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12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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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3. 12 화요일


“절대로 교회댕기는 사람 사귀면 안된대이.”

아침에 딸 미라의 집을 나서며 최소장이 다시 한 번 얘기했다.

“알았다. 교회 안 댕기고, 술 안 묵는 사람...”

“술 묵는 거는 괜찮다.”

“술 묵는 거는 내가 싫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 카더라.”

“그건 술 묵는 사람들만 하는 얘기지. 술 안 묵는 사람들은 그런 얘기 아무도 안 하더라.”

최소장은 웃고 말았다. 미라의 얘기가 맞았다. 그런 애기는 술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지.

“내가 어제, 니 필요한 거 이것저것 좀 사 놓을라 캤는데 바빠서... 그라이 이걸로 니 필요한 거 사라.”

최소장은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딸에게 내밀었다.

“안 주도 된다. 아르바이트해서 번다 아이가.”

“그래도 받아라.”

최소장은 딸이 대견했다.


최소장은 다시 한 번 김수영목사를 만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래도 커피 한 잔은 내놓았다.

“또 무슨 일로 이렇게 아침 일찍 오셨오?”

“예, 이제 시골로 내려가려고 인사나 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수사를 한다더니 뭐 좀 나왔오?”

“예. 많이 알고 갑니다.”

“그래, 뭘 알게 되었는데요?”

“여러 가지를요. 우선 인터넷은 정말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

“목사님 말씀대로 인터넷으로는 사람을 쉽게 구하던데요. 돈만 주면 말입니다.”

“그래, 어떤 사람을 구할 수 있던가요?”

“사람 죽이는 사람요.”

“그런 말이 어딨어?”

“아주 쉽게 일억이란 돈을 번 놈을 봤거든요.”

“왜? 누가 요셉이를 죽여 달라고 일억을 줬답디까?”

“예.”

“그런데 왜 못 죽였대요?

“못 죽였다고 누가 그래요? 못 죽였다는 걸 어떻게 아세요?”

최소장의 눈이 빛을 발했다.

“당신 얼굴이 살인범을 잡은 얼굴이 아닌데, 뭘.”

“......”

최소장은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이 능구렁이.’

“전 목사님이 그 돈을 건넨 사람이라는 걸 압니다.”

“증거가 없을텐데.”

“증거야 찾을 수 있겠죠. 일억이 오갔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 일억은 아주 작은 돈인데요. 증거 찾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

“더구나, 죽이지도 못했다면서요. 그러면 무슨 죄가 되죠? 난 지금도 불우한 사람들에게 수많은 돈을 주고 있는데.”

“아무런 죄도 아니겠죠.”

“그런데 왜 돈을 받고도 못 죽였대요?“

“목사님이 잘 아시잖아요.”

“나야 알지. 하지만 물어는 봐야지.”

“......”

“이것 보시오, 최소장님. 사고가 먼저 났던 거예요.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더구나 공식적으로 나는 그런 청부도 하지 않았고요. 이건 단순한 사고예요, 아시겠어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세요.”

“아니라는 걸 목사님도 아시잖아요.”

“아직도 뭐가 있오?”

“컴퓨터요. 김철수씨가 쓴 글이 없었어요. 그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거예요.”

“또 그놈의 컴퓨터 얘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컴퓨터를 그냥 놔둘걸... 내가 증거를 없애버렸네. 하지만 난 소장님이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전 잘 봤어요. 컴퓨터에 철수씨 글은 없어요. 전 그 컴퓨터를 똑같이 복사해 뒀어요.”

김수영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최소장은 물론 이런 김수영의 표정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요셉의 컴퓨터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걔 컴퓨터는 이미 없어져 버렸는데.”

“......”

“그리고 왜 자꾸 철수 철수 하는거요? 걔 이름은 요셉이란 말이오.”

“아니요. 그 사람 이름은 철수예요, 김철수. 그 사람은 그렇게 불리길 원했어요. 요셉이란 이름을 굉장히 역겨워 했다던데요, 지금 저처럼요.”

“호... 그래요?”

김수영보다는 최소장이 더 자주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장님. 나도 하나만 질문을 합시다. 만약 당신 생각대로 누군가가 요셉을 죽였다면, 특히 내가 죽였다면 말이오... 왜 그 말썽 많은 컴퓨터를 손댔겠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단순한 사고로 그냥 넘어갈 것을 말이오”

“철수씨 글이 세상에 남는 게 싫었겠죠. 진실이 밝혀지는 게 싫었겠죠.”

“진실이라니? 그게 어떻게 진실이죠? 그건 악마의 글이예요. 절대로 진실이 아니란 말이예요. 맞아요. 당신, 아주 똑똑해요. 그런 악마의 글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거요. 나라도 그따위 글은 없애버렸겠어요. 죽어 마땅한 놈이 죽었고, 없어져야 마땅한 요상한 글이 없어진 거요.”

“그렇겠죠.”

잠깐 동안 분을 삭인 김수영이 다시 말했다.

“당신 아주 똑똑해. 사실 언젠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하지만 그 덕분에 확실히 알았을 것 아니오. 내가 안 죽였다는 것을... 아니 못 죽였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죠.”

“그래요? 왜 당신은 내가 죽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그래요. 난 그런 놈은 충분히 죽일만한 사람이예요. 하지만 그런 놈을 죽여 버리는 성스러운 일을 할 사람이 어찌 나 하나 뿐이겠오. 하나님의 진정한 종이라면 누구나가 그런 놈은 죽이려고 할거요 할렐루야! 그놈을 죽인 이에게 축복을...”


최소장은 집으로 돌아오는 기찻간에서 계속 씩씩거렸다. 김수영을 생각하면 할수록 분을 이기기 힘들었다. 한 대 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제 어떡하지? 정말로 교회에 관계된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조사한단 말인가? 모든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행적을 조사하고 다녀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수백 명, 아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 명은 조사를 해야 할텐데... 사고로 죽은 게 아닌 것은 확실한데 말이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덮어버려야 하나? 절대로 그럴 순 없다. 그래,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차피 전문적인 폭력배들한테 부탁해서 저지른 일은 아니다. 그랬다면 송원식형사의 정보원이라는 녀석이 뭔가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믿음교회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 중에 한 명, 혹은 몇 명에게 시켰을 것이다. 김수영목사의 말을 듣고 기꺼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어리석고 정신 나간 사람만 찾으면 된다. 김영희는 교회사정을 잘 알고 더구나 아주 똑똑한 여자였다. 그 여자에게서 어떤 실마리가 제공될 수도 있다. 아니더라도 송형사의 도움을 받아 차근히 풀어 나갈 수 있다.


최소장은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파출소로 갔다. 그 곳에는 모두들 모여 있었다. 박순경과 김영희는 물론이고 지혜까지 와 있었다. 파출소를 들어서는 최소장을 세 사람은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반짝이는 눈을 하고 귀담아 듣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최소장은 그간의 얘기를 했다. 김철수의 아버지인 김수영목사가 짐작했던 대로 폭력배들에게 돈을 주고 김철수의 살인을 부탁했으나, 그 일을 저지르기 전에 사고로 김철수는 죽고 말았다. 아울러 그 누구도 범죄를 쉽게 생각하는 전문폭력배들에게 돈을 주고 김철수를 죽여달라거나 혼내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더 이상 없다.

“그럼 다 끝난 거네예.”

여기까지 듣던 박순경이 환한 얼굴로 김영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뭐가?”

“사고로 죽은 거네예. 영희씨 아버님이 죽인 게 아니고예.”

“......”

최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꼭 그런 건 아니죠.”

그때 김영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김영희는 처음 여기에 왔을 때보다는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다. 비록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살도 조금 오른 것 같았다.

“그래. 김영희씨 말이 맞다.”

이번에는 최소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와예?”

“사고라 카면 컴퓨터가 그러면 안 되지. 그 사람이 쓴 글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맞아요. 더구나... 제가 그동안 컴퓨터를 자세히 살펴봤는데요, 아무래도 오빠 컴퓨터가 아닌 것 같아요.”

“예?”

“누군가가 통째로 바꿔치기를 한 것 같다는 거죠.”

“예? 그기 무슨 말인데예?”

박순경이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누군가가 오빠 컴퓨터를 완전히 해킹했어요. 그리고 그대로 컴퓨터를 한 대 더 만든 거예요. 그리고는 여유 있게 오빠가 쓴 나쁜 글들, 물론 그 사람이 보기에 나쁜 글들이지만요.. 오빠의 글들을 지워버렸어요. 사고 나던 날 급하게 지운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 그렇게 여유 있게 완벽하게 지울 수가 있었죠.”

“그건 영희씨 생각입니까 아니면 무슨 증거라도 있습니까?”

이번에는 최소장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모든 게 오빠가 죽기 4일 전으로 멈춰 있어요. 그 컴퓨터는 그러니까 3월 1일 날 만들어진 거예요. 3월 1일 이후엔 컴퓨터를 쓴 흔적이 거의 없어요. 아주 일상적인 거 말고는요. 전 그 컴퓨터가 3월 1일 날 만들어져서 오빠가 죽고 나서 오빠 컴퓨터와 바꿔치기 됐다고 생각해요.”

“흠...”

최소장은 짧은 신음을 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럼 영희씨는 아직도 아버님이 그랬다고 생각하심니꺼?”

박순경이 물었다.

“물론이죠.”

김영희는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김영희의 눈에는 증오의 빛이 돌았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김영희는 최소장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계속해야죠. 교회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하실 수 있겠어요?”

“해봐야죠.”

둘 사이에 짧은 대화들이 오갔다. 그리고는 최소장은 오늘은 좀 쉬겠다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최소장은 집에 들어와 대충 씻고는 자리에 누웠다. 그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그는 꿈을 꾸었다.

발 아래로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세 사람의 남자가 흰옷을 입고 손에는 채찍이랑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등에는 마치 천사의 그것인양 조그만 날개가 달려 있었다. 그들의 발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일을 하고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채찍과 몽둥이를 내리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매질을 당한 자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 속에 최소장 자신이 있었다. 최소장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며, 딸, 아들도 있었다. 박순경도 있고, 지혜도 있고 김영희도 있었다. 모두들 매질을 당해서 피를 흘리면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세 사람은 사람들을 향해 쉬지 않고 채찍질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볼 수 없던 채찍을 휘두르던 세 사람의 얼굴이 마침내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가까이 보이더니 이제 그 형상들이 뚜렷이 나타났다. 하나는 여호와고 하나는 예수고 또 다른 하나는 김수영목사였다. 모두들 드라큘라의 그것처럼 두 개의 이가 길게 자라 입 밖으로 나와 있었다.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갰다. 그들의 얼굴은 점점 더 최소장에게로 가까워지더니 결국은 최소장을 삼킬 듯이 다가왔다.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여호와를 믿어라.’ ‘주 예수를 믿어라.’ ‘회개하라, 참회하라.’ 여호와가 떠들고 있고, 예수가 떠들고 있고, 김수영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그들의 쩍 벌린 입 앞에서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그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국 알게 되었다. 자신은 전형적인 수법에 걸려든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막연한 죄책감과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말이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죄책감과 불안을 느끼게 만든 이후에 그 틈을 가차 없이 파고들어 영혼을 매수해 버리는 것이다.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그들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최소장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을 거부했다. 최소장은 자신이 그 세 사람과 나란히 서서 나머지 사람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일을 할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매질을 당하는 편에 서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이건 불안과 공포일 뿐이다. 죄책감은 아니다. 단지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여 그들에게 굴복하게 만들려는,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폭력일 뿐이다. 여기 어디에도 죄책감은 없다. 오히려 저쪽 편에 죄책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저쪽에도 역시 죄책감은 없다. 다만 그곳엔 광기만 있을 뿐이다. 광기와 함께 탐욕과 거짓이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죄책감만 떨궈낸다면, 저들에게 무릎 꿇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깟 불안과 공포쯤이야. 여기는 나의 아내, 나의 아이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사람들이 같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기 이대로가 행복이요, 여기 이대로가 천국이 아닌가. 그는 이제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그는 눈을 떴다. 천사의 모습으로 채찍을 휘두르던 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서 있었다. 그의 아내도, 딸과 아들도, 박순경과 지혜도 그리고 김영희도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모두들 평화스럽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천사의 날개도 없고, 드라큘라의 이빨도 없고, 손에 채찍을 들고 있지도 않았다. 단지 곁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사랑이 가득 담긴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진정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최소장도 그들에게 사랑이 담긴 미소를 보냈다. 어디서 향긋한 냄새가 그에게 다가왔다.


아내가 끓여 둔 김치찌개 냄새였구나.


2002. 3. 13 수요일


“어제는 잘 쉬셨슴니꺼?”

파출소를 들어서는 최소장에게 박순경이 밝게 인사를 했다.

“그래, 일찍 나왔네. 어제는 뭐 별 일 없었재?”

“예, 별 일 없었어예.”

최소장은 신문을 펼쳐 들었다.

“언제 또 서울 가실 겁니꺼?”

“금요일쯤 갈라 칸다. 이번에는 니도 가자.”

“파출소는예?”

“일요일에는 와야지. 그래봐야 토요일 하루 비우는 건데 뭐. 토요일, 일요일 이틀 알아보면 뭐가 좀 나올끼다. 안되면 니만 먼저 내려오고.”

“알았심니더.”

최소장은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최소장이 건성으로 물었다.

“그래, 요새 다른 일은 없재?”

“예, 뭐 별 게 있심니꺼. 참 며칠째 양씨 아저씨가 안 보인다 카데예.”

“뭐, 뭐라꼬?”

“양씨 아저씨 말입니더. 저 위 바닷가에 있는 소망교회에서 일 해주는 절름.. 약간 모자라는 아저씨 말임니더.”

“거기 양씨 아저씨가? 언제부터?”

“며칠 됐다 카던데예. 지난 일요일 날 교회 갔다 온 사람들이 그라던데예.”

“가보자.”

“어디를예?”

“교회지 어데고.”

“조금 있으면 김영희씨 오실 긴데예.”

“오지 마라고 전화해라.”

최소장은 벌써 파출소 밖으로 반은 나가 있었다.


최소장이 일하는 ‘해운’에는 교회가 서너 군데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소망교회였다. 소망교회는 김철수가 사고를 당한 자갈마당으로 가는 길목 바닷가에 자리 잡은 조그만 교회였다. 소망교회는 신도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꽤 오래된 교회였다. 이태식목사라는 나이 지긋한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양씨라는 사람은 한 4-5년 전부터 이 동네에 나타난 사람이었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고 오갈 데 없는 사람으로 소망교회에서 이런 저런 잔일이나 도우면서 밥이나 얻어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머리도 약간 모자라는데다가 말도 제대로 또렷이 하지 못하고 오른쪽 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최소장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혼자 밥벌이 하기도 쉽지 않을 사람인데 용케 이태식목사가 거두어 잡일이나 시키면서 교회에 데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대충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잡고 앉은 최소장에게 소망교회 이태식목사가 약간은 비굴한 듯한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양씨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어 갖고예.”

“아, 예.”

“언제부터 안 보였습니꺼?”

“한 며칠 됐어요.”

“정확하게 언제부터였슴니꺼?”

“보자... 지난 주 화요일인가 수요일인가 그때부터 안보였어요.”

“왜 신고 안 하셨습니까?”

최소장은 다시 표준말을 쓰고 있었다. 박순경은 사투리와 표준말을 쉽게 바꿔 쓰는 최소장이 조금은 신기했다. 하지만 그는 최소장이 언제 표준말을 쓰고 언제 사투리를 쓰는 지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글쎄 뭐... 그 사람, 올 때 말없이 온 것처럼, 갈 때도 말없이 어디론가 갔을 수도 있고... 신고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없어졌을 때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십시요.”

“수요일 아침인가... 평소에 그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교회 안팎을 청소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그 사람이 안보였어요. 그 사람이 지내던 방에 가보니 없었어요. 짐이랄 것도 없지만 짐도 없어졌었어요. 그래서 전 그 사람이 어딘가로 떠났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또 이리로 올 수도 있겠죠. 사실 그 사람을 반겨줄 곳은 별로 없을 거예요. 아시다시피... 그렇게 정상적이지는 않잖아요?”

이태식목사는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하며 대답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죠.”

“양만수라고 하던데요.”

“나이는요?”

“정확히는 몰라요. 그 사람도 본인 나이를 잘 모르던걸요. 그저 한 오십 가까이 안 됐겠나 짐작하고 있었어요.”

“친척이라도 있습니까?”

“잘은 모르지만 없는 것 같았어요. 한 번도 친척 얘기를 하는 걸 못 봤거든요.”

“그럼 어디로 갔는지 전혀 짐작 가는 곳이 없습니까?”

“없어요. 사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어요.”

“그 사람 사진이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한 번 찾아봐 드리죠.”

“될 수 있으면 얼굴이 좀 크게 나온 것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태식목사는 그의 아내에게 양씨의 사진을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왜 그러세요? 무슨 사고라도 났습니까?”

“글쎄요. 아직은 모르죠.”

한동안 대화가 끊겼다. 최소장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최소장의 표정은 여러 차례 바뀌고 있었다. 최소장의 얼굴이 심하게 찡그려 졌을 때 이태식의 아내가 사진 두어 장을 들고 왔다. 최소장이 받아들고 살피다 얼굴이 제일 크게 나온 사진 한 장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이것 제가 좀 빌려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런데 혹시 김철수라고 아세요?”

“누구요?”

“김철수라고 얼마 전에 이곳에 들어와 살던 서울서 온 청년 말입니다.”

“아, 그 사람요... 며칠 전에 사고가 났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양씨가 없어지던 날 밤이죠.”

“그래요?”

“묘하지 않습니까? 같은 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없어지고...”

“예?”

최소장의 말에 박순경마저도 깜짝 놀랐다.

“김철수를 아신다고 하셨죠? 그럼 그 사람이 교회와 기독교를 욕하고 다닌 것도 알고 계십니까?”

“그래요? 난 그건 몰랐어요. 그 사람이 그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왜 교회를 욕하고 다녔대요?”

“글쎄요. 욕 들을만 하니까 욕했겠죠.“

어느새 최소장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욕 들을만 하다니?”

최소장은 이태식의 말에 대답도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전 양씨가 김철수를 죽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목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박순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거요?”

“그 사람 정도면 충분히 사람을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거예요. 힘이 굉장히 셌잖아요.”

“당신 왜 이래요?”

“왜 이러는지는 목사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김철수가 쓴 글을 보셨죠?”

“도대체 왜 이래요? 글은 무슨 글요?”

“양씨 어디 있습니까?”

“당신, 왜 이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 양씨 어딨냐니까.”

“이 사람이 미쳤나. 당신, 당장 나가!”


“저 사람이 죽였심니꺼?“

파출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박순경이 아직도 씩씩대고 있는 최소장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니는 보고도 모르나?”

최소장은 박순경에게 신경질을 냈다. 박순경은 얼굴을 붉히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최소장은 그러고도 한참을 더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진정이 되는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만호야.”

“아입니더.”

조금을 더 있다 최순경이 한 번 더 박순경에게 사과를 했다.

“만호야, 진짜로 미안하다.”

“괜찮심니더.”

박순경은 희미하게 웃었다. 최소장을 잘 알고 있는 박순경으로서는 최소장을 미워하거나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박순경은 그만큼 최소장을 좋아하고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이 죽인기다.”

“진짭니꺼?”

“그래...”

“우째 된 긴데예?”

“저 영감이 양씨를 시켜 죽인기다.”

“어떻게 아시는데예?”

”그 날 양씨가 없어진 게 어디 우연이겠나? 4, 5년이나 여기서 살던 그 사람이 갑자기 가기는 어디로 가겠노? 더구나 그 정신 갖고 말이다.“

“그라믄 양씨는 어디 있는데예?”

“모르지. 찾아봐야지.”

차는 어느덧 파출소에 도착하고 있었다.


“만호야, 이거 스케닝 좀 해라.”

파출소에 들어서자마자 최소장은 양만수의 사진을 건네며 박순경에게 말했다.

“예.”

그리고 최소장은 곧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송형사?”

“아, 예. 선배님. 접니다.”

“그래, 미안한데, 길게 얘기하기는 어렵고 사람 하나만 찾아줘.”

“예, 선배님.”

“이름은 양만수. 나이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발음이 불완전하고, 지능이 모자라고 오른 발을 절어... 박순경, 양씨 오른발 저는 거 맞제?”

박순경은 잠시 생각해 보고 대답했다.

“예.”

“그래, 오른발을 절고. 지난 주 화요일부터 목요일, 아니 어제까지 사이에 연고 없이 죽은 사람 중에 이런 사람 있나 좀 찾아봐 줘. 있다면 부랑아처럼 보이는 사람 중에 있을거야.”

“예, 선배님.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알아봐야 해. 아주 급해. 그리고 혹시 그런 사람 죽은 게 없으면 당장 전국에 지명수배 해.”

“예, 선배님.”

“자네 이메일 좀 불러줘. 양만수 사진이 있는데 지금 보내줄게.”

전화를 끊은 최소장은 송원식의 이메일이 적힌 종이쪽지를 박순경에게 건네주었다.

“이리로 양씨 스캔한 사진 좀 보내줘.”

“예. 소장님.”

“살아 있으면 좋을 낀데...”

최소장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양씨 아저씨도 죽은 김니꺼?”

“그래, 그런 것 같다.”

그때 파출소 전화벨이 울었다. 박순경이 최소장 눈치를 살피고 최소장이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김영희였다.

“여보세요.”

“아, 소장님. 저, 김영희예요. 바쁘신 것 같던데, 전화하셔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예, 지금은 괜찮습니다.”

“혹시 저희 오빠 일로...”

“예. 하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고, 확실한 게 아니라서요. 조금만 기다려봐 주십시오.”

“알겠어요. 제가 뭐 도울 일이라도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전화 주세요.”

“예.”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최소장은 박순경에게 양씨에 대한 얘기는 김영희나 지혜에게 하지 못하도록 일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지혜가 파출소로 왔다. 최소장은 말없이 앉아서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고 지혜는 박순경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었다. 최소장과 박순경이 밥을 먹으러 막 나서려는데 송원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소장은 길게 통화하지도 않았다.

“그래?”

“뭐?”

“그래? 확실하지?”

“그래, 내가 지금 갈게. 저녁 시간 좀 비워놔 줘. 차에서 전화할게.”

최소장은 박순경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도 않았다.

“서울 갔다 오께.”

그리고 이미 최소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서둘러 왔는데도 벌써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서울역에서 최소장은 송원식을 만났다.

“그 사람, 누굽니까?”

“김철수를 죽인 사람.”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었어요.”

“이렇게 되면 다 끝난 거 아니예요.”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예. 가시죠, 선배님.”

그들은 서울역 근처에 있는 파출소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한 젊은 경찰이 최소장에게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3월 6일 05시 30분 경, 서울역 지하도에서 폭행사건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05시 35분 경, 저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한 사람이 죽어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서울역 지하도에는 집 없는 부랑자들이 많이 모여 잠을 잡니다. 술 취한 많은 부랑자들이 한 사람을 폭행하여 숨지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출동했을 땐, 사건은 끝나 있었고, 그를 폭행한 사람들은 다 흩어져버려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의 몸을 수색한 결과 그 사람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며칠 기다렸으나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 시신은 화장을 한 상태고, 지니고 있던 물건도 보관할만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없었거나 폭행을 한 자들이 강탈해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그는 한 장의 사진을 내놓았다. 폭행당해 죽었다는 사내의 사진이었다. 틀림없었다. 최소장은 한 눈에 알아봤다. 양만수였다. 최소장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 가보실래요?”

“그래, 가보자.”

최소장과 송원식은 서울역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최소장이 약간 취한 듯 비틀거렸다. 그들은 서울역 지하도로 내려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서성이고 있었다. 이미 자리 잡고 자고 있는 사람도 몇 있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잠자리를 찾고 있었고, 그 중에 몇몇은 아무런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째 들이키고 있었다. 송원식은 재빨리 주위를 살피다가 그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는 혼자서 반쯤 남은 소주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송원식은 가지고 있던 양만수의 사진을 내밀었다.

“지난주에 여기서 맞아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

송원식이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몇 번이나 고함을 지르고 협박을 하고 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는 자기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고, 단지 구경만 했다는 전제하에 얘기를 했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3월 6일 수요일 새벽 5시경에 많은 부랑자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역 지하도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날짜와 시간을 기억해 내지는 못했는데, 이건 최소장이나 송원식으로서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었다. 지하도에 나타난 사내는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매일 매일 새로운 부랑자가 나타나고, 몇몇 부랑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한다. 그 사내는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는데 손에는 아주 조그만 짐 보따리를 하나 들고 있었다.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불안해하면서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했다. 그런데 다른 아주 이상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손에 비닐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만원짜리 지폐가 수북히 들어 있었다. 족히 백만원은 되어 보이는 돈이었다. 아주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많은 부랑자들이 자고 있는 이런 곳에서 그렇게 허술하게 돈을 들고 있다니 말이다. 몇몇 부랑자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술 취한 부랑자들이 그에게서 돈을 뺏으려고 했다. 그는 안 빼앗기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이미 역부족이었다. 누구인지 구별도 못할 많은 부랑자들에 의해 그는 폭행을 당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는 절대 돈이 든 비닐봉투를 놓지 않았고, 결국 그는 여러 부랑자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리고 부랑자들은 그에게서 돈이며 보따리를 강탈해 갔다. 누가 얼마를, 또는 누가 무엇을 가져갔는지도 몰랐다. 그냥 없어져 버린 것이다. 돈과 보따리와 함께 그의 목숨도 말이다. 그 사내가 나타나고 죽을 때까지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뒤에서 누가 시켰던지 잡아넣기는 다 틀렸군요.”

지하도를 힘없이 걸어 나오며 송원식이 말을 걸었다.

“그래.”

“김수영이 시켰나요?”

“아니야. 우리 동네 다른 교회 목사가 시킨 거야,”

“아니, 목사들은 왜 다 그래요?”

“그러게 말이다.”

“밤도 늦었는데 오늘은 저희 집에 가서 주무세요.”

“아니야. 아직 기차 있을텐데 내려가야지.”

“피곤하셔서 또 어떻게 가세요. 그냥 저희 집에 하루 주무세요. 같이 소주도 한 잔 하고요.”

“다음에. 오늘은 그냥 갈래.”

“하여튼 선배님 고집은 알아줘야 된다니까. 알았어요, 그럼.”

“정말 고마웠어. 같이 있어줘서 말이야.”

“뭘요. 그나저나 결과가 좋지 않아서 좀 그러네요.”

“할 수 없지 뭐.”

“그래요. 그럼 조심해서 잘 내려가세요, 선배님.”

“그래. 짬나면 해운에 한 번 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기는 아주 좋아.”

“그럴게요.”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기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