아쉬운 듯이 일어섰다. 특히 지혜가 많이 아쉬워했다.

“지혜씨, 나하고 술 한 잔 더 할래요?”

그런 지혜를 보고 김영희가 넌지시 말했다.

“그래, 언니. 한 잔 더 하자. 밤새 마시지 뭐.”

“그럼 제 호텔에 가서 마셔요. 마시다 취하면 같이 자고요.”

“우와, 정말이지? 어서 가자, 언니.”

“지혜야, 아가씨 피곤하시다. 그만 마시고 집에 가라.”

최소장이 지혜를 말렸다.

“어머, 아니예요. 저도 지혜씨랑 있고 싶어요.”

“거 봐요.”

지혜가 영희의 팔짱을 꼭 끼고 최소장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푹 주무시고요...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갈 생각입니다. 정말로 같이 가실 생각 없으신 거죠?”

“그래요, 안 가요.”

“그럼 다녀와서 결과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쯤 오시나요?”

“글쎄요. 내일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며칠 걸릴 수도 있겠죠.”

“아이고, 저 때문에.. 고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죠. 제 일인데요, 뭘. 제가 없는 동안 우리 만호, 아니 박순경이 잘 보살펴 드릴 겁니다. 불편하거나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박순경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헤어져 나가다가 최소장이 몸을 돌리며 김영희에게 한 가지 더 물었다.

“아버님이 컴퓨터를 잘 하신다고 하셨죠?”

“예.”

“얼마나 잘 합니까?”

“수준급이죠. 물론 아주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 수준은 훨씬 넘어선다고 봐야죠.”

“알겠습니다. 인터넷도 잘 하시겠죠?”

“그럼요.”

돌아서는 최소장에게 이번에는 김영희가 한마디 했다.

“아빠 만나시더라도, 저 여기 있다는 얘기는 하시지 말아 주세요. 저 사실은 가출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