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5

amawriter
이동: 둘러보기, 검색


창세기


바이블을 과학적으로도 아주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사람의 손을 빌었을 뿐이고 그들의 신이 만든 책이니까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믿고 싶겠지. 하지만 믿고 싶은 것하고, 믿지 못할 것은 구별할 줄은 알아야지. 아무리 믿고 싶더라도,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협박을 하더라도,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더구나 한 줄만 읽으면 엉터리라는 게 탄로 나는 엉터리 책 한 권을 갖다 놓고 말이다. 하기야 그들은 그렇게 맹신적인 믿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하던 수많은 과학자들을 마귀 들렸다는 말로 호도하며 불 위에서 태워 죽여 버리지 않았는가. 그러고도 자기들이 틀렸다는 걸 알았을 땐, 추호도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얼버무리며 자신들의 엉터리 믿음만 계속 주장할 뿐이었다.

우선 이 창세기라는 것은 모세가 썼다. 창세기를 비롯하여,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는 모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소위 모세5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세의 시각에서 봐야만 된다.

창세기에서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한 순서와, 현대 과학자들이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세상만물의 생성 순서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이블이 아주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순서를 한 번 보자.

첫째 날, 빛과 어둠을 나누어 밤과 낮을 만들었다.

둘째 날, 물 가운데 창공을 만들어 하늘과 땅을 나누었다.

셋째 날, 바다와 육지를 만들고 온갖 식물을 만들었다.

넷째 날, 태양과 달, 별을 만들어 하늘에 걸었다.

다섯째 날, 바닷속 생물과 새를 만들었다.

여섯째 날, 육지 위의 모든 동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며 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쉬었다.

식물이 생겨났고, 어류와 양서류가 생겼고, 그리고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가 생겼다는 건 상식이다. 몇천년 전이라도 그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순서를 정해 배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류의 순서가 틀리는 바이블 정도로의 배열은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오히려 태양이 있기 전에 식물이 있었다고 엉터리 주장을 하는 걸 보면 바이블을 쓴 사람은 문체에는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코 과학적이거나 상식적이지는 않았나 보다. 하기야 과학적이거나 상식적인 사람이 이런 엉터리 공상소설을 쓸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바이블이 과학적이라느니, 적어도 천지창조의 순서가 기가 막히게 맞아들어 간다는 엉터리 같은 얘길랑 하지도 말자. 단 일주일에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은 얘기하기도 싫다. 틀림없이 바이블에서 말하는 하루는 비유일 뿐이고 인간의 하루와 여호와의 하루는 틀리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그 놈의 비유라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한 부분이다. 여호와는 바이블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자,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신이라는 것도 존재의 문제인데, 있다면 있는 거고, 없다면 없는 건데, 도대체 이 세상 그 어떤 존재가 오로지 단 하나만 존재한다고 주장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마 아무도 아무런 대꾸조차 않을 것이다. 상대를 하지도 않겠지. 바퀴벌레도 자기가 유일한 바퀴벌레라고 주장하는 놈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종교집단은 어쩌자고 자신들의 신을 유일신이라고 몰아붙여 의식 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사는 건지... 이 세상에는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없다. 물론 똑같이 생긴 놈은 없겠지만 같은 종류는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신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없으면 하나도 없고, 있다면 서로 다른 신이 여럿 있겠지. 어떻게 여호와 하나만 존재하겠는가? 외롭지도 않나? 바이블에도 여호와는 결코 유일신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다만 유대인의 신으로서 수많은 다른 신들이 보호하는 여러 민족을 상대로 수많은 싸움을 한다. 바이블도 다수의 신이 존재하는 걸 전제로 쓰여졌다. 만약 단 하나 존재하는 게 있다면, 그건 멸종 직전의 마지막 생명체겠지.

우리나라의 바이블에 하나님이라고 엉터리 번역이 되어 있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는 거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다. 영어로는 god가 아니고 gods! '신들‘ 이라는 뜻이다. 바이블 원문에는 여호와를 지칭할 때, 항상 복수로 썼던 것이다. 여호와뿐이 아니고 여호와 나부랭이 신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맹신을 버리지 못하고 은유적인 표현이니 상징적인 표현이니 하며 엉터리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그 집단에는 참 많다. 아주 편리한 사람들이지. 불리한 부분은 전부 은유고 상징이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았다면서 뭔 놈의 은유와 상징이 그리도 많은지. 여호와가 자신을 복수로 표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호와가 사람을 만들 때, 여호와는 수많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단다. 그리고 그 천사도 여호와가 창조했단다. 그럼 그건 몇 번째 날에 창조했지? 사탄과 마귀는 언제 또 만들었고? 이미 천사와 사탄과 마귀들이 존재하면 여호와는 더 이상 유일의 신은 아닌 것이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 여기서 ‘우리’라는 건 여호와 본인과, 그 아들인 예수, 그리고 성령을 일컫는다. 소위 삼위일체설이라는 거다. 도대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자신과 몇천년 뒤에 나올 아들과 자기 자신의 마음을 합쳐 ‘우리’라는 복수로 자칭을 하겠는가? 그랬다면, 여호와는 아주 상태가 안 좋은 존재였나 보다. 하기야 바이블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행동 양식을 보면 제정신일 경우가 극히 드물긴 하다.


거꾸로 아담과 이브에 대한 주장은 또 다른 웃음거리를 제공한다. 바이블에 의하면 분명히 여호와라는 신은 아담과 이브 단 한 사람씩의 남녀만 만들었는데, 나중에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추방을 당한 후 (카인과 아벨은 아담의 아들들이다), 그는 여자와 결혼을 하여 종족을 퍼뜨리게 된다. 그렇다면 아담의 가계 이외의 사람들은 과연 누가 창조했는가? 모세에 의하면 분명히 다른 신들이 창조했겠지. 우리들의 형상대로 만들자면서 여러 신들이 제각기 사람들을 만들어 여기 저기 흩어져 살게 했을 것이니까. 그런데 이걸 두고 아담은 남자를 대표하는 이름이요, 이브는 여자를 대표하는 이름이라 여호와가 여러 사람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이들은 그들 자신의 엉터리 생각을 끝없이 주장하려고 바이블에 있는 단수를 복수로, 복수를 단수로 몇 번을 바꿀 셈인가? 어떻게 바이블이라는 책은 이렇게 중요한 부분의 복수와 단수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엉터리로 썼는가?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담에게 카인과 아벨 이외의 딸들이 있었을 것이고 카인은 그 중의 하나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형제를 죽이고 추방당해 혼자 살다가 결혼을 하기 위해 여동생 하나를 납치했다는 말인가?

아마 그게 아닐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을 만들었고, 카인이 결혼한 여인은 다른 신이 만든 다른 민족이었겠지. 아마 신들이 사람을 만들었다면 틀림없이 수많은 신들이 수많은 사람을 만들었을거다. 그래야 얘기가 되지 않는가?


어쨌든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이라는 곳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에덴동산을 지금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어느 곳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아담의 직업을 지상의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종의 작명가인가? 다른 모든 점에서 불편한 점이 없는 아담과 이브였지만 단 하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여호와로부터 금지당한 일이 있었다. 생명의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때 모두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어리석은 아담과 이브를 불쌍히 여긴 뱀이 이브에게 이 열매들을 먹도록 권한 것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여호와에게 속고 있던 이브가 말했다. ‘만약 이 열매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여호와가 말했다’ 그러자 뱀이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죽지 않는다. 여호와는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의 눈이 열려서 여호와처럼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알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다. 바이블에 그렇게 되어 있다. 이브는 뱀의 말을 듣고 나서 그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그 열매를 먹으면 지혜로와질 것 같아서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권해서 먹도록 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호와가 아담을 나무란다. 자,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선악과를 따먹은 일을 추궁 당하자 아담은 이브가 주기에 먹었다고 발뺌을 하고 이브는 뱀이 자신을 속였다고 변명을 했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자신의 잘못을 아내의 탓으로 돌리고 뱀에게 돌리는 치사한 반응을 보였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내가 주길래 먹었다고 하겠는가, 아내에겐 잘못이 없고 모두가 내 탓이라고 하겠는가? 세상 모든 정상적인 남자라면 자신의 아내를 위해서 자기가 대신 벌을 받으려하지, 아담처럼 자신의 죄까지 자신의 아내 탓으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이렇게 비겁한 남편이 있거든 세상 아내들이여, 그 남자와 하루 빨리 이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 모두의 조상이 이런 나쁜 성향을 가졌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여호와라는 무지막지하고 잔인한 신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던 어리석은 아담이라는 한낱 유대인의 조상 하나가 저지른 잘못에 지나지 않는다. 선량한 대한민국 남성여러분은 결코 이런 짓을 하지는 않는다. 믿으시라. 우리는 여호와가 만든 비열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다.

이제 여호와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바이블에는 분명히 여호와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보라,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우리들처럼 선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또다시 생명의 나무 열매까지 따먹고 영원히 살게 될는지도 모른다.’ 여호와 혹은 그들은 사람이 그들처럼 선악을 알게 된 걸 두려워했고, 더군다나 영원히 살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분명히 아담과 이브는 처음부터 영원히 살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여호와는 사람을 속였던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되어 있던 사람에게 죽게 될 것이니 생명수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협박한 것이다. 사람들이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하려면, 즉 생명수를 먹지 못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두 가지 방법이 있겠지. 사람을 생명수가 있는 에덴에서 추방해 버리는 일과 에덴에서 단 한그루 있는 생명수를 없애 버리는 것이 그 두 번째 방법이다. 어느 것이 손쉬울까? 여호와가 세상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생명수를 만든 것도 그일텐데, 생명수를 없애는 일이야 얼마나 쉬울까. 물론 사람을 추방하는 일도 똑같이 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생명수를 그냥 두고 사람을 추방하는 일에는 위험이 있다. 이미 사람이 선악과를 몰래 따먹었듯이 나중에 에덴에서 추방당한 사람이 몰래 에덴으로 다시 기어 들어와 생명수를 먹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생명수를 없애는 간단한 일을 하지 못했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가? 여호와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었거나 생명수를 없애는 일을 할 능력이 없었겠지. 나는 그에게 아무런 깊은 뜻은 없었다고 본다. 나무 한 그루까지 죽이지 않는 넓고 넓은 자비심 내지는 생명 사랑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여호와는 사람을 기어이 죽이려고,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일을 꾸미는데 그렇게 지고지선한 생명사랑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이블 전체를 통해서 여호와 그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죽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결론은 그에게 생명수를 없앨 능력이 없었다는 말이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고 ‘생명수가 있으라’ 하면 생명수가 있는데 ‘생명수가 없어져라’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대신 ‘너희는 여기서 나가 살아라’ 하고 간단히 명령한 것이다. 없어져라 한다고 없어질 생명수는 아닌 반면, 나가 살아라 하면 나가 살 아담과 이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착하고 불쌍하고 머리 나쁜 아담과 이브를 여호와는 못 죽여서 안달이 나 있는 악귀중의 악귀였던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생명수와 에덴동산을 못 찾고 있는데, 이는 잔인한 여호와가 나중에 생명수는 물론이고 에덴동산마저도 없애 버렸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모세는 어린 아이조차 믿을 수 없는 이런 엉터리 같은 소설을 쓰고 있다.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바이블은 얘기하고 있다. 종교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에게 이 얘기를 해보라. 아무도 믿지 않고, ‘나무꾼과 선녀’같은 동화책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는 사람들이 먹을까봐 두려워하면서 선악과와 생명수는 처음부터 왜 만들어서 에덴동산 한복판에 두었을까? 사람들이 그들처럼 지혜로워지고 영원히 살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에덴에서 추방하며 애태우는 여호와의 모습에서 그 여호와들이 과연 선악과와 생명수를 만들고 에덴동산을 만들고 심지어는 사람과 세상과 천지를 만들었다는 앞 뒤 안 맞는 바이블을 믿을 수 있는가? 도대체 선악과와 생명수는 처음부터 왜 만들었지? 여호와는 그걸 없앨 능력이 없었듯이 그걸 만들 능력도 없었다. 여호와는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호아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걸 나무랄 때, 아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가 주셔서 나와 함께 사는 여자가 주길래 먹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여호와 니가 니 손으로 만들어서, 나하고 살도록 한 바로 그 여자가 내게 먹으라고 줘서 먹은 것인데 그게 어찌 내 잘못 만인가? 나도 잘못이고, 이브도 잘못이고, 그런 이브를 만들어 내게 준 여호와 당신도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 모든 걸 다 안다는 당신이 어찌 이런 일도 예측 못했느냐?’ 이런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아빠가 집을 비우고 외출하면서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두루마리 휴지를 풀고 놀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면서 방안에 고양이를 같이 뒀다. 고양이가 두루마리 휴지를 물어뜯어 풀기 시작했고 그게 재미있어 보여 아이도 같이 휴지를 풀었다. 이게 누구 잘못인가? 전적으로 아이의 잘못인가? 두루마리 휴지를 아이의 손에 닿는 곳에 두고 두루마리 휴지를 좋아하는 고양이를 같은 방에 둔 아빠는 정말로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인가? 당신이 아빠라면 아이만 나무랄 것인가? 그때까지 옷을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순박하게만 살아온 아담이나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갈 소지가 너무나 많았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은 여호와가 사실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무책임하고 뻔뻔스런 여호와는 모든 잘못을 아담과 이브와 뱀에게 돌리고 자신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아담이 분명하게 지적을 하고 있는데도 여호와는 마치 못 알아들은 듯이 행동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대가리가 나빠서 못 알아들은 건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런 큰 사고가 터졌을 때, 항상 남을 나무라기 이전에 자신의 잘못은 없는가 부터 생각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여,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결코 여호와같이 반응하지는 마시라. 여호와처럼 뻔뻔스럽게 행동하면 남에게 욕먹지.


여하튼 아담과 이브는 그들을 죽이려고 안달이 난, 대가리 나쁜 여호와에 의해서 에덴에서 추방당해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또 사건이 터진다. 바이블에서 말하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바이블에 따르자면 사실은 인류 최초라기보다는 유대인 최초의 살인 사건이 될 것이다.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인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을 낳고 카인은 땅을 가는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치는 목자가 되었다. 여호와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양치는 목자에 대한 굉장한 신뢰 내지는 경외심이 있는 것 같다. 항상 자신을 한 마리 양에 비유하고 양치는 목자가 필요한 존재라고 얘기한다. 목자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고 왜 사는지 몰라. 김성동 씨가 쓴 소설책 중에 염소 한 마리가 염소로서 자신의 의지 없이 살아가는 생활이 싫어 끊임없이 반항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은 그 염소보다도 의식 없는 존재라는 말인가? 그저 목자의 말에 복종하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렇게 사는 게 그렇게 좋은 것인가? 진정 자신을 그런 한 마리 양이라고 생각하는지 한심스럽다. 우리 집에 키우는 개도 간혹은 나에게 반항을 하는데 말이다.

카인과 아벨은 각자가 거두어들인 소출을 가지고 여호와에게 제물을 드렸다. 카인은 그가 땅에서 거두어들인 열매를 드렸고 아벨은 자신이 기르는 양을 제물로 내놓았다. 그런데 여호와는 아벨의 제물은 반갑게 받았지만 카인이 드린 열매는 받지 않았다. 그래서 카인은 질투가 나서 아벨을 죽여 버렸다. 이 살인죄로 인해 카인은 또다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추방당한다. 어째 아담 집안사람들은 추방만 당하는지. 그리고 여호와는 더 하다. 신이면 신답게 행동해야지 뜻대로 잘 안되면 죽이고, 저주하고, 추방하고, 참 희한한 신도 다 있다. 내 생각엔 지구인에겐 잘 안 맞는 신인 듯하다.

요즘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가정해 보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래서 각자 마음을 담은 선물을 했는데, 그 여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비싼 선물만 받고 가난한 남자의 마음의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그 남자의 심경이 어땠을까? 질투심에 눈이 멀어 상대방 여자나 혹은 경쟁자인 남자에 대한 살의를 느끼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실제로 이런 살인이 일어나는 일도 없잖아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살인에 대한 엄격한 거부가 덜했던 그 옛날에야 훨씬 더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살인이 일어났을 때, 그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어떠할까?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또 죽인 사람에 대해서도 다 같이 미안하고 죄스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여호와는 어떠했는가? 자신이 카인의 식물성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동물성 제물만 받아 들이면, 질투심에 의해 카인이 아벨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전지전능하다는 여호와가 이런 일 하나 예측하지 못하다니. 이거는 카인의 행동 하나를 예측하는 일하고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는 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거는 단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여 선물을 하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호와가 누구인가? 카인이나 아벨의 부모인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가? 아담과 이브는 물론이고 아벨이나 카인 자신마저도 자주 직접 만나 얘기하던 창조주가 아닌가? 그런 여호와에게 제물을 드리는 일이 아닌가? 이들이 존재하는 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는 그 간단한 예측 하나 하지를 못했다. 아니면 그런 예측이 가능한데도, 설마 하는 생각에 그런 무책임한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살인을 부추긴 것이 된다. 그는 카인이 살인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 동물성 먹이가 탐이 났을까? 그렇더라도 카인이 바치는 식물성 열매도 같이 좀 받아 들여 줬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아들이 있어, 한 아들은 고기를 사오고, 한 아들은 채소를 사왔다면, 어느 부모가 고기만 받아들이고 채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을까? 또 그렇게 해서 채소를 사온 아들이 고기를 사온 아들을 죽였다면 부모 심정이 어떠할까?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릴까? 그런데 여호와는 어떠했나? 분명히 카인의 살인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여호와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카인의 살인을 뒤늦게 알게 된 여호와는 죄책감이나 미안한 감정은 커녕, 카인의 죄만 지적하고 부모인 아담과 이브를 떠나 추방시켜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기는 그들 사람이나 그들 사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여호와나 똑같을 뿐이다. 나는 여호와가 카인의 살인도 예측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도 인정할 줄 모르는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대가리 나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바이블 같은 책을 쓴다면 우리의 신을 이런 존재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블에 대한 이상한 맹신을 하는 사람들은 카인만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다. 당시와 같이 동물성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물로 바쳐진 양에 눈이 먼 여호와가 불러일으킨 예측된 살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카인이라는 연약한 인간에게 뒤집어 씌워서 추방해 버리는 또 하나의 잘못을 여호와는 양심의 가책 하나 안 느끼고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 아벨은 정성껏 제물을 바쳤고, 카인은 그 정성이 부족했단다. 말이 안 돼도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소리도 드물다. 물론 바이블에는 카인의 정성이 모자랐다는 일언반구도 없을뿐더러 당시에 식량을 제물로 바치는데 정성이 모자라다니,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식량은 생명이다. 정성이 모자라면 제물을 바칠 수도 없다. 다시 한 번 반문하지만 여호와가 누구인가? 카인이나 아벨의 부모인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가? 아담과 이브는 물론이고 아벨이나 카인 자신마저도 자주 직접 만나 얘기하던 창조주가 아닌가? 그런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치는데 정성이 부족하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정성도 없이 제물을 바친 카인이 여호와가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는다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동생을 죽이겠는가? 정성이 없었다면 그만한 일로 동생을 죽일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왕에 정성도 없이 형식적으로 바친 제물인데 여호와가 안 받으면 그만이지 뭐 하러 그만한 일로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겠는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주장하더라도 앞뒤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고 주장해 주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카인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엉터리 신 여호와로 인해 동생을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여호와는 한술 더 떠서 ‘너는 땅에서 저주를 받아서 밭을 갈아도 작물을 얻을 수 없으며 영원히 떠도는 자가 될 것이다’ 라는 저주를 퍼붓고 카인을 추방해 버린다.


아벨은 죽고 카인은 추방당하고, 아담과 이브는 그 이후에 셋이라는 또 하나의 아들을 낳는다. 추방당한 카인은 결혼을 하여 자식들을 낳아서 유목민 베드윈의 조상, 기계를 만드는 자의 조상, 악기를 만드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카인의 후예는 도시를 만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카인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바이블 신봉자들이 말하듯이 아담과 이브가 낳은 여동생을 납치해서 결혼을 했을까? 어떤 이는 처음부터 에덴에서 쫓겨난 사람은 아담과 이브 단 두 사람이 아니라 아담 집안의 모든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뒤죽박죽 엉망진창 바이블이다. 그보다는 처음부터 아담과 이브 집안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존재했었다고 얘기하는 편이 얼마나 더 자연스러운가? 바이블을 꼬아서 해석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어쨌든 이때부터 노아의 시대까지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노아는 결국 셋의 자손이며 아담으로부터 10대째인 사람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많이들 타락해 있었단다. 그래서 절대로 후회를 모르는 완벽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여호와가 이때에는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만든 걸 후회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천지를 창조했다고 우기며, 전지전능하다고 우기며, 완벽한 존재라고 우기는 여호와가 사람과 지상의 생명을 창조한 일을 후회했다니, 아마 여호와는 소문과는 달리 한치 앞도 못 내다보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대가리 처박고 후회하는 가련한 존재인가 보다.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던 여호와는 마침내 대홍수를 일으켜 사람과 지상의 모든 동물을 멸절시킬 것을 결심한다. 지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동물을 멸절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 잔인하고 건방진 놈이 세상에 또 있을까? 배트맨이나 007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악당보다 더 나쁜 놈이다. 우리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이런 나쁜 악당을 좋은 사람으로 보고 닮아 가려는 노력을 하게 해서야 되겠나? 그래서 청소년들이 바이블을 읽을 땐, 반드시 부모의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는 나쁜 놈이니까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걸 배우며 읽으라고 지도해야 하지 않을까? 칼로 사람을 30번 찌른 영화가 나쁜가, 세상 모든 생명체를 멸절시키는 악독한 소설책이 나쁜가? 마침내 여호와는 못된 심술을 부려 대홍수가 시작되었다. 노아는 큰 방주를 만들어 자기 자신과 아내, 세 아들, 그리고 며느리들과 함께 육상의 온갖 생물(동물과 식물 모두를 포함한다.) 한 쌍 씩을 싣고 홍수를 피한다. 새는 나중에 이런 잔인한 여호와를 위한 번제물로 쓸려고 일곱 쌍을 실었다. 정말로 홍수가 나서 노아의 방주에 타지 않은 지상의 모든 생물은 멸절했다고 바이블은 주장한다. 정말로 여호아의 저주로 인해 모든 동식물이 멸절되었다면, 이런 잔인한 여호와는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미친개에게 한 번 물린 셈치고 다시는 이런 존재하고는 상종도 말아야지. 이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물이 목숨을 잃었겠는가?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자가 역사나 선사, 혹은 우주 생성이후 지금까지, 또 앞으로 영원토록 여호와 말고 달리 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잔인한 서구 사람들의 머리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정말이지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을 중시 여기는 우리 동양 사람들은 이런 존재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이런 잔인한 여호와를 등장시키는 기막힌 소설을 쓰지도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여호와가 홍수를 일으켜 모든 생명을 멸절시킨 걸 믿는다고 말하지는 말라. 단지 긴 홍수라는 자연재해가 있을 순 있었겠지. 여호와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이 말이다.

얼마 전에는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고 난리를 쳤다. 한심하고 한심스럽다. 얼마나 큰 방주여야 노아의 식구들하고 지상의 모든 생명을 한 쌍 씩 실을 수 있을까? 그런 배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큰 배를 그동안 교회가 서구 세계 전체를 지배하던 몇천년 동안은 어디 있는지 모르다가 이제서야 발견했다고? 이 말이 믿어지는가? 이 말을 믿고 싶은가? 노아는 길이 135미터, 폭 22.5미터, 높이 13.5미터의 방주를 만들었다고 바이블에 쓰여 있다. 이 조그만 배 안에 과연 무엇을 얼마나 실을 수 있을지 상상이나 해보라. 지상의 모든 동식물 한 쌍 씩을 다 실을 수 있을까? 방주에 있는 동안 이 동물들이 먹고 살 식량은? 홍수는 40일간 계속되었지만, 150일 간 천지가 물로 덮여 있었다고 바이블은 말한다. 모세라는 덜떨어진 인간은 이 정도면 굉장히 큰 배인줄 알았나 보다. 모든 동식물을 다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돈 백원이면 세상을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보다 덜떨어진 놈이 모세인 것이다.


그리고 또 여호와의 눈에 유일한 살려 둬야 할 완벽한 인간으로 비쳤던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렇게 정말로 완벽한 인간이었나? 노아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셈, 함, 야벳이다. 셈의 자손이 오늘날의 유대인이고, 함의 자손은 오늘날의 팔레스티나인이며 야벳의 자손은 인도 유럽어족이다. 어느 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노아가 완전히 취해 알몸으로 천막 속에서 잠이 들었다. 함은 천막 속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는 아버지 노아를 발견하고는 형제들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천막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 주었다. 나중에 술에서 깨어난 이 미치광이는 이 말을 듣고 함을 질책하고 그를 다른 형제들의 노예의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고 저주했다. 이해가 되는 일인가? 지가 술 처먹고 벌거벗고 잠이 들었는데, 그걸 우연히 보게 된 아들에게 질책을 하고 저주를 하다니. 다른 형제들의 영원한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니. 당시에 노예라는 건 사람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냥 노예도 아니고 노예의 노예라니.

생각을 해보자. 당신이 술 먹고 벌거벗고 잠이 들었는데, 당신 아들 중 하나가 이 모습을 우연히 봤다는 이유로 그 아들을 다른 아들의 노예가 되도록 저주를 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당신은 노아만큼 완전하지 못한 인간, 선하지 못한 아버지라서 그렇게 못하는 것인가? 그 반대일 것이다. 당신은 그런 저주를 할 정도로 악하거나, 미치광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노아는 바이블에 분명히 그렇게 쓰여 있는 그런 인간이었다. 여호와는 그렇게 구제할 사람이 없어서 노아 같은 미치광이를 구제했단 말인가? 하기야 미치광이의 눈엔 미치광이가 정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혹시 아직도 노아나 여호와가 선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절대로 아들과 같이 목욕탕을 가지는 마시라. 혹시 목욕탕에서 자신의 나신을 봤다는 이유로 아들을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라고 저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아가 함을 저주한 데서 우리는 유대인의 팔레스티나인에 대한 억지와 광기를 느낄 수 있다. 팔레스티나인의 조상을 나쁘게 얘기하고 싶겠지. 아벨을 죽인 카인을 나쁜 인간으로 몰아 붙여, 밭을 가는 농부보다 양을 치는 목자를 우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듯이 말이다. 이들은 억지와 광기를 부리는 데는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게 해서 2차대전 후 팔레스티나인들의 땅을 빼앗고는 노아의 저주가 이루어졌다고 좋아하고 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정당화하는 방법치고는 참 고리타분하고 역겹다. 아, 정말이지 이런 인간들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 나도 어떤 미친 짓을 당하게 될까 두렵고도 두렵다. 그들의 벗은 몸이라도 보게 되면 내 집과 내 모든 것을 빼앗고 저주대로 됐다고 좋아하며 정당화하겠지. 이런 인간은 가까이 않는 게 상책이다. 유대인의 팔레스티나 땅 강점에 대해서, 노아의 저주가 이루어졌다느니, 심지어는 유대인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좋은 본보기라고 떠드는 인간들을 보면 정말이지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여호와가 홍수로 사람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멸한 다음, 바이블에 나오는 이야기는 바벨탑에 관한 것이다.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는 노력을 하자 여호와는 인간의 언어들을 혼잡하게 하여 인간들이 일치단결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다. 여호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언어가 한가지니까 이런 일을 시작하는구나. 이후로는 인간들이 하고자하는 일을 막을 수가 없겠구나.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여호와는 늘상 인간들이 자기네들의 능력을 가지게 될까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인간들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네들처럼 선악을 알게 되는 걸 싫어했고, 영원히 살게 될까봐 겁을 냈고, 통일된 언어로 자기들이 막을 수 없는 일을 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때까지 인간의 언어가 한 가지였는데, 이때 이후로 민족마다 다른 수백 가지의 언어로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바이블에 그렇게 써 있다는 걸 살펴봤을 뿐이다. 여호와의 나약함이나 근심거리를 알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미 인간은 한 가지 언어로 통일시키지는 못했지만 여러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통해 모든 인간들의 생각이나 능력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여호와 말대로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분석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심판하고, 그들의 존재여부를 정해 줘야 할 때이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는 걸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인간으로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아주 오랜 옛날에 인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신이라는 걸 만들어 낸 것이다. 눈에 가장 잘 띄는 태양신을 만들었고, 달의 신도 만들고, 바다의 신, 바람의 신 등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말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이상한 변태 같은 신을 만들어 냈으니, 그 참 희한한 족속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