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13 마지막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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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3. 14 목요일


식당으로 들어서며 최소장은 포근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순경, 김영희 그리고 지혜였다. 최소장은 기차를 타고 내려오며 미리 이 사람들과 약속을 해 뒀었다. 김영희가 오징어회를 잘 먹던 그 식당이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바깥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저씨. 뭐 좀 알아 오셨어요?”

지혜가 채근했다.

“그래.”

최소장은 소주잔을 입에 가져가며 씁쓸하게 말했다. 지혜는 물론이고 박순경과 김영희도 눈을 반짝이며 최소장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거예요?”

지혜가 한 번 더 재촉했다.

“다 끝났다. 범인은 요 위 소망교회 목사다.”

“예?”

지혜와 김영희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박순경은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최소장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어떤 경로로든지 이태식목사가 김철수가 교회나 기독교를 심하게 비난하고 있고, 또 그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김철수를 죽이기로 하고 완전범죄를 꾸민다. 양만수를 이용해서 김철수를 죽이기로 결심한 이태식은 양만수로 하여금 김철수를 죽이게 한다. 양만수는 워낙 힘이 좋은 사람이라 단 한번 돌로 머리를 내리쳐 김철수를 즉사시킨다. 3월 5일 밤의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양만수에게 이태식은 옷가지를 챙기게 하고 비닐봉투에 돈을 넣어 주었다. 아마 백만원쯤 되었으리라. 그는 양만수에게 서울역으로 가라고 말했다. 자기도 그 곳에 가겠다고 했겠지. 머리가 모자라는 양만수는 이태식이 시키는 대로 서울역으로 가서 지하도로 내려간다. 그리고 돈이 든 비닐봉투를 꺼내 든다. 이것도 이태식이 미리 시킨 일이다. 순식간에 일은 벌어진다. 부랑자들에게 돈과 옷 보따리를 뺏기고 양만수는 숨을 거둔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말이다. 양만수의 죽음과 함께 이태식의 범죄는 영원히 묻혀 버린다. 그것을 증언해 줄 누구도 없다. 어쩌면 양만수를 폭행한 부랑아들 중에 한 두 사람은 이태식이 미리 준비시켜 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서울역 지하도 세계를 알기만 하면 허술한 비닐 봉투에 돈을 담아 들고 있는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그 곳에 나타난다면 맞아 죽을 것은 너무나 뻔하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양만수는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믿고 따르는 이태식목사의 명령에 의해 절대로 그 돈을 뺏기지 않으려 사력을 다해 버텼을테고. 그렇게 양만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했다.

김수영목사도 김철수를 죽이려고 했으나 한 발 늦었다. 그 전에 이런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그럼, 그 목사를 구속할 방법은 없나요?”

지혜가 안타깝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아무 것도 못한다. 아가씨, 미안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

“아니예요. 이걸로 충분해요.”

김영희는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최소장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지혜와 박순경은 이태식을 미워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오빠, 오빠하고 나하고 둘이 가서 그놈의 영감탱이 혼이라도 내주자.”

지혜가 박순경에게 말했다. 박순경은 최소장 눈치를 보며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를 핮비 않고 있었다.

“인제 죽어도 교회 안 간다.”

지혜가 다시 분을 삭이며 말했다.

“니, 지난주부터 교회 안 갔잖아.”

박순경이 말했다.

“앞으로도 절대로 안 가겠다고.”

여전히 김영희는 말이 없었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지나고 박순경이 마무리를 짓는다는 느낌으로 최소장에게 물었다.

“그럼 컴퓨터도 이태식이가 바꿔치기 한 거 겠네예?”

“그래.”

“그럼 언니 아빠는 아무 죄가 없네요?”

지혜가 약간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다행이다, 언니. 아빠가 안 그랬다잖아.”

“그래요, 다행이예요.”

김영희는 아직까지 지혜에게 높임말을 쓰고 있었다. 김영희는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최소장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최소장과 지혜는 별 말이 없었고, 박순경과 지혜는 뭔가를 계속 떠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영희가 다시 최소장에게 말했다.

“별 말씀을요.”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거예요.”

“......”

“만호씨도 지혜씨도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모두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님이 범인이 아니라서 그나마 참 다행임니더.”

박순경도 한 마디 했다.

“예. 고마워요, 만호씨.”

“이제 어쩌실 거예요?”

”글쎄요. 좀 생각을 해봐야죠.“

“원하시면 여기서 사시지 그래요? 조금 갑갑하시겠지만.”

최소장이 권했다.

“그래, 언니. 여기 살아라. 나랑 같이 살자.”

지혜가 김영희의 팔장을 끼며 말했다. 김영희는 웃음을 지었다.

“아니예요. 사실은... 미국 갈 생각이예요.”

김영희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모두에게 말했다.

“언제예?”

박순경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김영희같은 미인이 떠난다는 게 섭섭한 모양이었다.

“내일요. 이제 다 끝났으니 가야죠.”

“안 돼, 언니. 며칠이라도 더 있다 가.”

김영희는 그저 웃기만 했다.

“소장님. 정말 고마워요. 정말이예요. 소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

“가셔서 어떻게 지내실 건가요?”

“...... 노래하겠죠.”

“언니, 노래는 진짜 잘해요.”

지혜가 말했다.

“사람들 노래를 할 거예요.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노래요. 여호와나 교회를 위한 노래말고요.”

한참 있다 최소장이 중얼거렸다.

“...... 미안해요, 아가씨.”

“아니에요, 소장님. 제가 감사해요.”

조금을 더 앉아서 술 몇 잔을 더 마시다 최소장은 먼저 일어서 나왔다. 세 사람은 좀 더 마시겠다고 했다. 차를 타고 가라는 젊은 사람들 말을 안 듣고 그는 밤비 속을 걸었다. 이 비가 시원하게 뼈 속까지 씻어줬으면 좋겠다. 세상을 좀 씻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끝나 버리다니.. 이렇게....


2002. 3, 15 금요일


봄비가 시원하게 파출소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김영희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아침 10시쯤 되었을 때였다. 먼저 박순경이 그 전화를 받았다. 김영희가 그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듯 했다. 둘은 한참을 얘기하다 결국 박순경은 최소장에게 전화를 바꿔 주었다.

“소장님... 저, 지금 떠나요.”

“아니, 이 빗속을...”

“아니예요. 시원하고 훨씬 더 좋은데요.”

“......”

“소장님. 평생 잊지 않을게요. 정말이예요. 고맙습니다.”

“뭘요. 이제 어떻게 사실 생각이세요? 아무래도 집으로 들어가시는 게...”

“소장님은 다 아시면서 그러세요... 들어갈 수 없잖아요.”

“......”

“어쩌면 이제 다시 못 뵐지도 모르겠네요.”

“예.”

“건강하세요, 소장님.”

“아가씨야말로 몸조심하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시고요. 오빠 일은 이제 잊어버리셔야 해요.”

“예, 소장님. 알고 있어요. 참, 만호씨하고 지혜씨한테 따로 얘기하기는 했는데... 그 오빠가 쓴 글 말인데요. 절대로 못 갖고 있게 좀 해주세요. 아빠나 거기 목사 같은 사람은 언제나 어디든 있을 수 있잖아요..”

“예, 그럴게요. 아가씨도 그거 버리세요.”

“저야 어디 버릴 수 있나요? 저, 이제 진짜 가야겠네요. 정말 고마웠어요, 소장님.”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전 소장님 마음을 다 알아요. 그래서 고맙다는 거고요.”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장님. 안녕히 계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김영희는 울고 있었다. 최소장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봄비는 궂게도 오고 있었다.


2002. 10. 8 화요일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게 이제 겨울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간 듯 하더니 이내 겨울로 가려나보다. 최소장과 박순경은 이제 막 출근을 했다. 박순경은 이것저것 정리를 했고, 최소장은 자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깊숙이 앉아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이 똑같은 풍경이 창밖으로 보였다. 그때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었다. 최소장은 전화 벨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선배님, 저 송원식입니다.”

봄에 서울에서 몇 번 본 송반장이 갑작스럽게 전화를 해왔다.

“아이구, 그래. 오랜만이네.”

“예, 선배님.”

“그래, 잘 지내나?”

“예... 그런데...”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저... 전에 거기서 사고 났던 김철수씨 동생,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왜?”

최순경은 몸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떨려 왔다. ‘사고다’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김마리아씨.. 라고 하셨죠?”

“그래, 맞아.”

최소장은 알았다. 이게 무슨 전화인지 알았다.

“저.. 죽었어요.”

“......”

최소장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사고가 났대요. 교통사고요.”

“......”

“시카고 한인신문에 기사가 났는데... 메일로 선배님께 보냈거든요.”

“그래, 고마워.”

최소장은 간신히 대답하고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전신에 기운이 다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만호야, 내 메일 좀 열어봐라.”

“예‘

박순경은 컴퓨터를 켜고 최소장은 모니터로 다가갔다. 메일이 두 개가 와 있었다. 하나는 송원식에게서 그리고 또 하나는 김영희에게서 온 것이었다.

“소장님. 메일이 2개 와 있는데예.”

“송형사한테서 온 것부터 열어봐라.”

“예.”


한인신문의 기사가 있었다.


김영희씨 사고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성악가수 김영희(옛이름 김마리아)씨가 지난 2일 밤 11시 경 55번 국도 위에서 차량이 전복하는 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숨졌다. 종교 색을 띄지 않은 노래들만 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씨는 기독교를 비방하는 오빠의 글을 영어로 번역하여 한인사회 및 미국인들에게까지도 퍼뜨리는 일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오빠 김철수(옛이름 김요셉)씨도 지난 3월 기독교를 비방하는 글을 쓴 직후 한국에서 사고로 사망했었다. 김씨의 유골은 대한항공 편으로 한국으로 옮겨 질 예정이다.


박순경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그는 다음 메일을 열었다.


저는 시카고대학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입니다. 한인학생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아주 깊은 슬픔에 빠져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막 가장 좋은 친구 하나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유감스럽지만, 그녀의 부탁에 따라, 그녀의 유골을 당신들께 보냅니다. 아마 유골은 10월 9일 오전 10시 30분에 KE 102 비행기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것입니다. 저도 슬프지만 상심하실 여러분들께도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김영희가 쓴 글이 붙어져 있었다.


여러분이 제 이 메일을 읽으시면 아마 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슬퍼하시지는 마세요. 제가 선택해서 간 길이거든요.

아마 제 친구중 하나가 제 몸뚱아리를 수습해서 한국으로 보낼 거예요. 염치없게도 여러분들께 마지막 부탁을 드려야겠네요. 해운 앞바다에 좀 뿌려 주세요. 그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지냈던 그 며칠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영원히 여러분들 곁에 있고 싶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따로 첨부파일이 하나 더 있었다. ‘소장님만 보세요’ 그렇게 제목 지어진 파일이었다. 최소장은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다. 그는 천천히 첨부 파일을 열었다. 박순경은 지혜에게 갔다 오겠다고 파출소를 나가버렸다.


소장님.

죄송해요. 소장님 부탁을 들어 드리지 못했네요. 결국 일을 저질렀어요. 소장님 눈에서 읽었어요. 이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걸요. 하지만 소장님은 이럴 수밖에 없는 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겠죠. 짐작하시는 대로 미국 와서 오빠 일을 좀 더 했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전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했어요. 제게 사고가 생기고 나면 이 글을 소장님과 두 분께 보내달라고 말이예요.

아저씨.

저도 지혜씨처럼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아저씨, 정말로 죄송하고 정말로 고마워요. 전 다 알고 있었어요. 아저씨가 제게 뭘 말했고 뭘 숨기셨는지를요. 아저씨, 아저씨가 모르는 비밀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아저씨는 거짓말을 못해요. 어디 가셔서 절대 거짓말하시지 마세요. 금새 들통 날 거예요. 아저씨는 거짓말을 못하는 눈을 가지셨어요. 전 그날 아저씨 눈에서 모든 걸 읽었어요. 아저씨가 마지막 날 서울에서 왜 하루를 더 있다 오셨는지도 전 알아요. 아빠한테 갔었죠? 나쁜 꼴이나 안 당하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아저씨.

저도 인터넷으로 확인했어요. 아빠와 소망교회 이태식목사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을요. 아빠한테서 후원금을 받는 이태식목사로서는 아빠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겠죠. 물론 그 이태식목사도 아빠랑 똑같은 사람이었겠죠. 틀림없이 오빠는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쪽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잖아요. 자기편이 아니면 미워하고, 헐뜯고, 저주하고...

부탁이 있어요. 이번 제 죽음은 모르는 척 해 주세요. 아저씨가 다시 수사하면 이번에는 아빠가 질 수도 있잖아요.

죽음이 아주 가까이 왔다는 건 알겠는데 전혀 두렵지가 않아요. 단지 그리울 뿐이예요. 아저씨가 그립고, 만호씨도 그립고, 지혜씨도 그립고, 해운 앞바다도 그립고, 오징어회도 그립고, 같이 나누던 소주잔도 그리워요. 지금도 이렇게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데, 저 세상 가서는 그 그리움을 어떻게 이겨내죠?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제는 인사를 해야겠어요. 정말로 마지막 인사를 말이예요. 안녕히 계세요. 늘 건강하세요.

영희가.


최소장은 창밖을 내다봤다.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번 비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다. 김영희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었구나. 처음부터 말이다. 최소장은 몇 달 전 일을 떠올렸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송원식과 헤어지고 난 뒤에 최소장은 딸 미라에게 전화를 걸어 믿음교회에서 후원금을 주고 있는 교회 중에 해운에 있는 소망교회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미라는 조금 있다가 그렇다는 전화를 했다. 최소장은 모든 게 명확하게 잡혔다. 배후에는 역시 김수영목사가 있었던 것이다. 김영희가 의심했던 대로 김철수는 아버지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단지 증거를 대고 법의 처분을 받게 할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이태식과 마찬가지로 김수영은 완전범죄에 성공한 것이다. 여호와가 도왔나? 이렇게 완전범죄로 끝나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그냥 해운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김수영을 만나봐야 한다. 그리고 욕이라도 실컷 해주고 와야 한다. 그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주어야 한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 길로 김수영을 찾아갔다. 잠자리에서 나온듯한 모습의 김수영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또 웬 일이오?”

“사건이 다 끝나서 보고 드리려고요.”

“호ㅡ 그래요? 범인은 잡았오? 그래, 누구요?”

“내 앞에 있는 사람요.”

“증거가 있오?”

“하늘, 땅. 당신 아들, 당신 딸. 그리고 나와 당신.”

“아무 것도 없다는 소리군.”

“그래. 하지만 당신이 인간이 아니란 소리지. 양심도 없으니.”

“내겐 하나님만 있으면 돼.”

“난 하나님은 필요 없고 인간이 필요한데.”

“그러지 말고 당신도 교회 다니시오. 그래야 구원받아요.”

“그런 구원, 받고 싶지도 않아요.”

“좋도록 하시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할거요.”

“보여 드릴게 있어요.”

“뭐죠?”

“이거. 당신이 그렇게 없애고 싶어 했던 김철수씨의, 인간의 글”

“뭐요?”

“왜요? 영원히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오? 천만에요. 당신은 김철수는 죽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글은 못 없앴어요. 그의 정신은 남아 있단 말이에요.”

“......”

“왜 아무 말이 없으시죠, 목사님.”

“......”

“그렇다고 이태식이를 혼낼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 잘못이 아니니까. 단지 정의로운 글은 없어지지 않는 것뿐이오.”

”누가 또 갖고 있오?“

“왜요? 당신의 살인리스트에 올리게?”

“......”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어요. 김철수가 죽으면 제2의 김철수, 제3의 김철수가 계속해서 나올 거요. 인간이 승리할 때까지 말이요.”

“......”

“날 죽일 생각을 하고 계시오? 그러려면 지금 죽이시죠. 내일이면 이 글을 인터넷에 올려 버릴 거니까.”

“이 죄 많은 사람을 용서하소서.”

“당신이나 용서 받으시오, 난 용서 받을 게 없오. 특히 당신네들한테서는 말이오.”

“당신도 악마야.”

김수영의 악다구니를 뒤로 하고 최소장은 그 집을 빠져 나왔다.


박순경과 지혜가 들어왔다. 지혜는 울고 있었고 박순경도 눈이 빨갰다. 최소장은 얼른 메일을 닫았다. 박순경은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언니.”

지혜는 울음을 그치질 못했다.

“만호야. 김수영목사한테 전화해 봐라.“

“영희씨 아버지 말임니꺼? 와예?”

“영희씨 죽은 거 알고나 있는지, 공항에나 나올건지. 알리는 주야 안 되겠나.”

“예.”

박순경은 아주 짧게 통화했다.

“벌써 알고 있는데예, 공항에는 안 나오겠담니더. 관심없다는데예.”

“그래, 알았다.”


최소장과 지혜는 밤기차를 타고 있었다. 내일 아침 10시 반에 공항에서 김영희의 유골을 받으려면 밤에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지혜는 혼자 가겠다는 최소장을 기어이 따라 나섰다. 박순경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최소장이 만류했다.


2002. 10. 9 수요일


밤기차에는 승객이 별로 없었다. 최소장과 지혜는 의자를 마주 보게 해 놓고 각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둘 다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영희가 떠나던 날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지혜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자주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최소장은 그런 그녀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좀, 자둬. 서울에 도착해서는 자기도 힘들거야.”

“......”

지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최소장도 한 숨도 자지를 못했다. 그저 눈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6시 반이 조금 못되어 그들은 서울역에 내렸다. 역 앞에 있는 해장국 집엘 들어갔다. 지혜는 수저를 들지도 않았다. 최소장이 야단을 쳐서야 그녀는 두어 술 밥을 떴을 뿐이다. 다방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그들은 바로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최소장은 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김영희의 부모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지혜도 그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 걸음을 걷고,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도 그들은 몰랐다. 그저 백지처럼 텅 비어버린 상태로 김영희의 유골을 품에 안았다. 지혜는 통곡을 했다. 최소장은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창을 때리는 빗줄기만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새 지혜는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김영희의 유골은 마치 누구에게도 안 뺏기겠다는 듯이 두 손으로 감싸고 품에 꼭 안고 있었다.


2002. 10. 11 금요일


전 날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마치 뭔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세 사람은 이제 막 김영희의 유골을 해운의 앞바다에 뿌리고, 해안에 나 있는 바위들에 앉아 있었다. 김영희의 유골을 가져온 날은 너무 늦었다고 하더라도 다음날은 그녀의 유골을 뿌렸어야 되는데, 지혜가 하루만, 딱 하루만 더 언니랑 자겠다고 우겨서 최소장과 박순경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에야 김영희를 바다에 뿌릴 수가 있었다.

지혜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바닷가 돌에 주저앉은 최소장이 말했다.

“만호야, 담배 하나만 도.”

“예? 소장님, 담배 끊으셨잖아예?.”

“향 피우는 셈치고 한 대만 피울란다.”

만호가 담배를 찾았으나 가지고 있지를 않아서 대신에 지혜가 그녀의 담배를 내주었다.

“니거도 피아라.”

최소장은 2년 가까이 끊었던 담배를 길게 들이마셨다. 세 사람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잔뜩 화를 내고 있던 하늘로 퍼져 갔다. 담배 연기가 사라져 가는 하늘의 구름 사이로 곱게 웃고 있는 김영희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옆에는 두 팔을 벌리고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자비를 떠들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김수영이 있었다. 그는 쉼 없이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아버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하지만 조금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들 세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 뒤로 김철수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끝내면서...


나는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글의 재미를 위해서 소설로 꾸몄을 뿐이다. 이 허구의 소설에서 두 사람의 목사가 악역을 맡았는데, 그게 마음에 심히 안 드는 독자분들은 목사대신에 대가리 깍고 목탁 두드리는 땡초 중으로 바꿔 넣고 읽으셔도 무방하리라.

끝으로 어렸을 때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고 다시 듣게 된 회심곡을 옮겨본다.


세상천지 만물중에 사람밖에 또있는가

여보시오 시주님네 이내말씀 들어보소

이세상에 나온사람 뉘덕으로 나왔는가

석가여래 공덕으로 아버님전 뼈를빌고

어머님전 살을빌며 칠성님전 명을빌고

제석님전 복을빌어 이내일신 탄생하니

한두살에 철을몰라 보모은덕 알을손가

이삼십일 당하여도 부모은공 못다갚아

어이없고 애닲고나 무정세월 여류하야

원수백발 돌아오니 없든망령 절로난다

망령이라 흉을보고 구석구석 웃는모양

애닲고도 설은지고 절통하고 통분하다

할수없다 할수없다 흥안백발 늙어가면

인간에 이공도를 누가능히 막을손가

춘초는년 년록이나 왕손은 귀불귀라

우리인생 늙어지면 다시젊지 못하리라

인간백년 다살아도 병든날과 잠든날과

걱정근심 다제하면 단사십도 못살인생

어제오늘 성튼몸이 저녁나절 병이들어

섬섬약질 가는몸에 태산같은 병이드니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는 것이 냉수로다

인삼녹용 약을쓰나 약효험이 있을손가

판수불러 경읽은들 경의덕을 입을손가

무녀불러 굿을하나 굿덕인들 있을손가

재미쌀을 쓸고쓸어 명산대천 찾아가서

상탕에 메를짓고 중탕에 목욕하고

하탕에 수족씻고 초대한쌍 버려놓고

향로향합 불갖추고 소지한장 든연후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부처님전 비나이다

칠성님전 발원하고 신장님전 공양한들

어느성현 아름있어 감응이나 할까보냐

제일전에 진광대왕 제이전에 초강대왕

제삼전에 송제대왕 제사전에 오관대왕

제오전에 염라대왕 제육전에 변성대왕

제칠전에 태산대왕 제팔전에 평등대왕

제구전에 도시대왕 제십전에 전륜대왕

열시왕의 부린사자 일직사자 월직사자

열시왕의 명을받아 한손에 철봉들고

또한손에 창검들며 쇠사슬을 빗겨차고

활등같이 굽은길로 살대같이 달려와서

닫은문을 박차면서 뇌성같이 소리하고

성명삼자 불러내여 어서가자 바삐가자

뉘분부라 거역하며 뉘영이라 지체할까

실날같은 이내목에 팔둑같은 쇠사슬로

결박하야 끌어내니 혼비백산 나죽겠네

여보시오 사자님네 노자도 갖고가게

만단계유 애걸한들 어느사자 들을손가

애고답답 설은지고 이를어이 하잔말가

불쌍하다 이내일신 인간하직 망극하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명년삼월 봄이오면 너는다시 피련만은

우리인생 한번가면 다시오기 어려워라

북망산 돌아갈제 어찌갈고 심산험로

한정없는 길이로다 언제다시 돌아오랴

이세상을 하직하니 불쌍하고 가련하다

처자의 손을잡고 만단설화 다못하여

정신차려 살펴보니 약탕관 버려놓고

지성구호 극진한들 죽을목숨 살릴손가

옛늙은이 말들으니 저승길이 멀다드니

오늘내게 당하여선 대문밖이 저승이라

친구벗이 많다한들 어느누가 동행할까

구사당에 하직하고 신사당에 예배하고

대문밖을 썩나서니 적삼내여 손에들고

혼백불러 초혼하니 없든곡성 낭자하다

일직사자 손을끌고 월직사자 등을밀어

풍우같이 재촉하여 천방지방 몰아갈제

높은데는 낮아지고 낮은데는 높아진다

악의악식 모은재산 먹고가며 쓰고가랴

사자님아 사자님아 내말잠간 들어주오

시장한데 점심하고 신발이나 고쳐신고

쉬여가자 애걸한들 들은체도 아니하고

쇠뭉치로 등을치며 어서가자 바삐가자

이렁저렁 여러날에 저승원문 다달으니

우두나찰 마두나찰 소리치며 달려들어

인정달라 비는구나 인정쓸돈 반푼없다

단배골고 모은재산 인정한푼 써볼손가

저생으로 옮겨볼까 환전부처 가져올까

의복벗어 인정쓰며 열두대문 들어가니

무섭기도 끝이없고 두렵기도 측량없다

대명하고 기다리니 옥사장이 분부듣고

남녀죄인 등대할제 정신차려 살펴보니

열시왕이 좌개하고 최판관이 문서잡고

남녀죄인 잡아들며 다짐받고 봉초할제

어두귀면 나찰들은 전후좌우 벌려서서

기치창검 삼열한데 형벌기구 차려놓고

대상호령 기다리니 엄숙하기 측량없다

남자죄인 잡이들여 형벌하며 묻는말이

이놈들아 들어보라 선심하랴 발원하고

인세간에 나아가서 무슨선심 하였는가

바른대로 아뢰어라 용방비간 본을받아

임금님께 극간하여 나라에 충성하며

부모님께 효도하여 가범을 세웠으며

배고픈이 밥을주어 아사구제 하였는가

헐벗은이 옷을주어 구란공덕 하였느가

좋은곳에 집을지어 행인공덕 하였는가

깊은물에 다리놓아 월천공덕 하였느가

목마른이 물을주어 급수공덕 하였는가

병든사람 약을주어 활인공덕 하였는가

높은산에 불당지어 중생공덕 하였는가

좋은밭에 원두심어 행인해갈 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들여 염불공덕 하였는가

어진사람 모해하고 불의행사 많이하며

탐재함이 극심하니 너의죄목 어찌하리

죄악이 심중하니 풍도옥에 가두리라

착한사람 불러들여 위로하고 대접하며

못쓸놈들 구경하라 이사람은 선심으로

극락세계 가올지니 이아니 좋을손가

소원대로 물을적에 네원대로 하여주마

극락으로 가려느냐 연화대로 가려느냐

선경으로 가려느냐 장생불사 하려느냐

서왕모의 사환되어 반도소임 하려느냐

네소원을 아뢰어라 옥제에게 주품하사

남중절색 되어나서 요지연에 가려느냐

백만군중 도독되어 장수몸이 되겠느냐

어서바삐 아뢰어라 옥제전에 주문하며

석가여래 아미타불 제도하게 이문하자

산신불러 의논하며 어서바삐 시행하자

저런사람 선심으로 귀히되어 가나니라

대웅전에 초대하야 다과올려 대접하며

못쓸놈들 잡아내어 착한사람 구경하라

너희놈은 죄중하니 풍도옥에 가두리라

남자죄인 처결한후 여자죄인 잡아들여

엄형국문 하는말이 너에죄목 들어봐라

시부모와 친부모께 지성효도 하였느냐

동생항열 우애하며 친척화목 하였느냐

괴악하고 간특한년 부모말씀 거역하고

동생간에 이간하고 형제불목 하게하며

세상간악 다부리며 열두시로 마음변화

못듣데 욕을하고 마주앉아 웃음낙담

군말하고 성내는년 남의말을 일삼는년

시기하기 좋아한년 풍도옥에 가두리라

죄목을 물은후에 온갖형벌 하는구나

죄지경중 가리어서 차례대로 처결할제

도산지옥 화산지옥 한빙지옥 검수지옥

발설지옥 독사지옥 아침지옥 거해지옥

각처지옥 분부하야 모든죄인 처결한후

대연을 배설하고 착한여자 불러들여

공경하며 하는말이 소원대로 다일러라

선녀되어 가려느냐 요지연에 가려느냐

남자되어 가려느냐 재상부인 되려느냐

제실황후 되려느냐 제후왕비 되려느냐

부귀공명 하려느냐 네원대로 하여주마

소회대로 다일러라 선녀불러 분부하야

극락으로 가게하니 그아니 좋을손가

선심하고 마음닦아 불의행사 하지마소

회심곡을 업신여겨 선심공덕 아니하면

우마형상 못면하고 구렁배암 못면하네

조심하여 수신하라 수신제가 능히하면

치국안민 하오리니 아무쪼록 힘을쓰오

적덕을 아니하면 신후사가 참혹하니

바라나니 우리형제 자선사업 많이하여

내생길을 잘닦아서 극락으로 나아가세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