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11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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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3. 10 일요일


“만호야, 아직 자나?”

최소장은 아침 일찍 박순경에게 전화를 했다.

“아입니더. 인자 일어나야지예.”

“그래, 일찍 미안하다. 내 지금 서울 갈라꼬.”

“그래예? 잘 다녀오이소. 김영희씨한테는 얘기했십니꺼?”

박순경은 자연스럽게 김영희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이다. 아직 자고 있을낀데 뭐. 어쩌면 오늘 올거고 아이면 며칠 걸릴지도 모르거든... 내 없는 동안에 김영희씨 잘 봐래이. 니도 알겠지만 위험할 수도 있다 아이가.”

“알겠십니더. 염려하지 마이소.”

“그라고 그 디스켓, 다른 사람들한테는 보이지 말고. 지혜나 김영희씨한테도 그렇게 말해 놓고. 무슨 말인지 알제?”

“예, 암니더.”

“그래, 니만 믿는대이. 내 갔다오께.”


아침 일찍 서둔 탓에 최소장은 오후 1시쯤에 김수영목사가 있는 믿음교회 앞에 설 수가 있었다. 그 전날 김영희가 위치와 찾아가는 길을 자세히 설명해 줘서 길 찾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최소장은 우선 그 교회의 웅장함에 놀라고 말았다. 중세시대 유럽의 성을 본떠 만든 교회는 겉에서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붉은 벽돌로 만든 교회는 낮은 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최소장이 서 있는 곳에서는 그 경계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교회를 둘러싼 거리에는 주차된 자동차들로 빈 곳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점심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노래 부르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서로 인사 나누는 소리, 꽤 오랫동안 시골에 묻혀 살던 최소장에게는 모든 것이 짜증스런 소음으로밖에는 안 들렸다.

그는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김수영목사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는지 난감했다. 짜증은 자꾸만 더해 가고 있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김수영목사님을 좀 찾고 있는데요.”

그는 용기를 내어 바쁘게 지나가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에게 물었다.

“목사님요? 사무실에 가서 물어 보시죠.”

그리고 그는 뭘 더 물어보기도 전에 최소장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똑같은 질문을 몇 번 더하고 나서 그는 이번에는 아예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저리로 들어가 보세요.”

질문을 받은 남자는 최소장을 이상하다는 듯이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고는 건물에 붙은 한 쪽 출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최소장은 서울에 오는 5시간 동안의 기차여행에서가 아니고, 여기서 보낸 5분 남짓의 시간 때문에 완전히 지쳐 버렸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서 그 남자가 손가락질 한 출입구를 향했다. 그러다 그는 발걸음을 멈췄다. 저기 김수영목사와 그의 아내가 보였다. 아주 비싸 보이는 정장으로 차려 입은 두 사람은 사무실로 향한다는 그 출입문 앞에서 다른 한 쌍의 부부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대방 남자는 최소장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도 최소장을 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TV를 통해서 많이 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사람인데 한 번 씩 TV에 나와서 전혀 유익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말끝마다 하나님 하나님 운운하는 사람이었다. 최소장은 그들이 대화를 끝내고 헤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김수영목사는 환히 웃고 있었다. 며칠 전 해운에서 접했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환히 웃고 있는 김수영목사의 모습은 아주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악의라고는 없는 선한 사람으로 볼 것이었다. 하지만 최소장은 그의 그런 모습에서 가증스러움을 느꼈다. 김목사가 아무리 선한 모습을 가장하고 있어도 그의 눈빛만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뭔가를 노리는 맹수의 눈이었다. 탐욕과 기만, 권모술수와 속임수로 가득 찬 그런 눈빛이었다. 최소장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김수영목사의 눈은 너무나 기름져 탁한 빛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두 쌍의 부부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소장이 뛰어 들었다.

“목사님.”

최소장이 부르는 소리에 김목사 부부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돌아봤다. 처음에 그들은 최소장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아주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아니 이거, 소장님 아니세요?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 그래.”

다가서는 최소장에게 김수영은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예,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교회 구경이나 하려고 그냥 들렀습니다. 교회가 정말 크고 좋군요.”

김수영은 이런 최소장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 좀 여쭤볼 것도 있고요.”

“물어보다니... 뭘 또 물어볼 게 있지. 하여튼 이리 들어오세요.”

그 사이 김수영의 아내는 다시 그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최소장은 그들 부부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바깥보다 더 화려했다. 긴 복도를 돌아 한 쪽 구석 외진 곳에 김수영의 집무실로 보이는 방이 있었다. 최소장이 근무하는 파출소 전체보다도 훨씬 더 큰 방이었다. 가구들도 아주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장, 구석 진열장에 놓인 도자기 한 점이면 배고픈 아이들이 얼마나 밥을 굶지 않아도 될까를 최소장은 생각했다. 역시 사람 보기에 좋은 일과 하나님 보기에 좋은 일은 다른가보다고 그는 느끼고 있었다. 김수영은 최소장에게 천연 가죽으로 된 안락한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그래,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뭘 또 물어본다고 여기까지 오시었소?”

최소장이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김목사는 아주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최소장은 여전히 방을 둘러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 장례는 잘 치루셨습니까?”

마침내 최소장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물었다.

“그래요, 다 끝났오. 여하튼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아주 좋은 청년이었는데, 졸지에 아드님을 잃고 얼마나...”

“됐어요. 용건을 말하세요. 보시다시피 전 좀 바빠요.”

“아, 예. 죄송합니다. 그럼... 다름이 아니라, 아드님 컴퓨터 말인데요...”

“왜 자꾸 그 놈 컴퓨터 얘기를 해요?”

“예, 그 컴퓨터, 제가 다시 좀 볼 수 있을까 해서요.”

“없어요. 없애 버렸어요. 그런데 왜 자꾸 이래요? 다 끝난 일 아니예요? 그 놈은 사고로 죽었고, 다른 건 없잖아요?”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요.”

“아니라니? 그럼 누가 걜 죽이기라도 했다는 거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석하게도 말입니다.”

“왜죠? 왜 그렇게 생각하죠?”

“혹시 누가 아드님을 죽였다면 누가 그랬을까요?”

“누군들 걜 죽이고 싶지 않겠오? 하나님의 종이라면 말입니다.”

“왜요?”

“그 놈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불경했어요. 그렇게 악독한 놈이 그래, 살기를 원할 수 있겠오?”

“전 목사님이 돌아가신 아드님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이해가 잘 안갑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수 있죠?”

“난 걔 애비이기 전에 하나님 일을 하는 사람이예요. 그 놈이 죽지 않았다면 내 손으로라도 죽이고 말았을 거요.”

“그렇다면 누군가가 목사님보다 먼저 훌륭한 일을 해낸 거군요?”

“뭐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거요?”

최소장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최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드님은 피살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솔직히 전,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아드님은 기독교를 부정하는 많은 글들을 썼다고 들었는데, 잠시 살펴봤던 컴퓨터에서는 그런 걸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고의적으로 없애버린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뱉어놓고 최소장은 김수영의 안색변화를 유심히 살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김수영은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지워버렸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

“그래서 아드님의 컴퓨터를 좀 보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없애 버렸어요. 전 그 아이의 물건은 모두 꼴도 보기 싫어요. 전부 마귀들 린 물건으로 보이니까요.”

“예... 아주 아쉬운 일이군요”

또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별 게 없으면... 전 나가서 교회에 오신 손님들께 인사를 해야 하거든요.”

“아, 예. 그러시겠죠.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최소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김수영은 최소장이 ‘오늘은’ 물러간다는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김수영은 같이 일어서며 최소장에게 건성적인 인사를 했다.

“예,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최소장은 아예 쐬기를 박듯이 다시 오겠다는 뜻을 표했다.

“다시 오실 일이 있나요?”

김수영은 참지 못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모르죠.”

최소장은 문 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돌아서며 말했다.

“아, 참. 개인적으로 한 가지만 더 도와주시죠. 목사님은 컴퓨터를 잘 하시죠?”

“조금 압니다만 왜요?”

어정쩡한 자세로 김수영이 할 수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전 컴퓨터를 잘 몰라서요... 인터넷인가 뭔가로 사람도 찾을 수 있나요?”

“그래요, 동창이든 스승이든 말이오.”

“예, 그런 게 있다는 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 말고요, 일 해줄 사람도 찾을 수 있나요?”

“예?”

김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를 들면 바쁜 모내기철에 일손을 도와줄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농촌은 일손이 바쁠 때가 있거든요.”

“아, 예. 그럼요. 가능하죠.”

“그럼 다른 일손도 구할 수 있겠군요...”

“예?”

“누구를 혼내준다든가, 아니면 죽여준다든가 하는 일 말입니다.”

김수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최소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김수영은 한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있었다.

최소장은 처음부터 이 자신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하려고 김수영에게 갔던 것이다. 그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수영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그리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온 것이다.


“여보세요.”

“어, 송형사, 나, 최강규야.”

최소장은 잠실 어느 뒷골목 커피숍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선배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그래. 아, 인제 송반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반장은 무슨, 선배님도. 그래 어떻게 지내세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말입니다. 갑갑하시지는 않으세요?”

“갑갑하기는 뭐. 나야 늘 잘 지내지. 송형사는 어때?”

“저야 늘 하는 일없이 바쁘죠, 뭐.”

“지금도 일하고 있나?“

“아뇨.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래, 어쩐 일이세요?”

“어, 그냥. 오랜만에 자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말이지.”

“아이고, 고맙습니다. 제가 전화 먼저 드렸어야 되는데... 죄송해요, 선배님.”

“아니야. 한가한 사람이 전화해야지.”

“참, 형수님이랑 애들도 잘 지내시죠?”

“그럼. 다 잘 있지... 그런데 나 여기 서울이야.”

“아이구, 어쩐 일로 서울까지 오셨어요. 지금 어디 계신데요?”

“실은 자네 좀 만나려고.. 여기 잠실이야. 자네집이 잠실이랬지?”

“어디 계신데요? 제가 바로 달려 나가겠습니다.”

“쉬는데 이거 미안하게 됐구만.”

“아니예요. 선배님이 오셨는데 당연히 뵈러 가야죠. 어디세요?”

최소장이 있는 곳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들은 오래 전에 한 팀을 이뤄 일을 했었는데 송원식은 최소장을 잘 따르던 후배였다. 최소장은 송원식이 자신이 찾아온 것을 진심으로 반겨주는 것 같아서 믿음교회에서 구겨졌던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송원식은 모처럼만에 갖는 일요일의 휴식이었지만 기꺼이 최소장을 위해서 그 휴식을 포기하고 자신을 만나러 나와 주었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참동안이나 다시 인사를 나눴다. 송원식의 웃는 낯이 최소장은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요?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선배님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 드려야죠.”

“그래, 고마워. 실은 자그만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이게 사고로 보이는데 살인인지도 모르겠어.”

최소장은 그간의 상황을 간략히 얘기해주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인 김수영목사가 의심스러워.”

“글쎄요, 그 글을 제가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까지야... 하지만 선배님 직감이야 틀린 적이 없었잖아요.”

“처음부터 죽일 의도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혼만 내주겠다는 게 일이 꼬여 죽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은 나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고까지 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아. 어쨌든 이걸 좀 알아봐 줘. 아무래도 김수영목사가 죽였다면 인터넷을 통해서 접촉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고마워.”

최소장은 송원식과 얘기를 하면 언제나 시원스러움을 느꼈다. 송원식은 예나 지금이나 최소장이 원하는 바를 잘 알아준다.

“가능하면 빨리 좀 알아봐 줘. 내가 서울에 오래 있을 수가 없거든.”

“알았어요. 그나저나 오늘은 저희 집에서 주무셔야 됩니다. 여관방 같은 데 가실 생각일랑 아예 마십시오.”

“아니야. 딸아이한테 가야지.”

“딸요? 참, 미라죠, 이름이? 서울에 있어요?”

“그래. 대학생이야.”

“우와.. 그 조그맣던 애가 벌써 대학생이예요?”

“그래. 그러고 보면 세월이 참 많이 흘렀어.

“그래요, 선배님.”

그들은 자리를 옮겨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 잔 더 했다. 송원식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저녁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여러 번 권했으나 최소장이 그런 후배의 와이프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들은 제법 오랫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술을 마셨다. 아주 옛날의 무용담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둘은 정말 잘 맞는 파트너였는데...


2002. 3. 11 월요일


최소장은 귓가를 간지럽히는 조그만 소리에 잠을 깼다. 머리가 약간 무거웠다. 어젯밤 송원식과 소주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옆에서 딸 미라가 컴퓨터에 뭔가를 타이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 내가 시끄럽게 해서 깼나?”

미라가 걱정스러운 듯이 최소장을 쳐다봤다.

“아이다. 인자 일어나야지.”

“아빠는 무슨 술을 그래 마이 묵노?”

딸이 벌써 제 엄마도 잘 안 하는 잔소리를 하고 있다.

“송형사 아저씨 만나 갖고 기분이 좋아서... 니 송형사 기억 안나나?”

“알기는 알겠는데 하도 오래 안 봐서...”

최소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불은 놔두고 대충 씻고 온나. 북어국 끓이났다.”

“북어가 어디 있었노?”

“아침에 사왔지. 어디 있긴 어디 있노.”

최소장은 부엌에 딸린 목욕탕으로 들어갔고 미라는 부엌에서 뭔가를 뚝딱거렸다. 딸아이는 대학교 2학년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대학 입학 후 첫 학기는 기숙사 생활을 하더니 작년 가을 학기부터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단칸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다. 그녀는 기숙사나 하숙보다는 자취가 편하고 좋다고 했다. 최소장이 딸이 사는 방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그만 방 하나에 부엌과 목욕탕이 전부였다. 똑같이 생긴 방들이 쭉 붙어 있는 집이었다. 전부 여학생들이 자취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좀 더 편한 집을 얻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라는 불평은 커녕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믿고 방을 얻어준 부모에게 굉장히 감사하고 있었다.

미리가 끓인 북어국은 제법 제 엄마 맛을 흉내 내고 있었다. 아빠의 잠자리를 챙기고 북어국까지 끓여 주는 딸을 보자 이제 다 커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처럼 아무 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상대적으로 자신은 이제 늙어 가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제법 커피까지 끓여 내 왔다.

“참, 니 교회 가본 적 있나?”

“뭐라꼬?”

“교회 말이다.”

최소장은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생각난 듯이 딸에게 물었다. 미라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교회 한 두 번 안 가 본 사람이 어딨노.”

“니도 가봤나?”

“그래.”

“요새도 댕기나?”

“아이다.”

“와 안 댕기는데?”

“와? 요새 아빠 교회 댕기나?”

“아니.”

“나도 안 댕긴다.”

“와?”

“그냥. 나는 별로 안 좋던데. 늘 돈만 내라 캐쌌코.”

“그래?”

“와? 아빠, 교회 댕기고 싶나?”

“아이다. 니가 댕기는가 싶어서. 앞으로도 댕기지 마라.”

“안 댕길끼다.”

“그래, 신랑도 교회 안 댕기는 사람으로 얻어라.”

“아빠는 무슨 소리 하노? 신랑은 무슨 신랑...”

“나중에 말이다. 알았재?”

“그래, 알았다. 나도 교회 댕기는 사람들 별로 안 좋더라.”

최소장은 왠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나를 죽이는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웃음이 났다.

“와 웃노?”

“아이다. 오늘 학교는 언제 가노?”

“지금 나가봐야 된다. 아, 내가 어제 열쇠 하나 만들어 왔거든. 여기 있다.”

딸은 제 집 열쇠를 하나 내놨다.

“그래. 언제 들어 올낀데?”

“아르바이트하고 오면 10시쯤 될끼다. 냉장고에 반찬하고 북어국 남은 거 있거든.. 나중에 배고프면 좀 찾아 묵어라.”

“알았다. 아, 전화기는 어데 있노?”

“전화기? 없는데, 핸드폰 말고는. 핸드폰 주까?”

“아이다. 나도 핸드폰 있다. 그런데 전화기도 없나?”

“핸드폰 있는데 무슨 전화가 또 필요 하노?”

그러고 보니 서울에 혼자 둔 딸아이가 전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는 게 좀 미안했다. 미라는 학교를 간다고 나갔다. 조그만 딸아이의 방에 최소장은 혼자 남겨졌다.

최소장은 박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만호가? 내다.”

“아이고, 소장님. 별일 없으십니꺼?”

“그래. 거기도 별 일 없나?”

“예. 별 일 없심니더.”

“김영희씨도 잘 있나?”

“예. 잘 계심니더. 여기 계신데 바꿔 드릴까예?”

“그래.”

“알았심니더. 그런데 언제 오심니꺼?”

“모르겠다. 내일이나 모레쯤...”

“알았심니더. 잠깐만예.”

그리고 김영희가 전화를 받았다.

“소장님, 수고가 많으시네요.”

“아임니더. 그래, 불편한데는 없으심니꺼?”

“아니에요. 아주 편안해요.”

“뭐 불편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우리 박순경한테 말만 하이소.”

“예. 만호씨가 너무 잘해줘요. 여러 가지로 고마워요.”

“아임니더.”

“그래, 좀 진척이 있나요?”

“그게, 아직은 잘 모르겠고예... 뭐 좀 나오는 대로 연락 드리겠심니더.”

“예, 고마워요. 그럼 수고 좀 더 해 주세요.”

“예, 우리 만호 좀 바꿔 주이소.”

박순경이 다시 전화를 받았다.

“예, 소장님.”

“어, 만호야. 2-3일 내로 내려 갈끼이까네 그동안 김영희씨 잘 보살피래이. 무슨 말인지 알재? 내가 쑤시고 다닌다는 걸 그 쪽에서도 알았으니까네 영희씨한테 헤꼬지할 수도 있대이.”

“알고 있심니더. 염려마이소.”

“그래.”

최소장은 전화를 끊고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요 며칠간 피곤이 쌓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오랜만에 아주 맑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것이다.

얼마나 잤을까. 전화벨 소리에 그는 잠을 깼다.

“여보세요. 선배님, 저 원식입니다.”

“어, 그래. 송형사, 아니 송반장.”

“선배님, 지금 어디 계세요?”

“미라 집에 있지. 고대 근처야.”

“제가 지금 그리 갈테니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시죠.”

“어디?”

“선배님 말씀 하신 거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선배님이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그럼 이리 와.”

“예, 금방 가겠습니다.”

시계는 2시를 넘어 서고 있었다.


최소장은 정말이지 황당했다.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최소장과 송원식은 고려대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선배님, 무슨 말을 좀 해보세요.”

“가만... 생각을 좀 정리하고.”

미라의 집에서 최소장을 태운 송원식은 잠실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소위 송원식의 정보원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보원이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관계로 선착장 주차장에서, 그것도 송원식의 차 안에서 그들은 만났던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수영목사로 짐작되는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서 폭력배한테 접근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사람이 김수영목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동해안 바닷가에 사는 청년 하나를 없애달라는 부탁이었다. 즉 살인을 청부한 것이다. 물론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그 폭력배는 기꺼이 이 일을 맡았다. 하지만 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미처 일을 하기도 전에 사고가 생긴 것이다. 즉 살인을 하기로 한 날은 바로 이번 주인데 지난 주 토요일에 의뢰인으로부터 죽이기로 한 사람이 사고로 이미 죽어 버렸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겠다고 약속한 돈은 다 입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폭력배야말로 실제는 아무런 일도 안하고 거액을 벌게 된 운 좋은 일을 당한 것이다.

최소장은 이 얘기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운 좋은 폭력배를 자신이 직접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송원식과 정보원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했지만 최소장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최소장과 송원식은 그 폭력배의 전화번호를 얻어냈고 최소장은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처음엔 모든 사실을 부인하던 그 폭력배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묻는 최소장에게 진실을 털어놨다. 그 정보원의 얘기는 추호도 거짓이 없었다. 살인을 청부한 사람은 거의 틀림없이 김수영목사였고, 죽이기로 한 당사자는 동해안 ‘해운’에 사는 ‘김요셉’이라고 했다. 살인과 함께 그가 해줘야 할 일은 김요셉의 컴퓨터를 훔쳐다 주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틀림없는 김수영과 김철수에 관한 얘기였다. 하지만 일은 꼬였다. 미처 살인을 저지르기 며칠 전에 사고가 났으니 말이다. 돈은 얼마나 받았냐는 질문에 처음엔 얘기를 않던 그 폭력배는 일억원이라고 금액까지를 알려 주었다.

정보원이 준 정보와 이 폭력배가 얘기하는 것이 틀림없겠느냐는 질문에 송원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최소장으로서는 이제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황당한 것이다.

“뭘 그렇게 오래 생각하세요? 다 끝난 거잖아요. 김목사가 죽이려고는 했지만 그 전에 사고가 나서 죽어 버렸다, 뭐 이런 거 아니예요.”

“아니야. 그건 아니야.”

“아니라뇨?”

“그럼 컴퓨터는? 분명히 누군가 컴퓨터에 손을 댔단 말이야. 그가 썼다는 글들이 하나도 없었단 말이야.”

“그렇네요.”

“사고는 아니야, 분명히. 누군가 죽인거야.”

“김목사가 아니면 누구죠?”

“왜 김목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김목사는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했잖아요?”

“실패했다고 못 죽이나? 그것까지가 김목사의 시나리오일 수도 있잖아.”

“설마요... 그럼 살인청부를 이중으로 했다는 말이예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랬다면 제 정보원이 알려 주었을 텐데요.”

“걔를 그렇게까지 믿나?”

“그럼요. 저한테 거짓정보를 주지는 않아요, 절대로요.”

“......”

“김목사의 알리바이는 확실한가요?”

“그래. 의심할 여지가 없어. 하지만 다른 교인들을 시켜서 죽였을 수도 있지.”

“설마요...”

“설마가 아니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럼 수사가 길어지겠는데요.”

“그래. 자리를 오래 비울 수도 없고, 이것 참...”

“제가 짬짬이 도와 드릴까요?”

“일단 내가 내일 교회에 다시 한 번 가보고.”

“그러세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선배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테니까요.”

“그래, 고마워.”

최소장은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걸 느꼈다. 김수영목사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도 같았다. 그래서 황당한 것이다.

“그나저나 그 새끼, 정말 재수 좋네... 일억을 그냥 먹었네.”

송원식이 한탄스럽게 말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