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2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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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믄 김철수씨는 사고로 죽은 걸로 봐야 겠네예?”

병원을 나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박순경이 최소장에게 말을 걸었다.

“그럴 확률이 높겠지.”

최소장은 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어느덧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가 넘어 서고 있었다.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임니꺼?”

“그 시간에 와 거기까지 갔겠노?”

“예?”

“김철수 말이다. 그 시간에 와 자갈마당까지 갔겠노? 밤에 거기 가는 사람 없잖아.”

“진짜 그러네예. 와 갔지예?”

“파출소 말고 지씨네로 가자. 김철수가 세 들어 살던 집 말이다.”

“알았어예.”

박순경은 말없이 운전만 했다. 최소장은 또다시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곧 해가 넘어갈 것만 같았다. 어디서 뭘 하던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까지 갔다 온 젊은 사람이 깡촌이나 다름없는 이런 시골 바닷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왠지 좀 서글퍼 보였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간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낚시하러 간 거 아일까예? 밤낚시 말임니더.”

운전만 하던 박순경이 갑자기 말했다. 아마 그동안 곰곰히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 사람 낚시 자주 하던 사람이가?”

“잘 모르지만 아일겁니더. 그래도 혹시 했을 수도 있지예.”

“낚시 도구가 하나도 없었잖아. 바다로 떠내려갔다 캐도 일부는 남아 있어야 할낀데.”

“그것도 그렇네예.”

박순경은 또다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아마 김철수가 왜 그 시간에 자갈마당엘 갔느냐를 생각하는 듯 했다. 최소장은 박순경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어느덧 마을로 접어들어 중화루를 향해 가고 있었다. 중화루에 들어설 때까지 박순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 중국음식점은 서너개가 있었지만 하나같이 장사가 잘되지는 않았다. 별로 맛있지도 않았지만 시골에서 중국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낚시 온 사람들이 간혹 들르거나 배달을 시키는 게 대부분인 것이다. 중화루도 그런 중국음식점 중에 하나였다. 지씨가 주인이었는데 일하는 애도 하나 없이 부부 둘이서 하고 있는 조그만 집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랑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아이들 학비대기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이구 소장님이 저녁 시간에 왠일이심니꺼. 식사하러 오셨심니꺼. 이리 앉으이소.”

중화루에 들어서는 최소장과 박순경을 보고 사람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반갑게 자리를 권했다. 홀에 앉아 있던 아저씨도 역시 웃는 낯으로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이내 일어서서 주방 쪽을 향해 갔다. 아저씨가 주방 일을 보고 있어서 아마 음식을 하기 위한 듯했다.

“그게 아이고예, 뭐 좀 물어 볼라고 왔심니더.”

“와예, 무슨 일 있심니꺼?”

주방으로 가던 지씨가 최소장에게 물었다.

“여기 세 들어 사는 서울서 온 총각 있잖아예.”

“예. 그 총각, 와예? 안그래도 어젯밤에 나가서 아직 안 들어오길래 걱정하고 있었심니더만 와예? 무슨 일 있심니꺼?”

“예. 저.. 그 총각이 죽었어예.”

“뭐라꼬예? 죽어예? 와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노? 멀쩡하던 총각이 와 죽어예?”

“엄마야 우짜노. 와 죽었는데예?”

지씨도 아주머니도 눈을 크게 뜨고 놀라했다.

“오후에 자갈마당에서 죽은 걸 발견했어예. 아마 바위에서 미끄러진 것 같심니더.”

“미끄러지예? 젊은 사람이 바위에서 미끄러졌다고 죽어예? 그라고 철수총각은 어젯밤에 나갔는데 와 오늘 죽어예? 그때까지 어디서 뭘 했는데예?”

아주머니가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그기 아이고예, 어젯밤에 죽은거 같아예.”

“아이고, 우짜겠노.”

“저기, 어제 그 사람 몇시쯤에 나갔심니꺼?”

“그기 몇시쯤 됐노? 저녁묵고 좀 있다 나갔으니까 한 8시나 9시쯤 됐겠네, 그쟈?”

지씨아저씨는 마누라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예, 그럴껌니더. 8시나 9시쯤 됐겠네예.”

“뭐라카고 나갔심니꺼? 어디 간다 켔어예?”

최소장은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하며 질문을 해나갔다. 박순경은 그저 옆에 얌전히 서 있기만 했다.

“바람 좀 쐰다카고 나갔어예.”

“평소에도 저녁에 바람 쐰다고 자주 나갔심니꺼?”

“뭐, 자주는 아이지만 한 번 씩 나가기는 했심니더.”

“아저씨, 김철수씨 얘기 좀 자세히 해주이소.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 있었심니꺼?”

“어데예. 같이 사는 우리하고도 통 얘기가 없었어예. 도대체 젊은 사람이 우째 그리 말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지.”

“집에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심니꺼? 그동안 찾아온 사람은예?”

“사실 저쪽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심니더. 늘 방안에만 있었어예.”

“방안에서 주로 무슨 일을 했심니꺼?”

“몰라예, 뭐하는지. 조용히 책만 보는 것 같던데예.”

“책을예?”

“예. 아이면 잠을 자던가. 아무튼 조용히 방안에만 있는 사람임니더.”

“뭐 다른 특별난 점은 없었심니꺼?”

“없었어예.”

“바깥에는 언제 주로 나갔심니꺼?”

“아주 간혹 나가서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올때는 있었어예. 그라고 어제처럼 저녁답에 바람 쐰다고 나갈 때도 있고예.”

“바람 쐬러는 어데로 감니꺼?”

“잘 몰라예. 자갈마당을 갔었나 보지예.”

“바람쐬러 나가면 주로 얼마나 있다가 왔심니꺼?”

“일찍 올때도 있고 늦게 올때도 있고, 잘 몰라예.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잘 못 볼 때가 더 많아예.”

“알겠심니더. 그 사람 있던 방 좀 봐도 되겠지예?”

“그라이소. 이리 오이소.”

아주머니가 앞장서서 뒷문으로 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길이긴 하지만 도로에 연해 있는 곳으로 중화루 식당이 있고 도로 뒷편의 문을 통해 뒤로 들어가면 시골집다운 꽤 넓은 뒷마당이 나온다. 마당 구석구석에는 갖가지 채소들의 텃밭이 있었다. 양파며 고추며 깨 등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뒷마당 한 켠에 허름한 집이 하나 있고 그곳이 김철수가 살고 있었던 곳이다. 지씨네 식구는 중화루 식당에서 살고 있었다. 김철수가 사는 집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식당을 통할 수도 있지만 식당 옆으로 나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김철수가 사는 집에는 조그만 부엌과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하지만 밥을 해 먹는 일은 흔하지 않고 주로 지씨네 식당에서 밥을 먹곤 했다고 아주머니가 최소장에게 설명했다. 이제 꽤 어두워진 뒷마당과 김철수가 살던 집이 약간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김철수는 식당을 통해서도 다녔지만 주로 옆으로 나 있는 쪽문을 이용하는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러니 김철수가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오랫동안 나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김철수의 방문에는 꽤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늘 이렇게 문을 잠그고 다니나예?”

“예. 이 총각 여기 살고 나서 저도 이 방에 들어와 본 적이 몇 번 없어예. 책 말고는 아무 것도 없더만도 문은 꼭 잠그고 다니던데예.” 최소장은 언제 챙겨왔는지 주머니에서 김철수의 열쇠꾸러미를 꺼냈다. 총 세 개의 열쇠가 꽂혀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방문에 맞는 열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머지 두 개의 열쇠도 모두 이 집의 열쇠라고 아주머니가 말해 주었다. 하나는 중화루로 들어오는 열쇠고 나머지 하나는 옆으로 나있는 쪽문의 열쇠였다. 금속성의 열쇠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아주 쉽게 열렸다. 아주머니가 앞장서서 방안으로 들어가 형광등 불을 밝혔다. 비교적 깔끔히 정리된 방이었다. 한쪽 구석에 몇 가지 침구가 쌓여 있었고, 벽에는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다른 이렇다할 가구는 전혀 눈에 띄지 않고 크고 작은 몇 개의 가방들이 방구석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밖으로 뚫려 있는 창 바로 아래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있었고, 그 옆에 수북히 책들이 쌓여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꽤 많은 양의 책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조그만 스탠드 하나와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총각 혼자 몇 개월을 산 방이라서 그런지 깔끔히 정리가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간의 쾌쾌한 냄새는 났다. 중화루에서 대화를 나눌 때의 약간 졸린듯한 최소장의 눈빛은 어느새 변해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방안 여기저기를 꼼꼼히 훑었다.

“이 총각 교회 댕깄심니꺼?”

최소장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쌓여 있는 책들이 대부분 성경이나 성경에 관한 것들이라는 것이었다. 성경만도 여러 권 눈에 띄었다. 나머지는 성경을 해석한 듯한 책들이었다.

“어데예. 교회가는 거 한 번도 못 봤심니더. 안 그래도 성경책이 하도 많길래 교회도 안가면서 무슨 성경책이 이리 많냐고 캤더니, 그냥 공부 좀 한다고 카던데예. 교회는 안댕깄심니더.”

최소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 있을지도 모를 메모나 프린터아웃을 찾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단행본 형식의 책들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최소장은 다시 지씨 부부에게 물었다.

“이 총각 언제까지 여기 살기로 했심니꺼?”

“원래는 한 두세달 있겠다 카디마는 지금까지 쭉 있었어예. 우리야 꼬박꼬박 돈을 주는데 나쁠기 없잖아예.”

“예, 맞심니더. 언제 처음 왔심니꺼?”

아주머니는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작년 9월초쯤 이었어예. 매달 10일날 돈을 받심니더. 한 달에 방값만 20만원예.”

“그라모, 한 반 년 됐네예?”

“예, 벌써 그래 됐네예.”

“가방 좀 열어 보겠심니더.”

최소장은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가방들을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는 이렇다 할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다 옷가지였다. 옷가지 이외의 것은 거짓말처럼 하나도 없었다. 최소장은 가방을 닫고는 또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워낙 단출한 짐이어서 더 이상 뒤져 볼 것도 없었다.

“이 집 애들하고도 별로 안 친했심니꺼?”

“우리 딸애가 공부하다가 뭐 좀 묻는다고 몇 번 들락거린 일이 있었지만 그리 자주는 아이라예.”

“현숙이지예, 이 집 딸내미가? 좀 불러 주시겠심니꺼. 쪼매만 물어 볼라꼬예.”

“와예? 뭐 문제 있는 것 같심니꺼?”

“아이라예. 그냥 철수총각 가족들한테 알려야 되는데 제가 좀 더 알고 있어야 될 거 같아 갖고예.”

“그래, 퍼뜩 가서 불러 온나.” 지씨 아저씨가 아주머니한테 말했다. 아주머니는 걱정스런 얼굴로 방을 나섰고 한참 후에 현숙이랑 같이 들어왔다. 아들인 종은이도 따라 들어왔다. 아이들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마 이미 엄마한테서 상황 얘기를 들은 듯 했다. 최소장은 상황 설명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현숙이가 방안에 들어와 조금 진정되는 시간을 주고 난 뒤, 최소장이 물었다.

“철수 아저씨 얘기 들었재?”

“예.”

현숙이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걱정스런 표정까지 겹쳐 있었다.

“니가 걱정할 일은 아이고, 니 그 아저씨하고 별로 안 친했나?”

“예, 안친했심니더.”

“몇 번 공부 배운다고 왔었대매?”

“예. 처음에 몇 번 왔었는데예, 아저씨는 제가 이 방에 오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예. 그래서 나중에는 잘 안 왔어예.”

“그래, 알았다. 아저씨 볼 때, 머 특별한 거는 없더나?”

“예, 없었어예. 워낙 말이 없어 갖고예. 처음에 아저씨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 봤었는데, 아저씨는 자기 얘기는 한 개도 안했어예. 그런데 공부는 진짜 잘했나 보던데예. 뭐 물어보면 전부 다 가르켜줬어예. 특히 영어하고 수학은 모르는게 없었어예.”

“그래. 됐다.”

최소장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지씨네 부부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총각 이름이 뭡니꺼?”

“예? 철수총각 아입니꺼? 김철수예.”

“본인이 김철수라 캤심니꺼?”

“예. 그라이까네 우리가 김철순지 알지 안 그라믄 우째 알겠심니꺼? 와예? 김철수가 아입니꺼?”

“주민등록증에는 김요셉으로 되어 있어 갖고예. 혹시 김요셉이라고는 들어 봤심니꺼?”

“아니예, 처음 듣는 이름인데예.”

“알겠심니더. 만호야, 니 컴퓨터 잘하재?”

최소장은 갑자기 말머리를 박순경에게로 돌렸다. 그때까지 말없이 서 있던 박순경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예, 잘 하지는 못하지만 좀 할 줄은 알지예.”

“그래, 알았다. 저기, 이 컴퓨터 좀 빌려 가겠심니더. 혹시 특별한 뭐가 있나 싶어갖고예.”

“예, 그라이소.”

“그럼, 이만 가 보겠심니더. 이거 걱정스럽게 해서 죄송함니더.”

“아이라예. 그런데 우리는 우짜믄 되는데예?”

“그냥, 가마 계시면 됩니더. 서울 집에는 제가 연락하겠심니더. 서울에서 가족들이 올 때까지는 이 방은 고대로 좀 놔둬 주이소.”

“예, 그라지예. 그거는 걱정마이소.”

최소장은 박순경에게 김철수의 컴퓨터를 챙기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지씨네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밖은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인자 어데로 갑니꺼?”

차 안에 올라타자 박순경이 최소장에게 물었다.

“파출소로 가야지.”

최소장은 다시 졸린 듯한 표정으로 돌아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운전을 하는 박순경이 최소장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기, 뭐 이상한 기 있심니꺼? 컴퓨터는 와 갖고 왔는데예?”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알아볼 거는 알아봐야 할 거 아이가?”

“사고라 캤잖아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최소장은 아예 눈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 컴퓨터 갖고 가서 안에 뭐가 있는지 좀 살펴봐라. 뭐 특별히 죽을 이유라도 있는지, 알았재?”

“예, 알았심니더. 그런데 비밀번호 걸어 놓은 거는 제 실력으로는 못봅니더.”

”그래, 알았다. 니가 볼 수 있는데 까지 만이라도 한 번 봐봐라.“

“예, 알았심니더.”

“내일 아침까지는 다 봐야 된데이. 내일 유족들이 오면, 얘기도 해주고 돌려 줘야 하이까네.”

“예.”

“나는 파출소에 내려주고 니는 먼저 들어가라.”

다시 최소장은 입을 닫아 버렸다. 박순경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밤이 되니 아직 겨울이 다 물러간 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차는 파출소에 닿았다. 먼저 들어가길 미안해 하는 박순경을 집으로 보내고 최소장은 혼자 썰렁한 파출소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정말 힘든 일을 해야 한다. 김철수인지 김요셉인지 그 젊은이 집에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장은 우선 의자에 몸을 뉘였다. 그 순간 최소장의 전화가 울렸다. 최소장은 경기 든 아이처럼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집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하기사 아무런 연락 없이 아직 집엘 안 들어갔으니 연락할 만도 하지. 오늘 일어난 일을 대충 얘기를 하고 좀 더 늦어지겠다고 얘기했다. 밥은 먼저 먹으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시장기가 밀려왔다. 그때까지 아무 것도 못 먹었다는게 느껴져 왔던 것이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최소장이 뭔가 결심한 듯 낮에 박순경이 정리해 놓은 전화번호들에서 서울집이라고 되어 있는 번호를 찾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예, 믿음교회입니다.”

최소장의 전화에 중년의 여자가 대답했다. 최소장은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집이라고 전화를 했는데 교회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거기 혹시, 김요셉씨 댁 아입니꺼?”

최소장은 김요셉이라는 이름을 부르는데 약간 망설였다. 김철수라고 해야 할지 김요셉이라고 해야할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주민등록증에 있는 대로 김요셉이라고 하기로 했다.

“맞아요, 왜요?”

중년여자는 아주 차갑게 대꾸했다.

“저기, 여기는 경상남도 해운이라는 곳이고 저는 그곳 파출소장인데예.”

“파출소요? 그런데요?”

파출소라는 최소장의 말에 중년여인은 약간 놀란 듯하더니 이내 예의 그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기, 김요셉씨 어머님되심니꺼?”

“그렇다니까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예요?”

“예. 저, 그게, 김요셉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죽었거든예.”

“뭐라구요? 죽어요?”

이제야 중년여인은 놀란 듯이 물어왔다.

“예. 확실한 건 아니지만 주민등록증에 김요셉이라고 되어 있거든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요셉이가 죽다니.”

“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확실한 건 아임니더. 어쨌든 지금 병원에 모셔놨는데, 오셔서 확인을 좀 해 주셔야 겠는데예.”

최소장은 위치를 설명하고, 파출소로 오든 대동병원으로 오든 하시라고 하고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고 전화를 끊었다. 파출소 전화번호, 대동병원 전화번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휴대폰 전화도 가르쳐 주었다. 김요셉의 어머니는 처음에 김요셉이 죽었다는 말에 약간 당황한 듯 했으나, 곧바로 어느 정도의 냉정을 되찾는 듯 했다. 아마 최소장이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를 계속해서 일 것이다. 최소장은 사실 죽은 사람이 김요셉 내지는 김철수라고 거의 확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최종적인 확인을 하기 전에 확신 있게 얘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다 끝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조그만 어촌에서 이만한 사건도 흔치 않았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저녁을 먹고 바람을 쐬겠다고 나간 김철수가 미끄러운 바위틈에서 넘어져 운 나쁘게도 머리를 다치게 되어 죽어버린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박순경이 가져 간 컴퓨터나 김철수의 가족이 별다른 얘기를 않는다면 말이다. 그는 이제 시장하다는 느낌과 피곤하다는 느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늦은 저녁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김철수의 수첩에 있던 전화번호부와 낮에 박순경이 메모해 둔 김철수의 휴대폰에 있던 전화번호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제 정말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파출소 문이 열렸다. 낮에 왔던 지혜였다.

“아니, 니가 또 왠일이고?”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낮에 간혹 와서 커피를 대접하는 일은 있어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지혜가 파출소에 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요. 아저씨, 어떻게 됐나요?”

“뭐가 어떻게 돼?”

“서울 오빠 죽은 거 말이예요. 어떻게 된 일이예요? 누가 죽인 거예요?”

“아이다. 누가 죽인 게 아이고 미끄러 넘어진 모양이더라.”

“그래요?”

“그런데 니는 여기 와 또 왔노?“

“그냥 궁금해서 왔다니까요.”

“궁금하기는 뭐가 그리 궁금하노.”

최소장은 이제 정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마 가자.”

“예, 아저씨.”

최소장은 나름대로 힘든 하루였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지혜가 약간 머뭇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뭔데? 뭐 할 말 있으면 해봐라.”

최소장은 지혜가 자신에게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아마 김철수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저, 사실은 저, 그 서울오빠 몇 번 만난 적 있어요.”

“뭐, 뭐라꼬? 니 그게 무슨 말이고?”

“철수오빠 몇 번 만나 적 있다고요.”

“니, 아까는 그 사람 잘 모른다 안캤나?”

“잘 아는 건 아니고요. 또 낮에는 만호오빠와 민호오빠도 있었잖아요”

“그래 말해봐라. 무슨 일 있었나?”

“아뇨,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오빠네 집에 몇 번 간 적이 있었어요. 오빠도 간혹 우리 다방에 와서 차도 마시고 신문도 보고 했어요.”

“그래? 니하고 사귀는 거였나?”

“아뇨, 그런 거는 아니라니까요.”

“그래. 말해봐라. 그 사람 집에는 와 갔고, 가서 뭐했노?”

“제 말 다른 사람한테 하시면 안돼요.”

“그래, 알았다.”

지혜의 얘기는 대략 이러했다.

지난 가을에 김철수가 처음 이 마을에 나타났을 때부터 지혜는 김철수가 좋았다. 따지고 보면 지혜도 김철수 같은 외지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었다. 더구나 김철수는 이런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총각들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김철수는 지혜가 일하는 다방으로 간혹 커피를 마시러 들리곤 했다. 물론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커피나 한 잔 씩 마시고 한참동안 신문만 보다가 역시 아무 말 없이 돌아가곤 했다. 지혜는 김철수 옆에 앉아 이것저것 말도 시키고 친해져보려고 노력했으나 김철수는 전혀 대응이 없었다. 지혜는 김철수가 사는 집에도 몇 번 놀러 갔었다. 밤에 늦게 찾아갔기 때문에 아마 주인집 지씨네 부부는 모를 거라고 지혜가 말했다. 최소장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혜가 김철수네 집에 온 적이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까 자신이 찾아갔을 때 틀림없이 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자신이 김철수네 집을 처음 찾아가던 날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혜는 가게에서 소주 두 병과 안주거리를 좀 사서 갔다. 솔직히 김철수를 유혹하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김철수는 지혜에게 문조차 열어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혜가 몇 분이고 문 앞에 붙어 서서 잠시만 들어가겠다고 졸라대서 겨우 문을 열어 주게 되었다.

방안에 들어간 지혜는 처음엔 수북히 쌓여 있는 성경책에 눈이 갔다. 왜냐하면 자신도 교회를 다니는데, 김철수도 교회를 다니면 좀 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철수는 교회는 안 다닌다고 했다. 교회도 안 다니는데 왜 이렇게 성경책이 많으냐고 하자, 김철수는 그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지혜는 배고픈데 소주나 한 잔 하자며 사간 소주와 안주거리를 내어놓았고 둘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김철수는 곧잘 술을 받아 마셨다. 그럭저럭 술 두 병이 다 비워지고 지혜는 피곤한 척 몸을 눕혔으나 김철수는 그런 지혜를 굳이 깨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지혜는 처음엔 그런 김철수가 서운하고 미웠지만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그가 더 좋아졌다.

그 날 이후로 지혜는 몇 번 그 집엘 들렀는데 그때마다 김철수는 나름대로 따뜻하게는 맞아 주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지혜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물을 때마다 그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 짓고 말았다. 지혜는 그에게서 서울의 집이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들은 게 없었다. 이 마을엔 왜 왔느냐는 질문에도 김철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여기서 뭘 하느냐는 질문에도 김철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혜는 김철수가 간혹 자갈마당에 바람을 쐬러 간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심심하면 뭘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혹 자갈마당에 나가 본다고 했다. 그는 그 곳이 참 좋다고 했다. 김철수와 같이 자갈마당에 간 적이 있느냐는 최소장의 질문에 지혜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워낙 좁은 동네라 같이 다니는 걸 둘 다 꺼렸다는 것이다. 지혜는 아마 이번에도 김철수가 저녁에 혼자 자갈마당을 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 도중에 지혜는 약간씩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가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아까 나도 그 집에 가봤는데, 책하고 컴퓨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던데, 그 사람 집에서 주로 뭐하고 지냈더노?”

“그 오빠, 교회는 안다닌다면서 성경책은 참 열심히 읽던데요. 공부하는 사람처럼 책을 읽던지 아니면 컴퓨터 앞에 붙어 있던지 했어요.”

“성경책이 그렇게 공부할 게 많나?”

“그렇겠죠. 사실 저야 제대로 성경책을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공부할 게 많으니까 목사님도 매일 성경책을 읽고 공부하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 알았다. 다른 뭐 할 말 있나?”

“아뇨, 이제 없어요.”

“그런데 와 내한테 이 얘기했노? 안해도 되잖아?”

“몰라요. 뭔가 오빠한테 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죄짓는 느낌 있잖아요.”

또다시 지혜의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그래, 됐다. 니 잘못은 없으니까 니가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래, 이제 가자. 집에 가서 좀 쉬거라.”

지혜는 한 숨을 한 번 쉬고 나서 홀짝홀짝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니가 울게 뭐 있노?”

그래도 지혜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최소장의 말에 지혜는 더 서럽게 울었다. 급기야는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최소장은 지혜가 마음이 여린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최소장의 팔을 붙들고 울기 시작했고 최소장은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품안에 기대어진 지혜의 머리에서 진한 샴푸 냄새와 함께 화장품 냄새가 풍겨왔다. 얘가 애가 아니라 여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최소장은 잠시 얼굴을 붉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최소장이 다시 한 번 그녀를 토닥였다.

“자, 인자 고마 해라. 이미 다 끝난 일 아이가.”

“예, 아저씨.”

마침내 지혜는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내는 그녀의 볼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자, 인자 가자.”

“예, 아저씨. 혹시 다른 소식 있으면 저한테도 좀 알려 주세요.”

“다른 게 있을 게 뭐 있겠노. 내일 그 사람 가족들이 와서 일을 수습할끼다.”

“그래요? 그럼 오빠도 데려 가겠네요?”

“그래야지.”

“제가 지금 병원에 한 번 가보면 안되나요?”

지혜가 약간 망설이다가 물었다.

“뭐할라꼬? 그라지 마라. 그래봐야 오해밖에 더 받겠나. 고마 잊아뿌라.”

“아저씨, 식사는 하셨어요?”

“어, 뭐라꼬?”

“식사는 하셨냐고요.”

“아니, 아직 안묵었다.”

“저도 배고픈데, 아저씨, 소주나 한 잔 사주실래요?”

최소장은 약간 당황했다.

“아니, 나는 집에 가서 무야지. 마누라 기다리잖아. 그리고 니캉 내캉 술 무믄 사람들이 뭐라 카겠노.”

“뭐 어때요. 아저씨하고 저하고 나이 차이가 얼만데.”

“그래도 좀 이상하다 안 카겠나.”

“이 동네 사람들 아저씨 다 아는데 누가 욕해요? 그러지 말고 한 잔 해요. 그냥 집에 들어가기 힘들어서 그래요.”


잠시후 최소장과 지혜는 포구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식당들 중 한 곳으로 갔다. 지혜가 끝까지 조르는 바람에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막상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최소장으로서는 여간 쑥스럽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이소. 그냥 야하고 소주나 한 잔 할라꼬 왔어예.”

최소장을 반갑게 맞아들이다가 뒤에 따라 들어오는 지혜를 보고 약간 낯빛을 고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최소장은 먼저 너스레를 떨었다.

“이상할 게 뭐 있슴니꺼. 이리 앉으이소.”

아주머니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들을 맞았다.

“그렇게 이상하면 언니라도 부를까요?”

지혜가 최소장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으면서 놀리듯이 물었다.

“아이다. 그라지 마라.”

최소장은 더 당황하며 손사래까지 쳤다.

“그런데 서울서 온 총각이 죽었다면서예? 어째 된깁니꺼?”

둘이 자리를 잡고 앉기가 무섭게 주인 아주머니가 최소장에게 물었다. 최소장은 대충 설명을 하고 별 일 아니라고 얘기해 주었다. 아무리 소문내고 싶어 하지 않아도 이런 조그마한 시골에서 사람이 죽었다는게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호가 떠들고 다녔는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갈마당 쪽으로 대동병원 앰벌런스가 오갔으니 온 마을이 다 알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산 오징어와 매운탕이 나왔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소주만 마셔댔다. 지혜는 김철수를 생각하는 듯했고 최소장은 젊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듯했다. 최소장은 파출소를 나서기 전에 집에 전화하여 밥은 먹고 가겠다고 해뒀었다. 그의 아내는 최소장이 늦겠다고 전화할 때 왜 늦느냐든가 어디가냐든가 하고 꼬치꼬치 묻는 일이 없었다. 최소장은 아내에게 그 점이 제일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젊은 아가씨와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아내에게 좀 미안한 감이 들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최소장은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어, 만호냐? 그래. 오늘 욕봤다. .... 그래, 밥은 묵었나? .... 나도 지금 밥묵고 있다. 그래. .... 그래, 컴퓨터에는 뭐 특별한 거 있더나? .... 그래 좀 잘 찾아봐라. 전화번호나, 일기같은 거나, 뭐 글 써 놓은거나. .... 그래, 알았다. 그래, 나중에 전화해라. 그래.”

최소장이 전화를 끊자마자 지혜가 물었다.

“만호오빠가 그 오빠 컴퓨터 보고 있나보죠? 뭐 이상한 게 있대요?”

“아이다. 인자 막 보기 시작했다네.”

“그 오빠 컴퓨터에 글 써 놓은 거 많이 있을 거예요. 철수오빠, 늘상 컴퓨터에 뭔가 쓰고 있었거든요.”

지혜는 몸을 한껏 최소장에게로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자기 말을 들을까봐 무척 조심하는 눈치였다. 지혜가 몸을 너무 최소장에게로 밀착시켜 소곤거려서 최소장은 오히려 식당 아주머니의 눈치가 보였다. 지혜가 그런 최소장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저씨, 저 화장실 좀 갔다올께요.”

하고는 일어섰다. 그러다 다시 몸을 굽혀 최소장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담배도 하나 피우고요.”

지혜는 재미있다는 듯이 한 번 웃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지혜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고,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나무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탁자 위에는 세 병째의 소주가 바닥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마 술이 약간 과했으리라. 최소장과 지혜가 같이 술을 마시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혜는 그날 밤 자신의 살아온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었다.

동네에 정지혜라고 알려진 이 아가씨의 원래 이름은 최지혜라고 했다. 그녀는 강원도 원주에서 그리 어렵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었다. 하지만 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고 그녀의 하나뿐인 오빠가 중학교 2학년일 때 불의의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시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 버렸다고 한다. 고생을 모르시던 어머니는 온갖 궂은일을 하셔야만 했고, 그때까지 공부도 썩 잘하고 모범생이었던 오빠는 나쁜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급기야 고등학교를 마치지도 않고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못된 짓만 하고 다녔다. 지혜는 간신히 상업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답답한 원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했다. 그녀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조그만 회사에서 경리일을 하던 그 몇 달이 최고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많지는 않지만 얼마간의 돈을 원주로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하면서도 약간은 아늑한 생활이 그리 길지는 못했다고 한다.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났고 그녀는 직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원주 어머니께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직장을 잃었지만 여전히 돈이 필요했다. 생활을 하기 위한 돈도 있어야했고, 원주로 돈을 보내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로 일을 찾아봤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번 돈을 꼬박꼬박 원주 어머니께로 보내드렸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 돈을 모두 다 변변찮은 오빠에게 건네주었고, 그녀의 오빠는 한 푼 남김없이 써버리고 말았다. 결국 몇 년간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활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급기야는 그녀의 오빠가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술집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고 단지 그녀가 버는 돈에만 관심이 있었다. 결국 그녀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고 몇 군데 시골 술집과 다방을 거쳐 외딴 바닷가, 이 곳까지 흘러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도 어디선가 불쑥 오빠가 자신을 찾아 나타날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고 했다.

“언니한테도 안 한 얘기예요.”

지혜는 눈에 이슬을 머금고 푸념하듯 말을 했다.

“고생 마이 했구만.”

“제가 왜 아저씨한테 이런 얘기를 다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저씨 경주 최씨죠?”

“그래. 본이 경주다.”

“저도 경주 최가예요. 아저씨는 제 친아빠 같고 잘 아는 아저씨 같아요. 그래서.. 죄송해요, 이런 얘기해서.”

“아이다. 괜찮다.”

최소장도 지혜가 측은해 보였고 친 딸이나, 적어도 친구의 딸 같이는 느껴졌다.

“인자 고마 가자. 술도 마이 묵고, 시간도 너무 늦었다.”

“예...”

그 때, 최소장의 전화가 울었다.

“여보세요.”

만호였다.

“접니더, 아저씨.”

“그래.. 좀 봤나?”

“예. 그런데 별게 없심니더.”

“어떤 게 있는데?”

“대부분 종교에 관한 겁니더. 한글로 된 성경, 영어로 된 성경, 코란, 불교경전, 천도교, 심지어는 증산교도 있고예. 그라고, 성경해설집들 하고예... 영어로 된 것들도 많은데, 대부분 성경얘기 같습니더.”

“다른 건 없나? 일기라던가, 메모라던가 말이다.”

“아니예, 없는 거 같습니더.”

“그래? 알았다.”

“인자 우짜까예?”

“인자 됐다. 그만 자라... 그래, 내일은 좀 일찍 나온나.... 그래, 내일 보자. 오야, 니도 잘자라.”

최소장은 전화를 끊었다.

“뭐 좀 이상한 거라도 있대요?”

지혜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아이다. 종교얘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카네.”

“일기도 없대요?”

“그래, 없단다.”

지혜는 입을 닫았다. 그녀의 발그레해진 볼이 유난히 예뻐 보였다. 그녀의 눈은 아직까지 약간 젖어 있었다.

“인자 가자.”

최소장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고 지혜도 따라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