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살인사건 7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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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와 비슷하게 이삭과 리브가도 자식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 늦게야 아내인 리브가가 임신을 했다. 이렇게 까지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사라와 리브가가 가는 곳마다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꽃뱀 짓을 하다 보니 임신이 어려워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임신 중인 리브가는 자궁 안에서 쌍둥이 두 아이가 심하게 싸우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에서와 야곱인데, 이놈들은 엄마 배속에서부터 싸움질을 하던 못돼 먹은 놈들이었다. 정신병자 사기꾼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이 하나같이 덜돼먹은 놈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침내 쌍둥이들이 태어났다. 형은 몸에 붉은 털이 많아서 에서라고 이름 짓고,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난 동생은 야곱이라 이름지었다.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란 뜻이고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사람이란 뜻이었다.

둘은 자라면서 성격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형인 에서는 활달한 성격에, 밖에 나가 사냥을 했고, 야곱은 조용히 집안에서 어머니를 도와주길 좋아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요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좋아했고, 어머니인 리브가는 조용히 자신의 일을 돕는 야곱을 편애했다. 또한 이삭이 에서를 좋아한 데는 에서가 장자라는 면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만큼이나 장자에 대한 선호사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쌍둥이 형제들은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기야 배속에서부터 싸움질을 하던 놈들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다 형제간의 불화를 결정적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날도 들에 나가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에서는 무척 배가 고팠다. 그런데 마침 야곱은 팥죽을 만들고 있었다. 에서는 배가 고프니 팥죽을 좀 달라고 했다. 형이 배가 고프면 팥죽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교활한 야곱은 그러지를 않고 조건을 붙였다. 형인 에서가 가진 장자상속권을 자신에게 넘겨주면 죽을 주겠다고 했다. 배가 너무 고픈 불쌍한 에서는 그러자고 승낙을 하고 붉은 팥죽을 얻어 먹었다. 바이블을 비비 꼬아서 엉터리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장자상속권을 가볍게 여겨 팥죽 한 그릇에 판 에서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판관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근본적으로 형제간에 팥죽 한 그릇을 미끼로 장자상속권을 가로채려한 야곱을 먼저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에서는 자기가 죽으면 장자상속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장자상속권을 팔고 동생으로부터 죽을 얻어먹었다고 바이블에 쓰여 있다. 즉, 장자상속권을 팔겠다고 말하지 않으면 야곱은 형인 에서가 굶어서 죽을지라도 절대로 죽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뜻인 것이다. 에서는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장자상속권과 죽을 바꾼 것이다. 세상 어떤 사람이 형이 배고픈 틈을 타, 알량한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이 가진 모든 것을 뺏으려 할까? 당시로서는 장자상속권은 에서가 가진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야곱을 끝까지 두둔하고 편애한 전직 꽃뱀 리브가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었나보다. 하기야 바이블에 상태 좋은 사람이 어디 하나라도 있는가? 바이블에서 이 모든 잔인하고, 어리석고, 비열하고, 교활한 사람들을 여호와 뜻에 합당했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면서 억지로 미화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예수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아니, 예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예수는 좋겠다. 이런 개떡같이 훌륭한 조상들을 둬서 말이다.


예수의 이 훌륭한 조상 야곱의 비열함이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드러나는 일이 아버지 이삭이 죽는 장면에서 이솝우화처럼 그려지고 있다. 이삭이 나이가 들어 늙어 줄을 때가 되었다. 이삭은 늙어 가면서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식욕은 여전히 왕성했던 모양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삭은 장자인 에서에게 들로 나가 사냥을 해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 음식을 먹고 전 재산을 물려주고 축복도 해주겠다고 했다. 에서는 죽어 가는 아버지를 위해서 들에 나가 열심히 사냥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몰래 엿들은 리브가와 야곱이 다시 한 번 비열한 짓을 한다. 그들은 눈이 먼 아버지를 속이고 전 재산과 축복을 가로채려 한 것이다. 리브가와 야곱은 새끼 염소를 잡아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리브가는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혀 에서의 냄새를 나게 만들었으며, 새끼 염소의 가죽을 야곱의 손과 손목에 감아 털이 많은 에서처럼 꾸몄다. 그리고는 그 요리를 아버지인 이삭에게 들고 가 축복을 해달라고 했다. 이삭은 에서가 너무 빨리 사냥을 마치고 요리를 해 온 것에 의심을 품었으나, 냄새도 에서의 냄새였고, 손을 만져 봐도 털이 많은 에서의 손이 틀림없었다. 이삭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을 했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야곱은 ‘그렇습니다’하고 눈먼 아버지를 속였다. 드디어 이삭은 요리를 맛있게 먹고 나서 야곱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축복을 했다.

잠시 후,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서 요리를 만들어 아버지 이삭에게 가지고 갔다. 그때서야 이삭과 에서는 교활한 야곱에게 속은 줄을 알았지만 이미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내린 뒤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바이블에 기록되어 있다. 축복이란 게 그렇게 단 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바이블에는 더 이상 진짜 에서에게 내릴 축복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아마 여호와의 능력으로는 단 한 명의 아들에게만 축복을 내릴 수 있었나 보다. 그러니 한 명이상의 자녀가 있는 사람은 여호와에게 축복을 빌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일찌감치 개종을 하는 게 어떨는지?

그런데 여기서 소위 권위 있다는 바이블해설가들의 참으로 한심스런 주장이 있다. 여호와가 야곱을 선택해서 모든 재산과 축복을 줬으니 형인 에서는 겸허히 여호와의 결정을 받아들여 동생인 야곱 밑에서 야곱을 섬기며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이삭에게 자신에게도 축복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교만하고 무례하고 나쁜 짓이라는 것이다. 장자로서 동생의 교묘한 속임수로 뺏긴 장자로서의 권리를 찾고 임종을 앞둔 아버지로부터 마지막 축복을 듣고 싶다는데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인가? 아버지 이삭은 축복을 해달라는 에서에게 영원히 동생 야곱의 종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죽어 가는 아버지에게 드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들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냥을 해온 에서가 그 사이 집안에서 온갖 치사한 짓을 다 동원하여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전 재산과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동생 야곱의 종으로 영원히 살아야 하나? 그게 진리고 정의고 도리고 겸손한 삶인가? 이런 에서가 기꺼이 야곱에게 굴복하지 않은 게 교만하다니, 도대체 교만의 뜻이나 알고 그따위 되먹지 않은 주둥이를 나불되는 건가? 세상의 아주 간단한 정의나 도리도 모르고 여호와라는 또라이를 내세워 얼토당토않게 에서를 나쁜 놈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로 교만하고 불쌍하리만치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남을 교만하다고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교만이나 어리석음을 먼저 돌아보기를 바란다. 아편을 끊듯이 바이블의 엉터리 주장들에 익숙해진 어리석음을 약간만 벗어나 보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교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에서를 교만하고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바이블 해설가들이여, 당신들이나 그 어리석음과 교만에서 벗어나고, 그 종교 같지도 않은 사악함 속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고 사람의 도리에 맞는 일을 하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늑대가 어미 양을 죽이고, 새끼 양마저 잡아먹으려고 어미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새끼 양들이 사는 집으로 간 동화책이 생각난다. 어쩜 이리도 닮았는지. 아마 이 동화책을 쓴 사람이 모세의 이 소설책을 보고 표절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모세처럼 나쁜 책을 쓸 순 없었겠지. 왜냐하면 현실은 야비하고 교활한 야곱이 잘살게 될 수도 있겠으나, 어린이에게 읽힐 동화책은 속임수를 쓰는 나쁜 늑대가 승리할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결국 하늘에서 썩은 동아줄이 내려와 속임수를 쓴 나쁜 늑대는 우물에 빠져 죽고 어린 양은 살았다는 결말을 내고 있다. 이런 동화책은 어린이가 읽기에 적당한 책이고, 교활하고 비겁한 속임수를 쓴 야곱을 정의의 사자인양 높이고 떠받드는 바이블 같은 소설책은 어린이가 안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늑대 얘기와 바이블을 다 읽은 어린이가 왜 결말이 다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야곱은 예수의 조상이고 여호와라는 또라이 신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늑대는 예수의 조상도 아니고 여호와도 믿지 않아서 똑같이 나쁜 짓을 해도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말할 것인가? 하지만 늑대로부터 목숨을 구한 어린 양들도 예수의 조상도 아니고 여호와를 잘 안 것도 아니다. 내가 볼 때는 늑대 이야기를 쓴 사람은 어린이에게 교훈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고, 모세는 무조건 직계 조상만 칭찬하다보니 앞뒤도 안 맞고 교훈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교활하고 비열한 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책을 읽고 자신이 야곱의 자손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오히려 모자란 모세의 주장에 넘어가 야곱을 두둔해서야 되겠나?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아무리 얘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기야 그래서 바이블을 옳다고 믿고 매주 한 번 씩 모여 잔인성을 키워 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을 배척하고 속이고 욕보이고, 심지어는 우리 조상인 단군을 닮은 동상을 만들어 놓으니 밤에 몰래가서 일일이 부수고 다니는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니겠지. 그것도 대부분 모가지를 잘라 놓는다니 그들의 잔인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참 너무 심하다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단군상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내 돈이 든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잔인성에 경악을 금치 못할 뿐이다. 내 기억에는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 마리아상이랑 예수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만약 누가 그걸 조금이라도 훼손했으면 아마 세상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대접을 하라고 당신들이 말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들이 단군 상 모가지를 부러뜨린 것처럼 예수상의 모가지라도 부러뜨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 날이 제삿날이 될 것이 틀림없다.

결국 속은 걸 안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었고 할 수 없이 야곱은 어머니인 리브가가 살던 동네인 하반에 있는 리브가의 오빠네 집으로 도망을 갔다고 바이블에 나와 있다. 결국 야곱은 외삼촌인 라반의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단지 마음만 먹은 건데 말이야. 아마 모세는 오백년 전 사람의 마음속을 읽는 능력이 있었나 보다. 물론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전 재산과 아버지로부터의 축복 전체를 야비한 동생에게 빼앗긴 에서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야곱은 외삼촌인 라반의 집엘 도착했는데, 이 라반이라는 사람도 교활하기가 야곱 못지않았던 사람이었다. 여기서부터 두 사람이 서로 속고 속이는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처음에는 라반의 승리인가 싶었으나, 결국은 눈먼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의 적수는 되지 못했나보다. 마지막 승리는 야곱의 것이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자. 라반의 집에 도착한 야곱은 첫눈에 라반의 작은 딸인 라헬에게 반하고 말았다. 당시 사촌과 결혼하는 일은 허다하게 행해졌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외삼촌인 라반에게 부탁을 했고 라반은 자신의 집에서 7년간 열심히 일을 해주면 라헬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라헬과 결혼할 꿈만 꾸며 야곱은 7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일을 했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밤에 라반은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에게 베일을 씌워 야곱의 신방에 넣어 주었다. 아마 언니인 레아는 야곱의 눈에는 미인으로 보이지 않았나보다. 아침에 자기가 동침한 아내가 자신이 그리던 라헬이 아니라 언니인 레아라는 걸 안 야곱은 화를 냈으나, 라반은 핑계거리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하반에는 언니 먼저 시집보내는 관습이 있다며 7년을 더 일을 해주면 라헬까지도 아내로 주겠다고 말했다. 형과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였던 야곱이 이번에는 외삼촌에게 교묘하게 속았던 것이다. 처음 시작은 라반의 승리였다. 아버지와 형을 속인 이런 야곱을 어머니인 리브가가 옹호하고 편애했고, 외삼촌이 조카를 이렇게 속였으니, 그 집안도 알만한 집안이다.

결국 야곱은 꼼짝없이 7년을 더 일해 주고 라헬을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그런 뒤엔 야곱은 일해 주는 대가를 요구했는데, 야곱이 요구한 것은 이러했다. 얼룩무늬가 있는 염소나 점박이 염소, 그리고 얼룩무늬나 점박이 양, 혹은 검은 양은 모두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얼룩무늬가 있는 염소나 검은 양이 어디 그리 흔한가? 라반은 그러자고 승낙을 했으나 이 또한 교활한 야곱에게 속은 것이니, 야곱은 얼룩무늬 염소와 검은 양을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은 이 방법을 이용하여, 튼튼한 염소나 양은 전부 자기 것으로 만들고 힘없고 비리한 것들만 라반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라반이 교활한 야곱에게 보기 좋게 속아 넘어 갔다. 결국 야곱은 수많은 양과 염소, 그리고 낙타와 노예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야곱은 두 아내와 아내의 노예들에게서 많은 자식을 두었다. 그중 라헬이 낳은 아들이 바로 요셉이었다. 외삼촌 밑에서 20년을 일하며 많은 재산을 모은 야곱은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고치고 두 아내와 여자노예, 그리고 11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형 에서가 사는 가나안으로 도망가기로 작정을 한다. 왜냐하면 야곱의 재산이 늘어남에 따라 외삼촌 라반이 자기를 보는 눈이 곱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전부 외삼촌인 라반 소유였던 가축과 재산이 어느 틈엔가 모두 교활한 야곱의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밤을 틈타 야곱은 많은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라반의 눈을 피해 도망을 간다. 더군다나 야곱은 라반이 가지고 있던 드라빔이라는 족장의 권위와 재산의 상속권을 표시한 문서마저 훔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빔은 라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야곱이 훔쳤다는 걸 눈치 챈 라반이 야곱을 저지하고 나섰다. 그는 야곱이 가져가려는 짐들을 철저히 조사했으나, 드라빔을 찾아 내지 못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야곱을 보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라헬이 멘스를 한다고 아버지인 라반에게 거짓말을 하고 이 드라빔을 깔고 앉아 무사히 훔쳐냈다고 하니, 야곱과 라헬은 라반에게 마지막 일격을 통렬하게 먹이고 유유히 도망을 갔던 것이다. 라반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의 딸들과 손자들에게 마지막 축복까지 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드라빔이 이들에게 왜 필요했는지를 모르겠다. 이는 라반이 족장으로서의 권위와 재산상속권을 나타낸 것인데 왜 사위와 딸이 작당을 하고, 자신들에겐 아무 필요도 없는 이 물건을 훔쳐냈는지, 이들의 심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만약 이로 인해 자신들이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얻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정아버지이자 장인이 가진 마지막 권위와 재산상속권을 훔쳐가는 이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사기꾼이라는 말로는 분명히 부족하다. 더군다나 야곱은 지금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덕으로 수많은 재산을 모아 야반도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세상의 아버지 여러분, 딸과 사위를 조심합시다. 하기야, 바이블에 나오는 기가 막히게 교활하고 욕심 많은 이들을 제외하고 이렇게 악랄하게 장인의 재산을 가로채는 사위는 세상에 드물 것이긴 하다.

외삼촌과의 속임수 대결에서 보기 좋은 승리를 한 야곱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가면서도 내심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자신이 행했던 못된 짓을 잊지는 않았었나 보다. 하지만 야곱의 걱정과는 달리 형 에서는 야곱을 동생으로서 반갑게 맞으며 잘 대해주었다. 이것만 봐도 처음부터 야곱이 야비하고 교활해서 둘 사이가 불화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둘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싸움질을 했다고 했는데, 아마 야곱이 나빠서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야곱은 자신이 저지른 못된 짓으로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으나 에서는 오히려 이런 동생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닐 수도 있다. 덜떨어진 모세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야곱이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갔다고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야곱은 처음부터 외삼촌 라반의 딸들과 재산이 탐이 나서 그 재산을 가로채려고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형 에서의 환대로 죽을 걱정을 면한 야곱은 숙곳이라는 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한편 야곱에게는 디나라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레아가 낳은 딸이었다. 그런데 숙곳의 히위족속 중 하몰의 아들인 추장 세겜이 디나의 아름다움을 보고 겁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정식으로 야곱에게 그 딸 디나를 아내로 주기를 청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이 살면서 대대로 자식들을 서로 혼인시키며 한 민족을 이루어 살자고 선의의 제안을 한다. 사실, 디나를 겁탈했다는 걸 전적으로 믿을 수만은 없다고 본다. 이곳 사람들은 남을 속이거나 해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야곱과 그 아들들, 즉 디나의 오빠들은 세겜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자신들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 딸들을 아내로 줄 수 없으니 모든 남자가 자신들처럼 할례를 받는다면 대대로 서로 혼인을 하여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세겜은 성 안의 모든 남자들에게 즉시 할례를 받게 했다. 하지만 우리의 야곱이 누구인가? 히위족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은 지 3일째 되는 날, 그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디나의 오빠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가서 하몰과 세겜을 포함한 성 안의 모든 남자를 죽여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 그리고 재산을 모두 노략질했다고 분명히 바이블에 쓰여 있다. 야곱은 이 일을 모르고 있었고 나중에 이 일을 저지른 두 아들에게 그런 못된 짓을 저질러 자기를 수치스럽게 하느냐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아버지 모르게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를 수 있으며, 모든 남자를 죽이고 여자들과 재산을 노략질한 아들들을 단지 자기를 수치스럽게 했다고 야단치는 것으로 그칠 수가 있을까? 물론 세겜이 딸 디나를 겁탈했다면 처음의 잘못은 분명히 세겜에게 있다. 그리고 그 죄 값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성 안의 모든 남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과 재산을 모두 노략질해도 좋다는 건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처럼 잔인할 수가 있지? 처음엔 겁탈을 했는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디나와 결혼을 원했고, 야곱의 말을 믿고 성 안 모든 남자들을 설득하여 할례를 받게 했는데, 이를 속이고 몸이 성치 않은 틈을 타 모두를 살해할 수가 있는가?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바이블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나는데, 유대인들은 항상 잔인하기가 짝이 없다. 바이블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싸우는 적들은, 즉 바이블에 나쁜 사람이라고 표현된 사람들 내지는 민족들은 단 한 번도 무작위로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항상 위대한 여호와의 보호를 받는, 실은 여호와의 잔인성을 배운 이놈들이 적들을 깡그리 죽이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야곱의 두 아들이 성 안의 모든 남자들을 멸절시키고 모든 여자들과 재산을 약탈했다는 걸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것도 아주 야비한 속임수를 써서 말이다. 이건 전쟁도 아니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기야 처음부터 야곱이라는 천하의 사기꾼을 믿은 히위족속 남자들이 어리석은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야곱이나 야곱의 자손들을 믿어서는 안 되겠다. 여호와를 조심하자. 여호와와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족속은 세상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잔인한 족속이다. 절대로 그들의 말을 믿지 말고 그들에게 속아 넘어 가지 말자.


그리고 그 이후, 형 에서가 가나안 땅을 떠나고 야곱이 그곳에 살게 되었는데, 바이블에는 그 이유를 두 집안이 다 같이 부유하여 함께 가축을 먹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가나안을 떠났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왜 에서가 아버지의 땅을 떠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야곱이 장자상속권을 샀으니 아버지가 살던 가나안은 자기의 땅이라고 우겨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에서는 가나안을 떠나 세일이라는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가계를 이루어 에돔족의 조상이 된다. 그리고 에돔족을 다스리는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게 된다. 바이블에 이런 부분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들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들이 이러하다.’ 그러면서 그 왕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창세기를 썼다고 주장하는 모세가 살던 시대만 해도,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은 없던 시대였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모세는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은 했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들이 나올 것을 예측했을까? 이를 두고 바이블 전문가라는 이상한 사람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얘기한다. 첫째는 모세가 미래를 예견하고 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소로운 얘기다. 이스라엘인들이 국가를 이루어 왕을 둘 것이라고 예견하기엔 그들의 존재나 힘이 너무 미미했었다. 더군다나 실제 역사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들이 있었던 건 참으로 짧은 시간뿐이었다. 거의 그런 세월은 존재하지도 않을 뻔했다는 것이다. 모세 같은 인간이 예견해서 썼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두 번째 주장은 이스라엘 왕정이후 누군가가 가필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 이 사람 말이 맞네. 바이블을 연구한다는 사람 중에도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그래,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후세에 누군가가 가필을 했겠지. 이렇게 정상적인 예측을 해야지. 그걸 모세가 미리 예견을 했니, 여호와의 계시가 있었니 이따위 엉터리 주장일랑 제발 이제 그만 하자.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처럼, 바이블이라는 엉터리 소설책도 언제나 누구나 가필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예언서는 항상 애매한 말들로 채워져 있어서,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든 끼워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억지로 끼워 맞춰진 예언서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건 결코 아닌 것이다. 내 눈엔 그런 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혹시 바이블이 예언서로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이는 언제나 가필될 수 있는 엉터리 책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지나간 일 중에 몇 가지만 가필하면 어떤 엉터리 책도 훌륭한 예언서로 둔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바이블이라는 엉터리 책은 어찌도 이렇게 하나도 제대로 쓰여진 곳이 없나 싶을 정도로 한심하긴 하다. 이 부분을 누군가가 가필했다는 얘기는 단지 나만이 하는 얘기가 아니다. 바이블 신봉자 중에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다행히 좀 덜 중독된 환자들인 모양이다.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바이블이라는 엉터리 소설책은 적어도 가필은 된 것이다. 나는 가필정도가 아니라 온통 허구로 가득 찬 엉터리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엉터리라는 게 증명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지 그 부분만이 가필된 것이라고 바이블 신봉자들은 말한다.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꾼 야곱은 총 12명의 아들을 뒀는데, 레아가 6명의 아들을, 여자노예들이 4명의 아들을, 그리고 라헬이 요셉을 낳았었다. 그리고 나중에 라헬이 두 번째이자 막내인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베냐민이었다. 이들이 나중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게 되는지라 그 이름과 뜻을 간략히 소개한다. 1. 르우벤(보라, 이들이라) 2. 시므온(들음) 3. 레위(연합됨) 4. 유다(찬양함) 5. 단(신원) 6. 납달리(나의 씨름) 7. 갓(행운) 8. 아셀(행복) 9. 잇사갈(보생) 10. 스불론(거주함) 11. 요셉(여호와가 더함) 12.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야곱(이스라엘)은 요셉을 제일 귀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하나 있는데, 이 집안은 왜 장자가 아닌 아들을 편애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스라엘이 요셉을 편애해서 응석받이로 키웠는데 이로 말미암아 또 하나의 사건이 생기고 만다. 어릴 적부터 요셉은 아버지에게 형들의 험담을 늘어놓기를 자주했고, 아버지 이스라엘도 이런 요셉을 편애하여 다른 아들과는 달리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주곤 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나 어머니는 요셉을 싫어했다. 어느 날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형들에게 얘기해 주었는데 내용인즉 이러했다. 모든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 형들이 묶은 곡식 단들이 자신이 묶은 곡식 단에게 절을 하듯이 고개를 숙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꿈은 태양과 달과 11개의 별이 자신을 숭배했다는 것이다. 두 꿈 모두 모든 형제들이 요셉에게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얘기이다. 심지어는 해와 달과 11개의 별이라면, 형제뿐이 아니라 부모까지도 포함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형들을 매우 불쾌하고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혼내주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모두들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요셉이 그곳에 나타났다. 형들은 작당을 하고 요셉을 죽여 버리려고 했으나, 불쌍한 생각이 들어 죽이지는 않고 지나가던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 요셉의 옷에 염소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보여 드렸다. 이스라엘(야곱)은 요셉이 들짐승들에게 잡아 먹혔다고 생각하고 무척 슬퍼했다. 그 후 요셉을 산 이스마엘 상인은 다시 요셉을 이집트 파라오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아 넘겼다. 누군가 TV 프로그램에서 유대인들이 자식 교육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얘기하면서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들었다. 택도 없는 소리다. 적어도 아담에서 예수로 이어지는 이 집안사람들만 봐서는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그렇게 자식 교육을 잘해서, 형제간에 죽이고, 싸우고, 속이고, 저주하고, 형들을 밟고 올라서고,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기고, 이딴 짓을 하는 건가? 절대로 애들을 이렇게 키우지는 마시라. 그저 착하게 형제간에 우애 있게 키우시라. 아이들에게 절대로 이 집안 아이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지. 추수를 끝내고 형은 동생을 생각해서 자신의 볏단을 동생에게 나르고 동생은 형에게 자신의 볏단을 나르는,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는 우리네 착하고 순박한 형제로 키우시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비록 여호와라는 정신 나간 놈은 좀 보기에 안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사람 보기에는 훨씬 더 좋은 모습이고 진정한 형제애인 것이다. 절대로 바이블에 나오는 인간들을 닮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바이블에 나오는 인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포악한 인간들 중에 하나이다. 형들을 발가락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은 요셉과 이런 요셉을 팔아넘긴 형제들 열두 명이 나중의 이스라엘 12지파가 되는 것이다. 이 중의 하나인 유다의 후손으로 우리의 슈퍼스타 예수가 태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요셉의 4남이자 예수의 직계조상이 되는 유다의 얘기를 해보자. 유다는 가나안 사람인 수아의 딸과 결혼하여 장남 엘을 낳았다. 그리고 엘은 다말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그런데 여호와가 엘을 죽여 버렸다. 왜? 여호와는 왜 엘을 죽였나? 그냥. 그냥 죽였다. 항상 그런 식이지만 바이블에는 그냥 엘이 여호와 보기에 안 좋아서 죽였다고 되어 있다. 이 여호와라는 변태는 어찌 그리 보기에 안 좋은 것도 많은지.. 어쨌든 장남인 엘이 자식이 없이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인 오난에게 형수인 다말과 잠자리를 하여 아들을 낳아 엘의 대를 잇도록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난은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잇도록 해주고 싶지 않아서 형수와 성관계를 하면서 땅으로 사정을 했다고 바이블에 되어 있다. 왜 오난이 형의 대를 잇도록 하는 걸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아들을 죽은 형에게 준다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형수와 잠자리를 한다는 게 싫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그는 분명히 땅에다가 사정을 했으니까. 여하튼 이 일이 또 여호와 보기에 안 좋아서 여호와는 오난마저 죽여 버렸다. 그래, 잘 한다. 다 죽여라, 다 죽여. 원래 여호와라는 놈은 제가 보기에 안 좋으면 다 죽이는 습성이 있지. 한때는 노아라는 변태새끼 하나 남기고 인류와 지상의 동식물 모두를 절멸시킨 적도 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놈을 좋다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다. 하기사 이런 놈을 따르고 이런 놈에게서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악독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큰 아들과 둘째마저 죽어 나가자 유다는 다말에게 친정에 잠시 가 있도록 했다. 이 때 유다에게는 셀라라는 아직 어린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유다는 어린 아들 셀라가 장성하는 대로 다말에게 자식을 낳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유다는 왜 다말을 친정에 가 있도록 했는가? 바이블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셀라가 장성하는 대로 다말에게 자식을 낳도록 해주기는 하겠는데, 셀라가 다말과 같이 있다가는 셀라마저 죽을까봐 염려된다고 했다. 분명히 유다가 그렇게 말했다. 셀라마저 죽을까봐 염려된다고. 아버지가 아무런 죄 없는 아들이 죽어 나갈까봐 이렇게 가슴 조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여호와라는 변덕스럽고 괴팍한 놈의 눈깔에 자기 아들이 혹시나 안 좋게 보일까봐서 였다. 안 좋게 보이면 또 죽일 게 뻔 하니까.

그리고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가 죽고 유다는 딤나라는 곳으로 양털을 깍으러 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다말이 얼굴을 가리고 창녀처럼 꾸미고 유다에게 나아갔다. 유다는 그녀가 창녀인 줄 알고 잠자리를 요구했다. 그러자 다말은 창녀인 양 행세하며 값으로 염소를 요구했으며, 염소를 주겠다는 증표로 도장과, 도장 끈과 지팡이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유다는 이 세 가지 물건을 주고 며느리인 다말과 잠자리를 했다. 물론 유다는 이 여인이 자신의 며느리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다만 다말은 자신이 시아버지와 잠자리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해서 대를 이을 자식을 얻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유다는 약속대로 염소를 주려고 그 여인을 찾았으나 딤나에는 그런 창녀가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유다는 도장과 도장 끈, 그리고 지팡이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석 달 후에 과부인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 유다에게 알려졌다. 유다는 노발대발하여 다말을 끌어내어 불사르려고 했다. 여하튼 이 족속들은 잔인하기가 하나같다. 물론 과부인 다말이 임신을 한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불살라 죽일 만큼 잔인할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는 1400년 후에 마리아라는 처녀가 혼인도 하지 않은 몸으로 임신을 했을 때, 성령이 임했니, 기적이 일어났니 하며 떠들어댄 일과 너무나 비교되는 장면이다. 바이블 신봉자들은 마리아의 임신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이며, 가장 위대한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 씁쓸한 일이다.

쌓아놓은 장작더미로 끌려 나가는 다말이 도장과 도장 끈, 그리고 지팡이를 내어놓으며 이 물건 주인이 자기를 임신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유다는 이 모든 게 자신이 좀 더 일찍 아들 셀라에게 다말을 임신하게 만들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다말을 풀어 주었다. 바이블 신봉자들은 이 장면에서 예수의 조상인 유다의 너그러움을 보라며 길길이 날뛴다. 경사 났다, 경사 났어. 이렇게 인자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인류역사상 또 있을까? 좋기도 하겠다, 좋기도 하겠어. 예수의 조상인 유다가 그렇게 너그러워서 말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 한심하지 않은가? 독자 여러분도 유다가 너그럽게 보이시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처음에 과부인 자신의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안 유다는 어떻게 했나? 불살라 죽여 버리겠다고 장작더미를 쌓았다. 그러다가 정작 그 임신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게 밝혀지자 태도를 바꾼다. 불살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다가 180도 돌변하여 다말을 빨리 임신하게 해 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책하고 모든 일을 덮어 버린다. 자신이 며느리와 잠자리를 하여 과부 며느리를 임신하게 했다는 사실은 축소, 은폐해 버리는 것이다. 다말을 빨리 임신하게 해 주지 못한 자신의 잘못은 며느리를 불사르려 한 때나, 너그러움을 보이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임신한 며느리의 상대가 누군지 몰랐을 때는,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며느리를 불살라 죽이려고 하다가, 며느리를 임신시킨 나쁜 놈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며느리가 임신하는 건 당연하고 단지 빨리 임신하게 해 주지 못한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임신한 일이나 임신시킨 일에 대해서는 그 잘잘못을 덮어 버린다. 이게 너그러운 일인가? 하기사 바이블에 나오는 인간들 중에 이만큼이라도 너그러움이나 인간다움을 보인 인물은 눈을 씻고 봐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 바이블에서 이만큼이나마 너그러운 놈을 찾았으니 좋아서 날뛰는 것도 이해는 간다.

다말은 마침내 쌍둥이를 낳았는데 형이 베레스고 동생이 세라이다. 이 쌍둥이 중 형인 베레스가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유대인 왕들의 조상이니 예수의 조상도 되는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교접하여 낳은 아이가 말이다. 예수는 훌륭한 조상들을 참 많이도 뒀다.


한편 이집트 관리에게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여기서 또 사고를 친다. 노예로서 주인으로 모시고 있던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강간미수죄로 구속된 것이다. 바이블의 얘기를 들어보자. 요셉은 어머니인 라헬의 피를 받아 대단한 미남이었고,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수차례에 걸쳐서 유혹을 했다. 보디발 아내의 끈질긴 유혹을 요셉은 끝내 뿌리쳤고 마침내 욕정을 이기지 못한 보디발의 아내가 혼자 일하고 있는 요셉에게 다가가 잠자리를 갖자고 강압했고 이 과정에서 요셉은 윗저고리를 벗어놓고 도망을 쳤다. 보디발의 아내는 화가 나서 사람들을 불러 요셉이 자기를 추행하려 했으나 자기가 소리를 질러 요셉은 윗저고리를 벗어 놓고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물론 남편인 보디발에게도 이와 같이 말했고 화가 난 보디발은 요셉을 감옥에 넣어 버렸다. 글쎄, 둘 만이 있던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정말로 보디발의 아내가 그랬는지 아니면 요셉이 그랬는지. 어쨌든 이집트 법정은 보디발 아내의 손을 들어주고 요셉은 강간미수죄로 감옥에 들어갔다. 바이블에는 요셉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되어 있고 난 잘 모르겠다. 단지 확실한 건 이집트 법정은 요셉을 강간미수죄로 감옥에 넣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요셉은 이 감옥에서 평생의 은인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파라오의 음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던 사람과 음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던 사람, 지금 같으면 왕의 주방장 쯤 되는 사람들이 같은 감옥에 들어오게 된다. 요셉과 같은 감옥에 있던 이 두 사람의 파라오 신하들은 꿈을 꾸게 되고, 어릴 적부터 꿈 해몽을 하며 꿈 가지고 놀던 요셉이 이들에게 꿈 해몽을 해주게 된다. 요셉은 꿈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음료를 맡은 사람은 곧 파라오의 부름을 받아 다시 복직할 것이고, 음식을 맡은 자는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운 좋게도 요셉의 해몽대로 되었다. 한 사람은 사형을 당했고 한 사람은 복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복직을 한 파라오의 부하는 요셉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이번에는 파라오가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해몽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때 파라오의 음료를 맡은 사람이 요셉의 꿈 해몽이 생각나서 파라오에게 요셉에게 꿈 해몽을 시켜볼 것을 청했다. 파라오에게 불려나온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듣고 앞으로 이집트에 7년간 풍년이 들 것이며 그 후 7년간 흉년이 들 것이니, 풍년이 드는 7년간 미리 감독관을 임명하여 식량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파라오는 당장에 요셉에게 그 감독관 일을 맡겨 나라 살림을 총괄하게 했다. 강간미수범에서 졸지에 지금의 재무장관 쯤으로 출세를 한 것이다. 세속적인 출세를 과히 좋게 보지 않는다는 바이블 맹신자들이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 그리고 요셉의 출세는 또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여호와의 바다 같은 사랑 덕분이라고 하니 참 기가 막힌 일이다. 내가 보기는 여호와의 바다 같은 사랑 덕분이 아니라, 대부분의 비열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요셉은 감옥에 있는 동안에 권력자인 집사장과 잘 사귀었고 꿈 해몽을 그럴듯하게 잘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꿈 해몽을 잘 하게 된 게 여호와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면, 지금도 여호와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참 많다. 꿈 해몽 책을 쓸 정도로 그쪽에 특기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여호와라는 신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여호와라는 신의 존재조차 모르던 우리 선조들 중에서도 꿈 해몽을 잘 하던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그리고 그로 인해 출세를 하는 사람도 많고.


파라오의 꿈과 요셉의 해몽대로 7년간 풍년이 들고 그 후 7년간 흉년이 들었다. 그동안 요셉은 파라오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있었다. 이때는 이집트뿐만이 아니라 인근 전 지역이 흉년이 들어 곡식을 구하려고 난리를 칠 정도였다. 요셉의 아버지와 형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도 예외는 아니어서 식량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집트로 가서 식량을 사오도록 시켰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막내인 베냐민을 제외한, 야곱의 아들들, 요셉의 형제들은 모두 다 같이 식량을 사러 이집트로 갔다. 식량을 사러간 형들이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 앞에 나아가 엎드려 절을 했다. 당시 이집트에서만 유일하게 넉넉한 식량을 갖고 있었고 주위 모든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식량을 사려고 이집트를 방문했는데, 그들 모두가 총리인 요셉 앞에 나아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셉의 형들은 요셉 앞에서 엎드려 절을 했다고 되어 있다. 이때는 형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아 넘긴지 20년이 지났을 때였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고 요셉은 형들을 알아 봤다고 한다. 형들을 알아본 요셉은 형들을 시험한답시고 첩자로 몰아붙였다. 요셉은 첩자가 아니라 단지 식량을 사러왔다고 말하는 형들을 핍박하며, 첩자의 누명을 벗고 싶으면 그들 중 한 명이 남고 나머지는 식량을 가지고 돌아가 막내인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할 수없이 둘째인 시므온을 남기고 식량을 사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이 말을 전하고 막내인 베냐민을 데려 가고자 했으나, 야곱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 요셉은 들짐승에게 잃고, 시므온도 없어 졌는데, 또 베냐민을 잃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다 이집트에서 사 온 식량도 바닥이 나고 말았다. 이젠 베냐민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식량을 사올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유다를 비롯한 모든 형제들은 막내 베냐민을 무사히 데리고 오겠다고 맹세를 하고 베냐민을 대동하여 이집트로 길을 떠났다.

베냐민을 포함한 모든 형제들을 만난 요셉은 그때까지 옥에 가두어 두었던 시므온을 석방했다. 그리고 모든 형제들의 자루에 충분히 담을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팔고 막내 베냐민의 자루 속에는 은으로 만든 자신의 컵 하나를 몰래 집어넣도록 자신의 하인들에게 시켰다. 아무 것도 모르는 형제들은 식량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향해 길을 떠났으나 곧바로 요셉의 하인들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그리고는 은컵을 훔쳐 가고 있다고 그들을 다그쳤고, 실제 도둑질을 하지 않은 형제들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들은 만일 은컵이 발견되면 훔친 사람은 죽이고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요셉의 노예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차례대로 식량 자루를 조사해 나가자 막내인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컵이 나왔다. 모든 형제들은 노예가 되겠다고 청했으나 요셉은 은컵이 발견된 베냐민만 노예가 되면 된다고 말했다. 요셉은 이번에도 형들이 동생인 베냐민을 버릴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라고 바이블은 말하고 있다. 유다는 아버지인 야곱이 얼마나 막내인 베냐민을 사랑하는지를 설명하고 또 자신이 아버지께 베냐민을 책임지고 데려 오겠다고 맹세했다는 것도 말하고 자신이 베냐민 대신 노예로 남겠다고 했다. 요셉은 동생을 버리지 않는 형들을 보고 마침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요셉은 이제 형들이 더 이상 동생을 버리는 나쁜 형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럴싸한 얘기다.

하지만 여기에서 요셉이 잘못 생각한 게 하나 있었다. 물론 모세도 모르고 지나친 부분이다. 형들이 버린 요셉과 베냐민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었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하며 모든 형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고 자신을 주인으로 받들 거라고 떠벌렸었다. 비록 그런 생각이 들고 나중에 자신이 형들을 도울 수 있더라도 항상 겸손하고 공손하게 행해야지 이렇게 천방지축 떠벌리는 건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반면 베냐민은 그런 일이 없었다. 싸가지 없는 요셉과는 달리 그저 형들을 잘 따르는 착한 동생이었던 것이다. 형들 입장에선 형들을 밟고 올라서겠다는 건방진 동생인 요셉은 노예로 팔아 버렸으나, 착한 베냐민은 그렇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셉은 이렇게 형들을 시험하기에 앞서 떠벌리기 좋아하고 싸가지 없이 행동한 자신의 잘못부터 뉘우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인데, 그는 건방지게도 형들을 시험이나 하고 앉아 있었으니 그야말로 교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형제간이 아닌 남에게 도움을 줄 때도 은밀하고 겸허하게 해야 하거늘, 하물며 형님들에게야 말해 무엇하리요.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야곱)을 비롯한 전 가족이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로 이주를 했고 파라오는 고센(람세스라고도 불림)이라는 이집트에서 제일 좋은 지역의 땅을 그들에게 내주었다. 이로부터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약 400년간을 이집트에서 살게 된다. 모세가 이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도망)할 때까지 말이다. 처음에 70명 정도였던 이들의 수가 모세 시절에는 수백만으로 불어나게 된다.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 요셉이 이집트 사람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가가 잠시 나온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집트와 가나안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 게 없었다. 단지 파라오의 명령을 받은 요셉만이 식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돈을 받고 식량을 팔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이집트와 가나안에는 돈 가진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다음에는 그는 가축을 받고 식량을 팔았고, 가축마저 떨어지자 땅을 받고 식량을 내주었다. 결국 이집트 모든 땅이 파라오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말하자면 일반 백성들은 돈도, 가축도, 농사지을 땅도 모두 빼앗긴 것이다. 모든 게 파라오의 소유가 되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 털어 백성들의 전 재산을 빼앗아 차지한 일은 이게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총리 하나 잘못 둬가지고 파라오와 요셉 자신을 제외한 전부가 거지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창세기의 내용이다. 어떠신가, 재미있으신가? 모든 게 거짓말 같은가?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으신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바이블을 꺼내 읽어보시라. 창세기 하나 정도야 금방 읽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