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6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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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바이블에 나오는 사람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며 그들의 얘기를 하고 있다. 결코 바이블에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내어 하는 게 아니다. 그러게 바이블을 제대로 읽으라니까.

다음으로 바이블에 등장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다. 그의 아내 이름도 새라에서 사라로 개명했다. 여기에서는 편하게 처음부터 아브라함과 사라로 부르기로 하자. 아브라함은 노아의 자손으로, 노아는 아담에서 10대째의 자손이며 노아에서 또 다시 10대째의 자손이 아브라함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예수로 이어진다. 신약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예수의 선조라고 했다. 이것도 틀린 말이지만 말이다.

아브라함이 바이블에 처음 등장할 때는 그의 나이가 75살이었다. 이 시대엔 사람의 수명이 많이 줄어들어 75살의 아브라함이 500살에 방주를 만든 노아보다 건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상 인류의 수명이 줄어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바이블이 엉터리 소설책이라는 수많은 증거 중의 하나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과는 어머니가 다른 여동생이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근친결혼을 한 것을 당시에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 신앙을 간직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하는데, 그때 그 잔인한 종교가 없어졌더라면 세상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고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도 훨씬 적었을테고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갈데아 우르라는 집안에서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호와가 그에게 가나안 지방으로 가라는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가나안 지방은 팔레스티나 지방을 가리킨다. 유대 민족들은 아주 옛날부터 이 가나안 땅을 마치 자기네 땅이라는 듯 무던히도 탐을 냈었다. 물론 아주 잠깐 자기들이 산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역사상 아주 짧은 기간이고 팔레스티나 땅은 팔레스티나인들의 것이다. 어리숙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대로 가나안으로 갔고, 그곳에서 그는 물 부족, 식량 부족의 기아와 허기에 허덕이게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로 간다. 당시 이집트는 가장 잘 사는 곳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때 아브라함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로 이주를 해갔다.

아브라함은 먹을 게 없어서 거지같은 몰골로 이집트로 들어가면서,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연출한다. 자신의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여서 이집트 파라오에게 바친 것이다. 바이블에서는 파라오가 사라의 미모를 보면 아브라함 자신을 죽이고라도 사라를 차지하려고 할 게 틀림없으니 미리 아내가 아니라 동생이라고 했다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당시 이집트는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곳이었고 더군다나 가나안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사라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나길래 파라오가 자기를 죽이고 뺏을까봐 겁을 냈겠는가? 더군다나 사라는 당시에 65살이었다. 물론 바이블에 나오는 초창기 사람들은 모두 기계처럼 오래 살았긴 했다. 하지만 분명히 아브라함은 그렇게 젊고 힘 있지는 않았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신의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고 파라오에게 시집보내는 이런 얼간이 같은 남편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남편이라면 역시 빨리 이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여하튼 사라는 파라오의 아내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수많은 양, 소, 당나귀, 낙타 그리고 남녀 노예를 선물로 받았다. 결국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굶어죽을 위기에 있던 아브라함이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고 파라오에게 시집을 보내고 부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나중에 파라오에게 사실을 밝힌다. 사라는 동생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라고 말한 것이다. 파라오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이 마음씨 착한 파라오는 자신의 아내로 시집을 온 사라를 기꺼이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고,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처벌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먼저 줬던 선물도 하나도 뺏지를 않았다.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죽이고 사라를 차지할 사람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파라오가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게 아니라면 아브라함은 이런 사기극을 벌일 이유도 없었고, 또 설사 아브라함이 처음엔 겁을 먹고 아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라도, 사라와 파라오가 결혼을 할 때까지 아브라함이 파라오를 몇 번은 만났을텐데, 이런 대범하고 욕심 없는 파라오인데 얼마든지 사실을 먼저 얘기할 기회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물론 완전한 거짓말만은 아닌 게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아브라함의 배다른 동생이기도 했다.) 파라오의 아내로 주고 나중에 사실을 실토하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다. 결국 아브라함은 곧바로 이 많은 재물과 노예를 데리고 가나안으로 유유히 돌아간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그래, 그렇다. 서기 199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나타난 꽃뱀의 수법 그대로다. 꽃뱀과 기둥서방의, 전형적인 미끼를 던지고 협박을 하는 기법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잘 보살펴 준 때문이라면, 세상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잘 사는 사람들 모두는 여호와가 보살펴 주나보다. 하기야 그런 인간들을 잘 보살펴 줄 신은 세상에 여호와같이 악랄하고 이기적인 신밖에는 아무도 없겠지. 자고로 신은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사람들 편이 아니던가? 바이블도 나중에는 이런 진리를 배워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얘기를 하기는 한다. 예수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바이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부자 아니면 왕이었으니까 모두 아직도 바늘구멍 앞에 서 있는 낙타 신세일 것이 틀림없을 듯 하기는 하다. 게다가 파라오를 상대로 이런 엄청난 사기극을 벌여 부자가 된 아브라함은 죽어 과연 어디에 가 있는지 묻고 싶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상습적으로 아내인 사라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집트에서 이 같은 사기극을 벌이며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고 나서 약 20년 뒤 그랄(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라 하듯이 블레셋의 왕을 이르는 일반명사)을 만났을 때, 그는 다시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 속이고 역시 아비멜렉에게 주었다. 이유는 똑같다. 아비멜렉이 아내인 사라를 갖기 위해 자신을 죽일까봐 겁이 나서 그랬다고 바이블에 쓰여 있다. 분명히 바이블에 그렇게 쓰여 있다. 내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모든 게 20년 전 이집트에서의 사기극과 똑같았다. 더구나 이때 사라의 나이 이미 85살이었다. 다시 아브라함은 곧바로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밝히고, 왕인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나 사라를 벌주기는커녕, 많은 양과 소와 노예, 그리고 은 천 개를 주어 돌려보냈다고 바이블에 쓰여 있다. 이집트에서와 똑같다. 아브라함은 두 번에 걸쳐 아내인 사라를 팔아 똑같은 사기를 치는 못난 짓거리를 하고 있다. 꽃뱀 사라와 기둥서방 아브라함, 이것이 오늘날로 치면 이들의 전문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서 이집트에서의 사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이후 자식을 갖지 못해 애를 태우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는 것만큼 더 큰 불행한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은 여호와에게 자기는 평생 자식을 가질 수 없는지를 물었다. 이때,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만큼 번성할 것이라고 말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런 건방진 놈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지가 뭔데 땅을 주니 마니 하지? 이집트에 가서 성공적으로 사기를 치고 온 아브라함이 그렇게 예뻐 보였나? 그럼 아예 온 세상을 다 주지 왜 좁은 가나안만 줬지? 그래도 그나마 우리에겐 참 다행이다. 이때 여호와라는 정신 나간 신이 지금의 한국 땅도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유대인들은 이 엉터리 같은 말 한마디로 2차대전이후, 그 전 2천년 간이나 그 땅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팔레스티나 인들을 몰아내고 여호와가 자신들에게 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강점해 버렸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놈들은 여기에 비하면 참으로 양반 중에 양반이다. 유대인들의 가나안 강점에 대해, 미국이 동조하고 나섰다.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살았고, 여호와가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니까,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인들을 쫓아내고 사는 게 옳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역사이래로 줄곳, 2천년이 아니라 불과 300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원주민에게 그 땅을 돌려주고 하루라도 속히 유럽으로 돌아가라. 그 땅은 분명히 원주민의 것이다. 불과 300년을 살았다고 자기네 땅이면 2천년을 산 팔레스티나인들은 왜 쫓아내지? 여호와가 가나안 땅이 아니라 미국대륙을 유대인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었다면, 그들은 과연 순순히 유대인에게 땅을 줬을까? 그런데도 미국놈들은 아랍인들을 나쁜 놈이라고 하고 있다. 이건 뭐야? 땅 뺏기고 욕 듣고. 수십억권의 바이블이 이를 증명하는, 소위 유대인들의 가나안 땅 소유권을 증명하는 땅문서라고 우기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한심하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을 할 줄 알아야지. 우리가 팔레스티나인이어서 이천년동안 조상들의 뼈를 묻고 살던 땅을 하루아침에 무력으로 뺏기고 쫓겨났다면 과연 그런 소리가 나올까? 일본놈이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우리의 심정이 어떠했나? 그러고도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니, 지금의 우리의 심정이 또 어떠한가? 우리는 다행히 36년 만에 우리의 땅을 되찾았지만, 유대인에게 땅을 뺏긴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땅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팔레스티나인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수십억권의 땅문서가 있다니, 그들의 눈에는 이 엉터리 소설책 바이블이 땅문서로 보이나 보다. 이런 엉터리 주장이 일본의 역사왜곡에 비할쏘냐?

더군다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건 아무런 증인도 없다. 그저 그 사기꾼 같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여호와가 자기에게 약속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보거나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모세라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바이블이라는 소설책을 쓰면서 장난삼아 그렇게 쓴 것일 수도 있고, 꽃뱀 사기꾼 아브라함의 또 다른 부동산 사기극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단순한 막장 소설책의 글 한 줄 때문에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유대인의 가나안 땅 강점이라는 만행으로 이어지다니. 여호와가 주겠다면, 그건 줘야 되는 건가? 아, 이제야 생각났다. 잊어버리고 말 안할 뻔 했는데, 여호와가 얼마 전에 내게 나타나 약속을 했었다. 유대인이 강점한 가나안 땅은 물론이고, 한국을 강점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고 역사 왜곡이나 일삼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전체 하고 미국 대륙을 나와 내 자손에게 주겠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여호와가 내게 분명히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 땅들은 이제부터 내 땅이다. 그러니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아, 이천년이 지나더라도 내 자손이 그 땅을 달라고 하면 아무 미련 없이 그 땅을 떠나 주기 바란다. 적어도 가나안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아, 너희들이 전지전능하다고 주장하는 여호와의 약속이다. 그러니 여호와가 약속한 나와 내 후손에게 대항하지 말고 순순히 말을 들어라. 또 여호와는 달과 태양, 그리고 태양계의 행성 전부를 나와 내 자손에게 줬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손댈 생각도 하지 말길 바란다. 여호와는 참 인심 좋은 놈이더라 내게 달을 주다니. 내가 여호와의 본성을 꿰뚫어 나쁘게 말하니, 나를 원수로 생각해서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 세상을 내게 준거겠지. 지금 내가 실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대인이라는 놈들, 여호와가 해와 달과 우주만물을 만들었다고 바이블에 쓰여 있으니, 아들인 예수가 상속을 받아야하고, 결국 유대인인 자신들이 그 상속자라며 온 세상과 우주전체를 내놓으라고 우기면 큰일이다. 대가리 나쁜 유대인들이 내 얘기를 듣고 이런 엄청난 주장을 안 하길 빌 뿐이다. 하지만 여호와는 분명히 우주 전체를 내게 가지라고 했다. 그러니 이 약속은 영원히 유효하다. 세상 사람들아,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특히 유대인, 일본인, 미국인들은 잘 알아 두길 바란다. 그 땅은 영원히 나와 내 자손들의 땅이다.


여기서 잠깐,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얘기를 하자. 바이블의 흐름에 큰 영향은 없으나, 적어도 창세기 내용을 전부 망라한다는 의미에서 짧게나마 언급하고자 한다. 아브라함의 조카 중에 롯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늘 행동을 아브라함과 같이 했다. 이집트에서의 사기극을 무사히 마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라함과 함께 롯도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협잡꾼들은 나쁜 짓을 할 때는 서로 마음이 통하고 협동하지만, 일이 성사되고 나면, 결코 화목하게 잘 살 수는 없는 일인가 보다. 이 두 사기꾼도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다. 바이블에는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을 먹이는 목동들 사이가 불화했다고 하는데, 가축의 임자인 두 사람이 화합했었다면, 그 목동들이 심하게 다투는 일은 결코 없었으리라.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하고 롯이 소돔으로 이주해 갔다. 당시 소돔은 굉장히 번성한 곳이었다. 롯은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소돔에 정착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호와가 보낸 두 천사가 소돔을 멸망시키기 위해 소돔을 방문했다. 당시 소돔은 성적으로 지극히 타락하여 문란하기가 짝이 없었다고 한다. 아직도 소도미(sodomy)라는 단어는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여호와는 항상 그랬듯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소돔을 불타는 유황을 퍼부어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두 천사를 보냈다. 아무튼 여호와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바로 이 멸절, 절멸, 멸망이라는 단어들일 것이다. 그저 죽이고 부수고 멸망시키고. 선과 악이란 게 무엇인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 심지어는 무생물에 대해서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선이고 남이 잘되는 걸 싫어하고 그저 부수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게 바로 악이다. 그런 면에서 여호와는 지선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서 최고로 악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천사가 도시 전체를 멸망시키려는 임무를 띠고 파견되는 일은 바이블 같은 악랄한 소설책이 아니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얘기다. 이런 일에는 사탄이나 마귀를 보내도 될텐데 왜 하필 천사를 보냈는지. 여하튼 롯은 천사들의 이런 의중은 알 수 없었으나 천사들을 집으로 초대해 융숭한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저녁을 먹은 후 소돔의 남자들이 롯의 집으로 모여들어 손님으로 와 있는 두 나그네를 혼내줘야겠으니 내놓으라고 했다. 아마 여호와가 파견한 이 두 천사라는 것들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혼내줘야 할 존재로 보였나보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한 천사의 모습은 아니었나 보다. 하기야, 착한 천사가 아무리 여호와 같은 엉터리 깡패의 명령이 있었더라도 도시 전체를 멸망시키려 하지는 않았겠지. 아마 이 두 천사라는 것들은 지금으로 치면 깡패 중에 행동대원쯤 이었던 모양이다. 소돔의 남자들이 혼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남색을 포함한 말이다. 롯은 소돔의 남자들에게 대신 자신의 두 딸을 내주겠으니, 두 나그네는 건드리지 말 것을 부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버지가 집으로 초대한 나그네를 대신하여, 자신의 두 딸을 내놓겠다고 했을까?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이 두 천사라는 깡패새끼 행동대원들로부터 실로 엄청난 협박과 고난을 당했던 게 분명하다. 집을 불 지르겠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들은 도시를 불 지르러 온 것이니까. 그렇더라도,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제발 두 딸들을 희생으로 내 놓는 일은 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도대체 바이블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사악한 마음이 끝간데를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의 딸들이여, 혹시 집 안의 어떤 우환이나 또는 전혀 상관없는 난생 처음 본 두 나그네 손님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기꺼이 딸들을 폭도들의 손에 넘겨주려는 일이 있거들랑, 그 즉시 가출을 하시라. 그런 집구석에 붙어 있다가는 언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여하튼 소돔의 남자들은 막무가내로 두 나그네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마침내 천사들은 문 밖 남자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롯의 가족들에게 피신할 것을 명했다.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만이 피신을 했고, 마침내 불타는 유황이 소돔과 고모라 전체에 덮쳤다. 그리고 롯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를 못했다. 모근이 송연한 일이다. 도대체 멸절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여호와 깡패새끼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이게 그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롯의 가족 중에도 희생자가 나왔다. 천사들은 롯과 그 식구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충고를 했었는데, 롯의 아내가 이를 듣지 않고 뒤를 돌아다 본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당신들은 선한 자들이 행하는 일을 뒤돌아 봤다고 죽음을 당하는 일을 본 적이 있는가? 악마나 사탄, 또는 악한 영혼이 이런 짓을 저지른다. 결코 선한 영이나 착한 천사들은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뒤를 돌아다 봤다는 이유로 사람을 산 채로 소금기둥이 되어 죽게 만들다니. 우리가 흔히 보는 공포 영화에서 뒤돌아보다가 죽음을 당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봤는가? 그때 어디 한 번이라도 착한 영이 이런 짓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나 소설, 또는 그와 유사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선구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이러한 많은 공포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호와라는 악신의 행동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람을 협박하고 공포스럽게 만드는 게 여호와의 특기이다,

결국 소알로 도망쳐 나온 롯과 두 딸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들의 정신상태가 또 그렇게 정상적이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산 속의 굴에서 생활을 했는데 두 딸은 일생을 외딴 굴에서 결혼도 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만은 꼭 갖기를 원했다.

결국 두 딸은 아버지를 술 취하게 만들어 차례로 같이 잠자리를 해서 아이들을 낳게 된다. 언니가 낳은 사내아이는 모압이라 하는데, 후에 모압족의 조상이 된다. 동생이 낳은 사내아이는 벤암미라고 하는데 암몬족의 조상이다. 우리의 슈퍼스타 예수의 조상이 다윗이고, 이 다윗의 조상이 모압이니, 결국 예수의 조상은 딸과의 근친교접을 한 롯과 그 자식인 모압인 셈이다.


다시 아브라함 얘기로 돌아가자. 여하튼 아브라함조차 자신에게 가나안 땅과 자식을 주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을 믿지는 않았나 보다. 이때, 사라의 나이는 75세였고, 출산이 어려운 나이였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상기하는데, 75세가 출산이 어려운 나이인데, 65세였을 때의 사라가 얼마나 예뻤길래 파라오가 빼앗아 갈까 두려워 아브라함이라는 사기꾼은 그녀를 동생이라고 속였을까? 더군다나 20년 뒤, 사라가 85세 때, 블레셋에서 다시 한 번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인다. 왕인 아비멜렉이 85세인 사라의 미모에 반해 자신을 죽일까봐 미리 동생이라고 속이고 왕의 아내로 보낸다. 모세는 소설을 쓸 때, 앞뒤를 잘 맞춰서 쓰질 못했나보다. 임신이 어렵다고 생각한 사라는 하갈이라는 자신의 노예를 아브라함에게 줘서 임신을 하게 했다. 하갈은 이스마엘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다. 그로부터 13년 뒤에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과 가나안 전 지역을 영원히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의 증표로 태어나는 사내아이 전부는 태어난 지 8일째에 할례를 하도록 했다. 그 명령을 받은 그날로 바로 아브라함은 집안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하도록 했다. 이때, 아브라함은 99세였고, 하갈이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은 13세였는데, 이로부터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은 지금까지도 13세 때에 할례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이때는 이미 사라는 멘스가 끝났었다고 나와 있다. 멘스가 끝난 여자가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바이블 신봉자들은 이런 걸 가지고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성처녀 마리아가 목수 요셉과의 성적 교접 없이 예수를 낳은 일도 그들에겐 기적으로 보이나 보다. 내게는 거짓말로 보이는데. 사라가 이삭을 낳았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그 누구라도 멘스가 끝난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거나, 성적으로 처녀라고 주장하며 아이를 낳는 여자가 있거들랑 절대 그들의 말을 믿지 말고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시라. 하기야 어지간히 대가리 나쁜 사기꾼이라도 이런 거짓말은 잘 안하겠지. 다시는 이런 거짓말쟁이가 지구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을 여호와의 기적 운운하며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어리석은 일이 다시는 지구상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빌 뿐이다. 사기꾼을 사기꾼이라고, 거짓말쟁이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아주 일반적인 상식도 필요한 것이다. 벌거숭이 임금님을 벌거숭이라고 말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온갖 거짓말을 기적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 시작하면, 세상엔 온갖 거짓말과 사기가 기적이라는 말과 혼용되어 진리와 정의가 사라질 것이다.

어쨌든 바이블에선 다음해에 드디어 사라가 아들을 낳으니 그의 이름이 이삭이다 라고 했다. 이삭이란 웃는다는 의미이다. 이삭이 태어난 이후에 아내인 사라와 노예 여자 하갈의 갈등이 한층 심해졌다. 사라는 노예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자신의 자식인 이삭을 제치고 호주상속을 받게 될까봐 노심초사했다. 나중에도 언급이 되겠지만 유대인들에겐 호주상속에 대한 규칙이 우리나라만큼이나 철저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은 호주상속자인 장자의 것이었다. 결국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내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 같은 가정문제를 여호와와 상의를 한다. 여호와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자신이 돌보겠다며 사라의 말대로 할 것을 명했다. 그러면서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이므로 그를 잊지 않을 것이며, 그의 자손들이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쫓겨난 이스마엘의 자손이 바로 아랍인이 되었다.

천하의 사기꾼 아브라함은 종교하고 인연이 아주 깊은 듯하다. 아들인 이스마엘이 오늘날 이슬람교도인 아랍인의 조상이 되었고, 이삭으로 이어진 유대인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선조가 되었으니, 결국 아브라함은 이 3대 종교의 선조가 된 셈이다.


이 유대인들의 조상, 바이블의 영웅들 얘기에 또 하나의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라는 정신병자가 또 다시 발작을 한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너의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그를 내게 번제로 바쳐라.’ 어느 날 갑자기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내린 명령이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살벌한 장면이다. 바이블과 여호와를 숭배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아, 정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이 장면을 상상해 보라.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여호와의 크신 사랑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하고 싶겠지. 그렇다면 이해도 하지 못하는 그따위 엉터리 신앙은 당장 때려치우시라. 그리고 아비가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일이 비록 신앙적으로나마 이해가 되는가? 그런 게 당신들이 말하는 신앙이고 여호와의 힘인가? 번제라는 게 뭔가? 잘 아시다시피, 제물을 산 채로 쌓아놓은 나뭇단에 올려놓고 완전히 태워 그 연기를 여호와에게 바친다는 의식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들은 아들을 산 채로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로 태울 수 있는가? 이 명령이 아무렇지도 않고 정상으로 보인다면, 당신은 당장 정신 감정을 받아봐야 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번제로 바치러 갔다. 이런 정신 나간 일이 있나? 세상이 완전히 미쳤다고 밖에는 뭐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혹자는 우리나라에도 부모의 생명을 구하려고 아들을 제물로 바친 일들이 전설로 전해 온다고 말하겠지. 그게 같은 얘긴가? 그게 같은 얘기로 이해가 되는가? 그런 덜떨어진 이해력으로 책을 읽으니 엉터리 소설책과 사실을 구별도 못하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우리네 부모가 자식을 희생시키는 예는, 그야 말로 부모의 목숨을 구하려고 어쩔 수 없는 희생을 하는 것이고, 지금 아브라함이 하는 짓은 단지 여호와 보기에 좋으라고 올리는, 또는 여호와가 그 냄새를 맡고 기뻐하라고 올리는 제물로 삼기 위해 아들을 죽이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같은가? 심지어는 여호와는 아버지 이상으로 절대적인 신앙의 존재라고 한다. 그러니 아버지 목숨을 구하려고 아들을 희생하는 것보다 더 당연하게 여호와를 위해서 아들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심스럽고 한심스럽다. 도대체 여호와라는 정신병자가 이삭을 번제로 바치지 않으면 당장 죽기라도 한다더냐? 우리네 아버지들도 부모의 목숨 정도와 바꾸는 일이 아니면 결코 아들을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부모 보기에 좋으라고 아들을 태워 죽이는 놈이 있으면 당장 정신병원에 가둬 버려야지. 도대체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온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이 어디 있나? 전설의 고향 얘기를 해보자. 저승사자가 나타나, 아들이나 아버지 둘 중에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고 얘기를 한다. 혹은 오랫동안 앓아 계신 부모를 위해 아들을 삶아 먹이면 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아버지는 며칠을 울며 고민한다. 자신이 대신 희생할 수는 없느냐고 애걸도 해본다. 그러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걸 안 아버지는 피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희생시킨다. 자신의 부모님을 위해서 말이다. 그게 인륜이라는 거겠지.

우리의 덜떨어진 족속 아브라함과 여호와를 보자. 앞 뒤 설명도 없다. 다짜고짜 ‘아들을 죽여 태워 내가 그 냄새를 맡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해라.’ 하고 명령하고 아브라함이라는 아버지는 ‘그러지요’ 하고 일말의 망설임이나 의심도 없이 대답한다. 자신이 대신 희생될 수는 없느냐고 부탁해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간다. 그리고 장작을 쌓고 아들을 묶어 올려놓고 실제 칼을 들어 아들을 찌르려했다고 바이블에 분명히 쓰여 있다. 내가 만든 얘기가 아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나? ‘네 아들을 죽여 나를 기쁘게 해다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치 바보들의 대화인가? 정신병자의 대화인가? 아니면 소설을 쓴 사람이 너무 잔인한 사람이다 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쓴 웃지 못 할 이야기의 한토막인가? 이건 깡패들의 대화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사실은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너무나 끔찍하니까 그냥 무시하고 넘어 갔으면 싶을 지경이다. 여호와라는 세상에 유일한 정신이상자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이다.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정신이상자 변태도 이런 상상은 못해봤겠지. 여호와가 이삭의 희생 없이는 자신을 살릴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린 것도 아닐테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있지? 설사 그렇더라도 자신을 위해서 아들을 희생시키려는 부모는 세상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참으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여호와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이걸 가지고 진정한 신앙의 극치라고 떠벌이는 한심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를 어떡해야 하나? 어떻게 이들을 인간적인 사고를 하도록 돌려놓을 수 있는가?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고, 한심하다. 제발 좀 정신 차리고 눈을 떠라! 그러다간 네 손으로 네 아들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 정말로 일어날 지도 모른다. 당신이 빠져 있는 그곳은 최고의 악이다. 악중의 악이고 지옥중의 지옥이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라! 제발, 제발.. 난 눈물이 난다.

제발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는 일을 상상해 보라.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가 여호와이고, 잘못하면 자신이 아브라함같이 정말로 아들을 희생시키려는 정신이상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여호와는 아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명령이라며 아이들의 병원치료를 거부해 결국은 아이들을 희생시킨 정신이상자 여호와 맹신자 부모가 요즘 세상에도 실제로 있지 아니한가?

결국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로 베려고 했다. 그 순간에 여호와가 어떤 심적 갈등을 일으켰는지,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여하튼간에 아브라함을 제지하고 나선다. 결국 이삭은 죽음 직전에서 겨우 살아 나왔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은 그리도 아까워 사랑하는 아내를, 아니 사랑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평생을 함께 하기로 언약한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고 파라오에게 팔아 넘겼던 인간이 아들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게 없애려 했던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이삭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신이상자 아버지를 만나 거의 죽을 뻔한 것이다. 이삭도 상당히 이상한 놈인 것만은 틀림없다. 어쩌면 전혀 지적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지적 능력이 좀 모자라는 정신지체아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고 제단에 묶였다가 풀려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을 한다. 세상의 아들들이여! 혹시 당신들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을 불태워 죽이려고 묶어서 나무 단 위로 끌어 올리거든, 어떻게 해서든 도망을 가길 바란다. 세상에는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괴범이 와서 아버지가 부른다고 해도 도망을 가야하는데, 심지어 여호와가 부른다는 말에는 절대로 속지 말고 도망을 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절대 그런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는 돌아가지 말고 경찰서든 어디든 신고를 해서 안전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는 그런 아버지에게 양육권을 맡길 만큼 어리석지는 않으니까 안심하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을 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는 이번에는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제 또 마음이 변하거나 정신이 이상해져서 아들을 불태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제발 성령이니, 여호와의 명령이니, 그따위 정신 나간 소리 집어 치우고 자기 목숨 보존하길 바란다. 여호와가 아브라함의 자신에 대한 신앙심을 시험했느니 어쩌니 하는데, 그때 아브라함은 분명히 이삭을 죽이려고 했고 이는 여호와라는 아편과 같은 존재의 명령에 의한 것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들의 목숨을 가지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려는 이런 정신 나간 녀석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기를 충고한다. 전지전능하다고 구라 푸는 놈이 척보면 알아야지 아브라함의 마음 속 하나 못 꿰뚫어보고 보고 신앙을 시험한답시고 이따위 장난을 치냐? 한심하고 한심하다. 이걸 보고 아브라함의 순수한 신앙심이 어떠니, 절대적인 믿음이 어떠니 하고 떠드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길 진심으로 빈다.

제발 자신의 나신을 본 아들에게 몹쓸 저주를 퍼붓는 노아나, 정신 나간 작자의 말 한마디에 아들을 죽이려고 제단에 올리는 아브라함을 닮으려고 하지 말고, 아주 평범하게 아들에게 줄 아이스크림 한 봉지 사서 일찍 퇴근하는 옆집 아저씨를 닮도록 우리 다 같이 노력하자. 제발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는 일은 하지 말자. 그게 아무리, 신이라는 이름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더라도,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면 과감히 거부할 줄 아는 게 진정한 용기고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신도 종교도 다 인간이 만든 건데, 어떻게 인간답지도 못하고 도의적이지도 못한 게 선한 일이 될 수 있으며, 장려될 수가 있을까?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인간답지 못하고 인간이 보기에 눈살 찌푸려지는 일을 강요하는 종교는 더 이상 인간에게 유익한 종교가 아니고 과감히 개종을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호와가 보기에 좋은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보기에 좋은 일을 할 노력을 해야지. 인간 보기에 좋은 일이라면, 정상적인 신이 보기에도 좋은 일이 아닐까? 그래야 인간이 믿고 따를만한 신이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이삭은 어머니인 사라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이를 들은 사라는 비통해 하다 얼마 후 죽고 말았다. 세상 어느 어머니가 그렇지 않으리오. 아브라함 같은 정신병자 아버지에게 아들을 맡기고 죽은 사라는 눈이나 감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생각엔 아마 이런 일을 당한 이삭도 정신이 그렇게 정상적이지는 않았던 듯하다.

세월은 흘러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 마을에 살고 있는 리브가라는 아가씨와 이삭을 결혼시키고, 전 재산을 이삭에게 남겨주고 죽었다. 아브라함의 장례식에는 이삭이 상주가 되고 이스마엘도 참석을 했었다. 그리고 바이블에는 이삭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앞으로 얘기를 전개할 아들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만 있다. 어쩌면 내가 상상한대로 이삭은 정말로 좀 덜떨어진 인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하나 더 일어난다. 이삭이 사는 곳에 큰 흉년이 들어 이삭은 아내인 리브가와 함께 그랄(블레셋)로 이주를 하였다. 그곳에서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또 자신의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비인 아브라함이 똑같은 곳에서 아내인 사라를 동생이라고 사기를 치더니 이번엔 아들인 이삭이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짓을 저지른다. 아마 아버지 아브라함은 자기의 특기인 아내 갖고 사기치 는 일을 아들인 이삭에게 전수해 줬었나 보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참 드문 일이기도 하다. 세상 대부분의 사기꾼들은 자기의 악행을 아들이 이어 받길 원하지 않는데 비해, 이 아브라함은 자기가 개발한 이 사기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나 보다. 하기야 당시로서는 천재적이고 기발한 방법이기는 했을 것이다. 아마 아브라함은 이 기발한 사기술을 자자손손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기 집안만의 비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 한국 꽃뱀과 기둥서방들이 약 4천년이 지난 오늘날에야 이 비법을 스스로 터득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의 원조도 실은 이 바이블이라는 나쁜 책에서 영감을 얻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삭 역시 왕인 아비멜렉에게 리브가가 자신의 아내라고 말한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는 왕의 말에 사람들이 아내를 빼앗고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웠다고 대답한다. 이삭도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대로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1년 동안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수익을 남겼다고 바이블은 말한다. 이 말이 정말이라면 그 비법을 우리 농민분들께도 좀 일러 줬으면 좋겠다. 1년에 백 배 아니라 열 배만 되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들을 위대한 은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 생각엔 1년 동안 백 배의 수익을 남기려면 단지 농사만 지은 건 아닐 것 같은데, 틀림없이 이 집안 특유의 사기술이 한 몫을 했겠지. 그리고 이삭도 그 아버지 아브라함같이 마침내 많은 소와 양 그리고 노예를 거느리게 된다. 역시 여호와의 축복은 위대하고도 훌륭하다. 아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만 하면 이렇게 재산을 늘려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이집트의 파라오나 블레셋의 아비멜렉은 교활하고 속임수에 능한 유대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박한 사람들이었나 보다. 늘 당하기만 하고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재산을 불려 주는 역할만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