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3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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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3. 7 목요일


“몇시고?”

“네십니더.”

최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철수네 식구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죽은 사람이 김철수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다고 했더라도, 날이 밝는 대로 부리나케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같은 세상에 버스라든가 기차라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고 늦을리는 없고... 설사 그렇더라도 그들이 올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전화 연락 한 번 없는 것이다. 극히 상식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장은 벌써 몇 번째 박순경에게 시간을 묻고 있다.

“컴퓨터에 뭐가 있더노?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최소장은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을 박순경에게 던졌다. 하지만 박순경은 싫은 표정 없이 다시 한 번 대꾸했다.

“전부 종교 얘기 뿐이었어예. 일기나 메모는 전혀 없었어예.”

“니가 잘 못 찾은 거 아이가?”

“그럴 수도 있는데예.. 아주 특별하게 숨겨 놓은 거 아이면 제가 다 찾을 수 있을 깁니더. 제가 보기에는예.. 다른 건 없다고 봅니더.”

“전부 다 종교에 관한 거라고 니가 우째 아노? 니가 다 읽어봤나?”

“다 읽어 본 거는 아이고예.. 그래도 다 열어는 봤십니더. 조금씩은 다 읽어 봤다는 거지예. 어젯밤에도 봤고, 오늘도 소장님이 보라 캐서 다시 한 번 쭉 봤잖아예.”

“그래, 알았다. 다른 건 절대로 없다 말이제?”

“절대로는 아이고예... 제 실력으로 찾을 수 있는 거는 다 봤다는 거지예.”

“니말고 다른 사람 누구한테 보여 볼 사람 없나? 컴퓨터 잘 하는 사람 말이다.”

“지도 제법 하거든예. 제 생각에는 그라실 필요 없을 거 같십니더.”

박순경 얘기가 맞았다. 박순경은 비록 전문학교이긴 해도 대학을 졸업한지도 오래지 않고, 더군다나 컴퓨터는 제법 잘 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경찰들과 이런 저런 얘기들도 나누는 동호회활동도 하고 있고 개인적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물론 최소장은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박순경 말마따나 컴퓨터에서는 더 나올 게 없나보다.

“혹시 며칠 전까지는 있었는데 최근에 지워버린 건 없나?”

“사실 그런 건 전 잘 모릅니더. 지우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예... 일반적으로 지운 거는 제가 알거던예.. 그런 거는 다 봤는데 특별한 거는 없었고예.. 컴퓨터에서 흔적도 안 남게 지우는 방법도 있는데... 그건 제가 못 찾아냅니더.”

“그라믄 컴퓨터 잘 하는 사람은 그런 것도 찾아내나?”

“그럴 수도 있고 아일 수도 있고 그렇습니더.”

“그라믄... 누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지운 거 같나, 아인 거 같나?”

“글쎄예... 잘 모르긴 해도 제가 보기엔 누가 컴퓨터에 손 댄 거 같지는 않십니더.”

“그래, 알았다.”

최소장은 다시 입을 닫았다. 타살 흔적은 전혀 없고 단순한 사고사인 것 같은데. 서울서 식구들이 이렇게 안 나타나고 있다는 게 좀 이상하게 생각되어졌다. 지혜도 무슨 연락 있었냐고 벌써 두 번이나 다녀갔고 김철수가 세 들어 살던 지씨네에게서도 두 번이나 전화연락이 왔었다. 유독 서울서만 연락이 없는 것이다.

“아.. 그 사람 마지막으로 컴퓨터 쓴 게 언젠지 알 수 있나?”

최소장은 불현듯 다시 박순경에게 물었다.

“예, 찾아보겠십니더.”

박순경은 다시 컴퓨터에 매달렸다. 그때, 지혜가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연락 있었어요?”

지혜는 커피 보따리를 풀기도 전에 물었다.

“니, 오늘 와 이리 자주 오노?”

“오빠는... 궁금하니까 그렇지.”

“궁금하기는 니가 뭐 그리 궁금하노?”

“아직 연락 없어요?”

지혜는 면박 주는 박순경을 무시하고 최소장에게 물었다.

“그래, 아직 연락 없다. 곧 오겠지 뭐..”

지혜는 커피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최소장은 튕기듯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해운파출소 최강규소장입니더.”

평소와는 달리 최소장은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있었다. 왠지 자신도 모르게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동병원 원장입니다.”

“아, 예. 원장님.”

기다리던 김철수네 식구는 아니었지만 최소장은 병원이라는 소리에 약간 긴장됨을 느꼈다. 어쨌든 김철수의 시신이 있는 곳이 아닌가.

“저기.. 어제 사고 났던 사람... 그 사람 부모가 오셨어요. 이제 막 오셨는데, 지금 시신을 모시고 가겠다고 하네요.”

“예, 뭐라꼬예? 아직 안 됩니더. 제가 곧바로 갈테이까네, 조금만 기다리 주이소.”

최소장은 수화기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뭐라는데예? 오셨데예?”

컴퓨터를 만지고 있던 박순경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래, 왔단다. 만호야, 퍼뜩 가보자.”

최소장은 굉장히 서둘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가 아주 늦게 나타나서는 시신부터 수습을 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리 사고라고는 해도 통상 부모 된 입장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하나 따지고 물어 보는 게 당연한 일이다. 어쩌다 그랬나, 어떻게 된 건가, 사고가 난 건 확실한가 등등... 최소장은 감각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벌써 5시도 넘어 서고 있었고 밖은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만호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최소장을 따라 나섰다.

“저도 가면 안 되나요?”

지혜가 서둘러 일어서며 얘기했다.

“안 된다. 니가 어디 갈라카노. 그냥 다방에 가 있어라. 내가 나중에 전화해 주께.”

그런 지혜를 최소장이 말렸다. 셋이 막 파출소를 나서려는데 또 다시 전화벨이 울었다.

“에이 바쁜데 누고..”

최소장은 약간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번에는 평상시처럼 소속과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저, 요셉이 아버지되는 김수영이라고 합니다.”

“예? 예. 파출소장 최강규입니더.”

최소장은 처음엔 알아듣지도 못했다. 통상 이름을 김철수라고 생각해 왔던 이유도 있겠고, 방금 전 대동병원 장원장과 통화를 했는데 그 아버지되는 사람이 직접 다시 전화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 소장님. 전화로 뵙게 되네요. 원장님께서 소장님이 이리로 오신다기에 제가 전화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병원에서 뵈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예? 그런 건 아니고예..”

최소장은 말문이 막혔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더군다나 아들놈 짐도 챙겨야 하니까요.”

“아, 예. 그렇네요.”

“그래요. 그러면 제가 파출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는 끊겼다. 최소장은 한동안 수화기조차 내려놓지 못했다. 뭔가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아들이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그 아버지라는 사람의 반응이 너무나 담담했다.

“와예?”

따라 들어온 박순경이 놀라 물었다. 지혜도 옆에 서 있었다. 한참만에야 최소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래, 친아버지가 아이다.”

최소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라꼬예?”

박순경이 다시 한 번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아이다. 아무 것도 아이다.” 그래. 최소장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김철수의 아버지는 이제 막 서울서 여기까지 와서 아들의 주검을 눈으로 확인했다. 30년 동안 키운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침착하고 태연할 수는 없다. 친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도 아침 일찍 달려오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친아버지도 아니고, 무슨 일인가로 아주 사이가 틀어져 버린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친아버지가 아니예요?”

지혜가 최소장의 말을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인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인자 알겠네예. 와 이리 늦게 왔는지 말입니더.”

박순경이 최소장의 말을 받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이리 오신단다. 우리가 갈 필요 없겠네.”

최소장은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저도 여기 있을래요.”

지혜가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안 된다. 니는 고마 가라.”

최소장은 지혜를 쫓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지혜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싫어요, 여기 있을래요.”

“가라카이.”

최소장은 지혜가 있으면 이상할 것 같아 기어이 쫓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지혜는 대꾸도 않고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가시나야, 소장님이 가라 안 카나?”

박순경이 한마디 거들고 나왔다. 그래도 지혜는 대꾸도 없었다. 한동안을 세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지혜는 최소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가는 게 좋겠어요?”

지혜는 입을 약간 내밀고 최소장에게 물었다.

“그래, 그 사람들 부모가 오는데, 파출소 직원이 아닌 사람이 있으면 좀 안 이상하겠나?”

“알았어요.”

지혜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챙겨 파출소 문을 나섰다.

“나중에 꼭 전화해 주께.”

최소장은 약간 미안한 감을 느끼며 파출소 문을 밀고 나가는 지혜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리고 조금 있다 박순경이 최소장에게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소장님예. 컴퓨터 더 살피 볼까예? 마지막 쓴 날짜라든가 말입니더.”

“아이다. 그럴 필요 없을 거 같다.”

“예.. 컴퓨터를 고대로 복사해 놓을 수도 있는데예.”

“이 컴퓨터 안에 있는 거를 고대로 다른 컴퓨터에 옮기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더. 물론 지워버린 거는 못 찾아내지만예.”

“됐다. 그럴 필요도 없을 거 같다. 뭐 별 일 있겠나.”


검은색 자동차가 파출소 앞에 멈추어 섰다. 에쿠스로 보였다. 최고급 승용차였다. 최소장은 다시 한 번 약간 놀랐다. 김철수는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았는데... 역시 친아버지가 아닌 게 틀림없어. 최소장은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차가 파출소 앞에 멈추어 서자 운전석에서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얼른 내려 뒷문을 열어 주었다. 차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내렸다. 뒷자리에서 깔끔하게 차려 입은 신사와 정장 차림을 곱게 한 여성분이 내렸고, 앞좌석에서는 단아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가 내렸다. 기사는 다시 차로 들어갔고 세 사람은 파출소로 들어섰다.

잠시 동안 의례적인 수인사가 오갔다. 예상했던 대로 김철수, 아니 김요셉의 부모님들이었고, 젊은 여성은 그의 여동생이었다. 최소장은 아까 전화로 듣긴 했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잊어 버렸었고 실례를 무릎 쓰고 다시 한 번 질문을 해야만 했다. 그의 이름은 김수영이라고 했다. 직업은 뭔지 모르지만 꽤 돈을 잘 번다는 생각은 들었다. 최고급 승용차에 기사까지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흔치는 않잖은가. 어머니 되는 사람은 눈이 약간 부어 있었다. 김요셉의 죽음을 두고 눈물을 흘린 게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친어머니 인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동생은 김마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어서 거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이리 좀 앉으이소.”

최소장은 예의를 다하여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따뜻하지 않았다.

“뭐 그럴 것 있나요. 저희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또 서울로 가봐야 하잖아요.”

최소장은 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들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가? 최소장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아들놈이 살았다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짐을 챙겨 가야 하니까요.”

김수영은 여전히 침착하고 태연하게 말을 했다. 김요셉의 어머니는 그러는 남편 옆에서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여동생인 김마리아는 문가에 서서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최소장은 약간 화가 나려고 했다.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바쁘신 건 알겠지만 저희로서도 확인해야 할 게 좀 있습니다. 좀 앉으시죠.”

최소장의 말소리는 좀 떨려왔다. 그는 좀체 화를 내거나 흥분을 하지는 않지만 화가 나거나 흥분을 했을 때, 그걸 감출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느새 사투리보다는 표준말에 가까운 발음을 하고 있었다. 흥분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더 그를 흥분했다고 웅변해 주고 있었다.

김요셉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최소장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여동생은 여전히 문가에 서서 어두워져 가는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이미 어둡기 시작했는데 선글래스는 뭔 놈의 선글래스지... 최소장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자 최소장은 약간 딱딱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대동병원에 다녀오셨다니 시신을 확인하셨을 걸로 압니다. 아드님이 맞던가요?”

말을 해놓고 나니 최소장은 좀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덤덤했다.

“예, 틀림없이 제 아들놈이예요.”

“아드님 성함이 어떻게 됩니꺼?”

유족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인지 최소장은 어느새 예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고 자세도 훨씬 더 예의바르게 변해 있었다.

“김요셉이죠.”

“김요셉씨라.. 그런데 저희 동네에서는 김철수씨라고 알고 있던데, 혹시 이름이 둘이었나요?”

“김철수는 무슨 놈의 김철수.. 걔는 틀림없이 김요셉이고, 김철수라는 이름은 엉터리예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아버지 김수영은 말하고 있었다.

“이런 사탄 같은 놈.. 이제 이름까지 지 마음대로 하고 다니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김요셉의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 했다.

“예?”

최소장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으나 더 이상 그녀에게서 다른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최소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예. 그럼 대충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우선 부모님께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30년이나 고이 키우신 아드님이 졸지에 이런 변을...”

“이것 보세요, 소장님. 간단히 합시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고 했잖아요.”

다시 김수영이 끼어들어 최소장의 말을 가로 막았다.

“예?”

“좀 간단히 하자고요.”

드디어 최소장은 화가 났다. 최소장이 입을 열어 뭔가 말을 하려는데 엉뚱한 곳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아빠, 아빠는 그렇게 시간이 없어요? 오빠가 죽었잖아요. 우리 오빠가 죽었단 말이예요. 오빠가 죽었는데 아빠는 바쁘기만 하세요? 오빠가 죽은 게 그렇게 속 시원하세요?”

내내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김마리아가 어느새 돌아서서 이쪽을 쳐다보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최소장도 박순경도 깜짝 놀랐다.

“아니, 이놈의 기집애가... 조용히 하지 못해! 어디서 버르장머리없이.”

김요셉의 어머니가 딸을 나무라고 나섰다.

“제가 틀린 말 했어요? 엄마, 아빠 너무 해요.”

그래도 김마리아는 말을 그만 두지 않았다.

“그래, 시원하다, 시원해. 니 오빠는 죽을 짓을 한거야. 하나님이 그런 마귀를 그냥 두실 것 같냐?”

역시 김요셉의 어머니가 딸의 말을 받아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내 뱉았다. 최소장은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녀에게서 살기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둘 다 그만둬! 이게 무슨 짓들이야.”

김수영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은 잠잠해졌다.

“죄송하게 됐네요. 계속하시죠, 소장님.”

최소장은 할 말을 잃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확실히 김요셉과 그 부모는 사이가 좋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마침내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했다.

“그러지요.”

이제 최소장도 가능하면 짧게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다시 표준말 가깝게 쓰고 있었다.

“어제, 그러니까 2002년 3월 6일 14시 48분, 그러니까 오후 2시 48분 경, 김요셉씨로 보이는 사람이 죽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저와 박만호순경이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시신을 확인한 저희는 시신을 가까운 대동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실족에 의한 사고사로 추정이 됩니다. 물론 유족이 원하신다면 정확한 사고원인을 알기 위해 부검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김요셉씨의 죽음이 사고사라는데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아뇨, 됐습니다.”

김수영은 짧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도 이제 더 이상 최소장을 채근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 부검을 할 필요는 없겠군요. 좋습니다. 모든 건 끝났습니다. 여기다 싸인을 해 주십시오. 시신을 확인하고 유품과 시신을 인수해 간다는 서류입니다. 여기서 사고가 났고 신고가 들어온 건이라 형식적으로 이런 서류를 갖춰놓아야 합니다.”

그러며 최소장은 간단해 보이는 서류 하나를 내밀었고 김수영은 전혀 읽는 시늉도 안하고 싸인을 했다.

“박순경, 이거 챙기놔라. 그럼 가시죠. 김요셉씨가 살았던 집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최소장은 김수영이 싸인을 한 서류를 박순경에게 내밀고 김요셉의 부모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역시 이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하는 사람들이지? 아, 그래. 처음에 내가 전화했을 때, 어머니가 전화 받으면서 무슨 교회라고 했다. 이 사람 목사 아이가? 목사라면서 아무리 친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까? 어쨌든 진짜 친아들이 아니긴 아닌 모양이다.’

최소장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니 다시 한 번 더 기분이 나빠졌다.

“혹시 목사님이십니까?”

최소장은 일어서는 김수영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래요. 어떻게 아시죠?”

“아, 네. 어제 제가 전화 드렸을 때 사모님께서 교회라고 하시길래...”

“자, 갑시다.”

김수영은 문 쪽으로 향하며 최소장을 재촉했다. 최소장은 이때 김마리아에게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녀가 안절부절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갑자기 외쳤다.

“잠깐만요, 아빠. 저, 화장실 좀 갔다올께요.”

일어서던 김수영과 그의 아내는 엉거주춤 다시 앉았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들은 할 수 없다는 듯한, 마치 낭패 봤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박순경이 김마리아에게 화장실을 가르쳐 주었고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화장실로 갔다. 두세 번 뒤를 돌아보는 폼이 영 석연치가 않았지만 최소장은 이제 더 이상 이 사람들의 사적인 일에 끼어들고 싶지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한참이나 있다가 김마리아가 돌아왔고 모두들 일어섰다. 지씨네로 가기 위함이었다.

김요셉네 식구들은 예의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탔고, 박순경도 최소장의 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하지만 갑자기 최소장은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귀찮다거나 싫다는 이유로 마지막 하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 만호야, 니는 여기 있어라. 내가 이분들 차에 같이 타고 갔다 오께.”


결국 박순경은 파출소에 남고 에쿠스 승용차에 김요셉네 식구와 최소장이 타고 지씨네로 향했다. 최소장이 앞자리에 앉았다. 최소장은 남몰래 김마리아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가 뭔가 할 얘기를 못하고 있는 듯이 머뭇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는 얼마 안가 민호네 가게를 지나고 있었다.

“아이구. 죄송한데 여기 잠시만 세아 주이소. 저 가게에 잠깐 들러야 될 일이 있어어예.”

김수영과 그의 아내는 분명히 최소장의 이 말에 짜증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소장은 모르는 척 차에서 내려 민호네 가게로 들어갔다. 그는 가게에 들어와 에쿠스 승용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곧바로 박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만호야. 낸데.. 내 말 잘 들어라. 니, 여자 화장실 가 갖고 여기저기 함 살피봐라. 구석구석 잘 살피봐야 된다... 김요셉씨 동생이 뭔가 이상하다 아이가. 그라고, 그 컴퓨터 복사하는 거.. 그거 오래 걸리나. 30분이나.. 오야.. 그것도 빨리 복사해놔라. 하나도 빠지지 말고 전부 복사해야 한대이. 화장실에서 뭔가 나오면 내한테 곧바로 전화하고, 알았제?”

차에 돌아온 최소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밖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지씨네 중국집에 차가 멈추고 최소장 일행이 들어서자, 지씨네 부부는 겁을 잔뜩 집어 먹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역시 아주 간단한 수인사만 나누고 그들은 곧바로 김요셉이 기거하던 방으로 갔다. 최소장은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제 그대로였다.

“홍기사, 짐 챙겨서 트렁크에 넣게.” 김수영은 아주 사무적으로 기사에게 명령했다. 아들이 몇 달 동안 산 곳인데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김마리아는 달랐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선글래스를 벗고 방을 둘러봤다. 최소장은 처음으로 그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선글래스는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함이었나보다. 울음으로 많이 부어오르긴 했어도 그녀의 눈은 정말로 예뻤다. 최소장은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큼직하고 시원스런 눈매에 그리 크지 않은 코, 약간 도톰한 입술과 갸름한 윤곽하며, 그녀는 아주 뛰어난 미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요셉이나 그의 부모도 전부 시원하게 잘 생긴 편이었다. 김수영에게서는 뭔가 사람을 깔보는 듯한 거만함을 느낄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망할 놈의 자식.. 이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을 대하면서 어떻게 그런 마귀에게 영혼을 팔수가 있단 말이지.”

김요셉의 어머니가 넋두리하듯이 말했다.

“그만하라니까 자꾸 그러오.”

김수영이 그런 아내에게 주의를 주었다. 최소장은 아들을 두 번이나 마귀라고 부르는 김요셉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되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그의 아내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고 중얼거렸다. 그 동안에도 홍기사라는 사람은 김요셉의 짐을 챙겨 차로 나르고 있었다. 김마리아는 여기저기 손을 뻗어 만져 보고 있었다. 최소장의 눈에는 그녀가 오빠의 체취를 느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 다시 한 번 이슬이 맺혔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최소장은 다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최소장의 전화벨이 울었다. 직감적으로 박순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장은 지씨네 중화루를 벗어나 길거리에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김수영이나 그의 아내가 그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 듯했다.

“넌 또 어디 가니?”

김요셉 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바람이나 좀 쐬려고요.”

“쓸데 없는 짓 하지말고 그냥 여기 있어.”

최소장은 틀림없이 그녀가 그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라는 걸 알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역시 박순경이었다.

“어, 만호구나.”

“예, 소장님. 큰일 났심니더. 화장실에서 그 여자가 남겨놓은 걸 찾았는데예.. 디스켓 하나하고 쪽지가 있었심니더.”

“뭐라캐났는데?”

“제가 읽어 드리께예.. ‘오빠는 사고 난 게 아니예요. 틀림없이 아빠가 죽인 거예요. 오빠가 쓴 글이 든 디스켓이예요. 읽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그라고 전화번호가 있심니더.”

“그래, 알았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컴퓨터 복사는?”

“아직 한 20분 정도 더 있어야 끝납니더.”

“그거 복사했다는 거 표나게 하면 안된다.”

“알았심니더.”

“디스켓에는 뭐가 있더노?”

“조금밖에 못봤는데, 성경 이야기던데예. 성경 욕을 억수로 했던데예.”

“알았다. 잘 갖고 있거라.”

최소장은 다시 김요셉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짐들은 거의 다 옮겨져 있었다.

“그런데, 컴퓨터가 안보이네요.”

김수영이 최소장에게 적의어린 눈 빛으로 얘기했다.

“아, 그거는 파출소에 있심니더. 어제 제가 좀 본다꼬예.”

“보기는 뭘 봐요? 아니,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보는거죠?”

역시 김요셉의 어머니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최소장은 이제 치민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이거 보세요, 사모님. 저는 파출소장이고, 저희 관내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어요. 연고를 찾아야 되고, 단순한 사고사인지 살인인지도 알아야 되고, 조사를 해봐야 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법테두리내에서 한 행동들입니다.”

“......”

그녀는 입을 닫았다.

“그 컴퓨터에 뭐가 있길래 그러세요?”

최소장은 그녀에게 물었다.

“소장님, 당신이 이미 조사를 했다면서 뭐가 있는지 우리한테 물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야 걔를 안본지 오랜데, 걔 컴퓨터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번에는 김수영이 따지고 나섰다.

“아직 제대로 조사를 못했어요. 그래서 얘기인데 그 컴퓨터 며칠만 여기 좀 더 두셔야겠습니다. 좀 더 조사를 해야할 거 같아서요.”

“이것 보세요, 최소장. 이미 다 끝난 일 갖고 귀찮게 하지 맙시다.”

김수영이 조용히 타이르듯이 말했다. 최소장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덤덤한 김수영의 얼굴 때문에 구토가 날려고 했다.

“아니, 목사님. 이거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친아들이 아니라도 그렇지, 사람이 죽었는데 귀찮다고 조사를 그만둬요? 아드님이 혹시라도 억울하게 죽었다면 어떡하시겠어요?”

“뭐라고요? 친아들이 아니라고요? 누가 그래요? 그 놈이 이제는 애비마저 친애비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나요?”

김수영과 아내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김마리아도 이번에는 놀란 듯했다.

“아니, 그럼.. 친아들이란 말입니까?”

“그래요, 친아들이예요. 창피하게도 말이예요.”

김수영이 다시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이 망할 놈의 자식. 하나님을 거부하더니 이제는 지 부모도 거부해..”

김요셉의 어머니는 마치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매섭게 쏘아 붙였다. 최소장은 속에서 울분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아뇨, 그 친구는 절대로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두 분의 태도가 도저히 친부모 같이 보이지가 않길래 제가 지레짐작했던 건데 틀렸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최소장은 이 말을 해놓고 한참이나 둘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친아들이라면서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제가 뭘 어쨌는데요?”

고양이 눈의 여자가 말했다.

“뭘 어쨌느냐고요? 아들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도 두 분은 전혀 당황하시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부모는 그런 연락 받으면 새벽같이 달려옵니다. 혹은 밤을 세워 달려오기도 하고요. 또 두 분은 아드님의 죽음을 확인하시고도 전혀 슬퍼하시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마치 앓던 이라도 빠진 듯해 보입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전 아직도 두 분이 친부모라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놈은 제 자식이지만 제 자식이 아니예요. 그 놈은 하나님을 거부했어요. 사탄이 된 거란 말이예요. 하나님이 그런 놈을 용서하실 것 같아요? 그 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예요. 그 놈이 죽지 않았다면 내 손으로라도 죽였을 거예요.” 김요셉의 어머니는 표독스럽게 말했다. 최소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부모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인가? 그는 말문이 막혔다.

“......”

“자, 이제 그만들 하세요.”

김수영이 점잖게 한마디 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 주님 뜻대로 하소서. 요셉이 이놈을 영원한 지옥에 들게 하소서.”

김요셉의 아내는 마지막으로 죽은 아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최소장은 숨이 콱콱 막혀 옴을 느꼈다.

“당신도 그만하세요. 모두 다 하나님 뜻대로 될 거예요.”

김수영이 다시 한 번 아내를 만류했다. 그의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이었다. 자식을 걱정하거나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의 눈은 절대로 아니었다. 물론 그의 아내의 눈빛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컴퓨터는 며칠 더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여기 있던 물건들도 마찬가집니다. 다시 들여 놓아 주십시오. 조사가 끝나는대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소장은 드디어 울화통이 터졌다.

“이것 보시오, 최소장. 이러지 않는 게 좋아요.”

김수영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협박하는거요.”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잠깐 기다리시오.”

그리고는 김수영은 마당으로 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한참을 통화를 하더니 그는 최소장에게 전화를 받으라며 전화기를 건넸다. 최소장은 전화기를 던져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여보세요.”

그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틀렸다. 김수영은 단지 허풍이 아니었다. 최소장은 깜짝 놀랐다.

“예. 해운파출소장 최강규소장입니다. 예... 하지만 사고인지 살인인지 확실한 것도 아니고...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알겠습니다. 예, 알아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 예.” 최소장은 전화기를 다시 김수영에게 넘겼다. 그는 얼굴을 홍시처럼 붉히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누구라고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사람과 통화를 했었다. 그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질테니 김수영목사를 귀찮게 굴지 말라고 했다. 절대로 살인이 아니고, 설사 살인이더라도, 김수영목사는 아들의 죽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슬픈 상태이고, 그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또 피해를 보는 걸 원치도 않는다고 했다. 모쪼록 모든 걸 김수영목사가 원하는 대로 협조하고 일을 마무리짓기를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작년에 자기가 12시간 안에 옷 벗긴 파출소장이 하나 있다고 협박을 했었다. 그래, 그의 마지막 말은 이해가 갔다. 그 사람이라면 자기 같은 사람은 12시간 아니라, 1시간 만에 전근 내지는 파면도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최소장은 아주 짧은 시간동안에 행동지침을 정했다. 김수영은 한참을 더 통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럼, 짐을 가져가도 되겠소?”

김수영은 낮은 어조로 물었다. 거만스럽게 보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듯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더 역겨웠다.

“예.”

최소장은 짧게 대답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김요셉의 어머니는 철저하게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여보...”

김수영이 아내를 한 번 더 나무라는 듯한 태도를 취했고, 모든 건 끝났다. 최소장은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김마리아는 예상했다는 듯이 자포자기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럼 이제 컴퓨터 가지러 파출소로 갑시다.”

이제 주도권은 완전히 김수영이 잡았다. 그의 아내는 여전히 거만한 태도로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김요셉의 모든 짐을 승용차의 트렁크에 싣고 파출소로 왔고, 거기서 그들은 노트북 컴퓨터를 챙겼고 마지막으로 대동병원으로 김요셉의 시신을 가지러 갔다.

“소장님은 같이 갈 필요 없어요. 우리가 수습해서 갈테니까요. 여러 가지로 도와줘서 고마워요. 병원에 전화나 한 통화 해놓아 주시오. 그럼.”

최소장은 병원에 따라 가지도 않고 원장에게 전화를 해서 시신을 내드리도록 얘기만 했다. 그는 김요셉네 식구들이 떠나가고 난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소장님. 소장님.”

박순경이 그를 불렀다.

“어? 어.. 와?”

“와 그리 넋이 나가 계심니꺼? 무슨 일 있었심니꺼?”

“엉, 아이다. 그래 컴퓨터는 잘 복사했나?”

“예.”

“디스켓은?”

“여기 있심니더. 아래아 한글로 돼있심니더.”

“그래, 알았다. 하나만 더 복사해 주라.”

“예.”

“그라고, 그 쪽지는?”

“여기 있심니더.”

박순경은 급하게 휘갈겨 쓴 조그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모든 게 박순경이 말한 그대로였다. 최소장은 눈을 감았다. 김수영과 그의 아내 얼굴이 떠오르면서 역겨움이 확 밀려들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어떻게 김마리아 같은 예쁜 딸이 태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김마리아는 자신의 부모가 오빠를 죽였을 거라는 끔찍한 말을 했는지.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부모가 자식을 죽인다는 건 아직까지 최소장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디스켓 복사한 거 여기 있심니더.”

박순경은 디스켓 하나를 더 내밀었다. 최소장은 쪽지와 디스켓 하나를 곱게 책상 서랍에 넣었고 나머지 하나의 디스켓은 주머니에 넣었다.

“저기, 소장님.”

“와?”

“여쭤볼 게 많은데예.”

“그래.. 김요셉이 일이제?”

“김요셉예? 예, 맞심니더. 김철수씨 말이지예.”

“오늘 내가 소주 한 잔 사주께. 같이 저녁이나 묵자.”

“좋지예.”

“니 뭐 좋아하노? 뭐 사주꼬?”

“아무거나 좋심니더. 감자탕이나 사주이소.”

“그래, 가자.”

둘이 막 정리를 하고 파출소를 떠나려는데 지혜가 들어왔다. 그래서 그들은 셋이서 감자탕 집으로 향했다.


까맣게 때가 묻은 백열등이 희미한 불빛을 토해내고 있고 그 아래서 돼지 등뼈가 익으면서 내는 희뿌연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셋은 네 병째 술병을 비우고 있었다. 최소장은 젊은이들과 있으면서 아까 느꼈던 자괴심을 어느 정도 떨쳐 버리는 중이었다. 최소장이 지씨네에서 있었던 얘기를 두 젊은이에게 해주는 동안에 그들은 간혹은 흥분을 해서 욕을 해대고, 간혹은 최소장을 위로도 했다. 그들은 최소장이 전화로 협박을 당한 부분에서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흥분을 했었다. 그리고 김수영과 그 아내가 김요셉과 김마리아의 친부모라는 얘기를 최소장과 똑같이 믿기 어려워했다. 그러는 동안에 최소장은 술을 약간 과하게 마시고 있었다.

“그래, 우짤김니꺼?”

“뭐를 우째?”

“그 아버지라는 사람, 조사해 볼낌니꺼?”

“조사해 보이 뭐 하겠노? 시체고 짐이고 다 가 갔뿟는데, 무슨 증거가 나오겠노?”

“그렇다고 그냥 둡니꺼?”

“맞아요. 그 언니가 그런 쪽지를 남겼으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예요.”

지혜까지 거들고 나왔다. 최소장은 이 두 젊은이들이 좋았다.

“그래. 니들이 맞다. 그 김마리안가 뭔가 하는 여자는 한 번 만나 봐야 되겠지.”

“소장님, 저도 적극적으로 돕겠심니더. 뭐든지 시키만 주이소.”

박순경의 이런 말이 최소장은 아주 듬직했다.

“저도예. 저도 도우겠어요.”

“니가 뭐 한다고 나서노?”

박순경은 지혜에게 예쁘게 핀잔을 줬지만 최소장은 기분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그래, 알았다. 한 번 해보자.”

박순경은 겉으로 표현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내심 최소장을 존경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경찰로서도 말이다. 그는 최소장이 젊은 시절에는 아주 뛰어난 형사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재빠른 행동으로 그는 영원히 미해결사건으로 남거나 잘못된 결론으로 끝맺을 뻔한 수많은 사건들을 재대로 풀어냈었다. 그러는 중에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건드리게 되었고, 결국 그는 이런 외딴 곳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아직까지 이곳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소장은 이곳을 너무나 좋아하고 이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는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 인자 고마 가자. 술 오른다, 야.”

네 병째 소주가 바닥을 드러내는 걸 보고 최소장이 말했다.

“아이, 오빠. 우리 딱 한 병만 더해요.”

지혜가 애교스럽게 최소장 팔을 붙들며 말했다.

“뭐 오빠라꼬?”

“야, 이 가시나야. 소장님한테 오빠가 뭐꼬?”

박순경도 놀란 눈으로 지혜를 쳐다봤다.

“오늘 아저씨가 너무 멋져 보여.. 나 이제 오빠라고 부를려고.”

지혜는 여전히 애교를 부리고 있었고 팔을 붙잡힌 최소장은 그러는 지혜가 싫지만은 않았다. 결국 다섯 병째 술이 탁자 위에 나왔다.

“오빠, 나 담배 하나 피워도 되지?”

지혜가 여전히 최소장 팔을 붙들고 늘어지며 말했다.

“아니, 이 가시나가 점점... 버르장머리 없이...”

박순경이 지혜를 나무랐지만 지혜는 수그러들 줄을 몰랐다.

“뭐 어때, 오빠하기로 했는데. 그지 오빠?”

“그래, 그래. 만호 니도 담배 피아라. 늘 내 없는데서 피울라믄 얼마나 힘들겠노. 술자리에서는 괜찮다, 피아라.”

“아입니더.”

세 사람은 다 같이 기분들이 많이 나아져 있었고 술은 맛있게 넘어 갔다.

“만호야, 내일부터 니가 바쁠끼다. 알아볼 게 많거든.”

“걱정하지 마이소. 뭐든지 다 하께예.”

“그래, 고맙다.”

“오늘 당장 할 일은 없심니꺼. 컴퓨터로 하는 거는 집에서 해도 되는데예.”

“아이다. 그랄거 까지는 없고 내일부터 하면 된다.”

“처음에 뭘 해야 되는데예.”

“우선, 그 사람이나 식구들에 대해서 알아봐야지. 김요셉, 김수영, 어머니 그라고 김마리아, 그 여자도. 아버지가 목사니까 그 교회에 대해서도 알아봐야지.”

어느덧 다섯 병째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구, 인자 진짜 너무 늦었다. 그라고 너무 마이 마셨고. 인자 집에 가자.”

지혜는 약간 아쉬워했지만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직도 밤공기는 매섭게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