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톤의 죽음을 빙자해서 읽는 그리스신화와 세상 이야기 8

ama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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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많은 책들이나 글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는 게 있다. 이 글도 그렇다. 보통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는 글’ 정도의 의미로 프롤로그를 쓰고, ‘끝맺음 말’ 정도의 의미로 에필로그를 쓴다. 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는 말의 어원이 된 그리스의 두 신이 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가 그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생각하는 자’ 내지는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고,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 둘은 형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형인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을 하니 똑똑한 신이다.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띨하고 늘 사고를 친다. 아마도 그리스 신중에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일을 많이 하고 늘 인간의 편이었던 신 하나를 꽂으라면 많은 사람이 아마 이 프로메테우스를 들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을 만든 신도 바로 프로메테우스이다.


27. 그리스신화의 시작


모든 신화에는 세상의 시작이 있다. 유대신화에는 태초에 여호와만 있었다. 그가 세상만물을 다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떻게? 그냥 말로 만들어 낸다. 뭐가 있으라 하면 만들어지고, 뭐가 있으라 하면 만들어진다. 그리스에서도 비슷하지만, 태초에 뭔가가 있었던 것은 같지만, 나머지는 유대신화 보다는 조금 더 과학적이다. 그리스신화에서는 태초에 가이아가 있었다.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다.

내가 그리스신화가 유대신화보다 조금 더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호와와 가이아의 차이이다. 여호와는 남자이고 가이아는 여자이다. 여호와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라고 요즘 와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여호와는 남성이다. 그래서 여호와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가. 자, 만약에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이 세상을 만들어 냈다면, 그건 남자일까 여자일까를 생각해보자.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닌가. 나는 당연히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대민족은 지나친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신화에서 마저 이런 오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세상에 원래 있었던 존재는 여자라고 보는 편이 좀 더 과학적이다. 그리고 세상은 원래 모계사회였다. 당연히 여자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그리스가 좀 더 과학적이라고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여호와는 말로 세상을 창조하지만, 가이아는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통해서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신화니까 그 과학성을 따질 수는 없겠으나, 말로 세상을 만든다는 것보다는 그래도 우라노스가 가이아를 자빠뜨리고 하는 게 조금은 더 과학적이지 않은가?


여하튼, 원래 존재했었던 이 태초의 여신,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무성생식을 통하여 여러 가지를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것이 우라노스(Uranos)이다. 그는 하늘을 대표하는 최초의 신이다. 우라노스는 남신이다.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결합하여 또 여러 신을 만들어낸다. 크로노스(chronos)와 레아(Rhea)를 비롯한 티탄(Titan)신족들이다. 티탄신족도 12명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몸집이 아주 거대했다. 거인 신인 것이다. 우라노스는 엄마이자 아내인 가이아를 자빠뜨려서 이 티탄신족을 낳은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만 낳게 된다. 눈이 이마 중앙에 하나만 있는 귀클롭스(Cyclops), 팔과 손이 100개 달린 헤카톤케이레스(Hekatonkheires). 우라노스는 이 괴물들을 무한지옥인 타르타로스(Tartarus)에 가두어 버린다. 자신이 낳은 자식들이 무한지옥에 갇히니 엄마인 가이아가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녀는 티탄신족을 소집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남편인 우라노스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한다. 막내인 크로노스가 총대를 맸다.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버린다. 거세를 한 것이다. 그 잘려나간 남근의 흐른 피에서 생겨난 것이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이다.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자식인 셈이니, 촌수를 따지면 우라노스의 손자인 제우스의 고모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크로노스가 대빵이 되었다. 크로노스는 누이인 레아와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는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자신이 낳은 자식에 의해서 죽는다는 가이아의 말을 듣고는 레아가 아이를 낳는 족족 통째로 삼켜버린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레아가 제우스를 낳았다. 레아는 이번만은 자식을 살리겠다고 생각하고 신생아 제우스를 크레타 섬으로 보내 님프들로 하여금 몰래 기르게 하고는 크로노스에게는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주었다. 크로노스는 다른 자식들을 그랬듯이 이 돌덩이를 제우스인줄 알고 삼켰다. 제우스가 보내지고 자라난 곳이어서 이 크레타 섬이 제우스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제우스가 장성하여 가이아와 레아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전쟁을 벌인다. 먼저 제우스는 약을 먹여 크로노스가 삼켰던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토해내게 만드는데, 이때 토해냈던 제우스의 형제자매들이 포세이돈, 하데스, 데메테르. 헤스티아 그리고 헤라이다. 원래는 제우스가 막내였는데, 제우스는 크레타 섬에서 자랐고,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자라지를 못해서 결국 제우스가 제일 두목이 된 것이다. 제우스와 형제자매들은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다른 티탄족들과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제우스와 형제자매들이 승리하여 마침내 세상의 주인이 된 것이다. 티탄신족들은 타르타로스에 갇혔다.

크로노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을 뜻한다. 연대기라는 뜻의 크로니컬(Chronicle)은 이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크로노스가 제우스에 패해 사라진 것은,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소멸한다는 철학적인 뜻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쟁에서 이긴 제우스와 형제자매들은 세상을 나누어 다스렸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그리고 테메테르는 대지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지금의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28.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와 크로노스가 전쟁을 할 때, 에피메테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물었다.

“어느 쪽이 이길까? 이기는 쪽에 붙어야지.”

그러자 프로메테우스가 대답했다.

“당연히 제우스가 이겨. 우리는 제우스 편에 서야 돼.”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크로노스의 형들이었다. 자신들도 티탄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두 신은 제우스 편을 들고, 나머지 모든 티탄신들은 크로노스 편에 섰다. 그리고 전쟁은 ‘미리 내다보는 자’, 프로메테우스가 예언한대로 제우스의 승리로 끝났다. 티탄족 모두는 무한지옥 타르타로스에 갇혔지만,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만은 제우스와 함께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싫어한다. 그의 지혜를 싫어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맡겨진 일은, 세상 만물을 다스릴, 신들을 닮은 존재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심혈을 기울여 인간을 만들었다. 진흙을 곱게 빚어 신들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고, 생명력을 불어 넣으려는 순간에 아테나가 나비 한 마리를 날려 보냈고 그 나비가 인간의 코로 들어가 영혼이 되었다고 한다.

앞서 프쉬케 이야기를 할 때에, 프쉬케가 ‘영혼’도 뜻하지만 ‘나비’도 뜻한다고 했었던 걸 기억하시나? 이 이유 때문에 원래 ‘나비’를 뜻하던 프쉬케가 ‘영혼’까지 뜻하게 된 것이다. 에로스와 프쉬케의 사랑이야기도 그렇지만, 날개 달린 장난꾸러기 사랑의 신 에로스와 나비 한 마리와의 사랑이야기도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이렇게 인간을 만들어 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지배할 존재들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걸을 필요가 없어.”

그리하여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을 만든 프로메테우스는 자기가 직접 만들어서 정을 느낀 건지는 몰라도 여러 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크게 3가지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소고기 사건이다. 사람들이 소를 잡아 제우스에게 바치고 있었다. 제우스는 고기와 기름은 다 차지하고 뼈와 가죽만 사람들에게 내렸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가 꾀를 내어 고기는 가죽으로 감싸고, 뼈는 기름으로 감싸서 제우스로 하여금 하나를 고르게 했다. 제우스는 당연히 먹음직스러운 기름으로 싸여진 것을 골랐다. 결국 고기가 사람들 차지가 된 것이다. 제우스는 화가 났으나 자신의 손으로 고른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삐치기는 했다.

두 번째는 제우스가 홍수를 일으켰을 때이다.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유대신화에서도 홍수가 있었고 중국에서도 홍수가 있었듯이 그리스에서도 홍수가 있었다. 유대신화에서와 비슷하게 이 홍수는 제우스가 당시 사람들의 선하지 못함을 벌주려고 일으킨 것이다. 유대신화에서는 홍수를 일으키기 전에 노아를 선택하여 인류를 보전하였는데, 제우스는 미처 그런 조처를 취하지를 못했다. 그냥 홍수를 일으켜 세상 모든 생물을 멸절시켜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가 홍수를 일으킬 것을 미리 예상한 프로메테우스가 데우칼리온과 퓌라에게 큰 배를 만들게 하여 홍수에 대비하게 한다. 유대신화의 노아이야기는 이 데우칼리온 이야기를 베낀 것이다. 데우칼리온은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고, 그의 아내 퓌라는 에피메테우스의 딸이었다.

홍수에서 살아남은 이들 부부는 지상에 있는 돌멩이로 새로운 인간들을 만들어 내어 세상에 번창하게 하였다. 프로메테우스가 미리 데우칼리온과 퓌라에게 홍수에 대비케 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지만, 역시 제우스는 삐쳤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사건이 생긴다. 당시 에피메테우스에게 주어진 임무가 하나 있었다. 세상 모든 동물들에게 각각 그에 걸 맞는 선물을 하나씩 주는 것이었다. 에피메테우스는 신이 나서 일을 처리했다. 거북이게는 딱딱한 등껍질을 주었고, 사자에게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주었고, 코끼리에게는 긴 코를 주었고, 기린에게는 긴 목을 주었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선물을 나누어 주다보니 정작 인간에게는 줄 선물이 남아 있지를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는’ 띨한 에피메테우스가 사고를 친 것이다. 그는 형인 프로메테우스에게 달려갔다.

“형, 큰일 났어. 내가 동물들에게 선물을 마구 나누어 주다보니 정작 인간에게 줄 선물이 없어. 어떡하면 좋지?”

프로메테우스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천상으로 올라가 불을 훔쳐 내어 인간에게 주었다. 제우스의 벼락에서 훔쳤다는 설도 있고, 아폴론의 태양마차에서 훔쳤다는 설도 있고, 아테나의 이륜마차에서 훔쳤다는 설도 있고, 헤스티아의 부뚜막에서 훔쳤다는 설도 있지만, 여하튼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덕분에 인간은 추위에서 해방되었고,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광물을 녹여 연장과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신들처럼 지혜를 갖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제우스가 많이 삐쳤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던 프로메테우스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다가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쇠사슬로 매달았다. 그리고 독수리로 하여금 그의 간을 파먹게 했다. 다 파먹으면 새로운 간이 생겨나고 다시 독수리가 그 간을 파먹는다. 영원히 고통에서 해방될 수가 없게 한 것이다.

인간을 만들고, 인간을 위해 제우스와 싸워준 프로메테우스는 그렇게 코카서스 산정에서 영원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친구, 프로메테우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29.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


자, 이제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나온다. 프로메테우스가 잡혀 가기 전에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마지막 말을 하나 남겼다.

“제우스는 음흉한 자이다. 절대 그를 믿으면 안되고, 그가 주는 선물은 아무 것도 받지를 말아야한다. 알겠느냐?”

“알았어, 형. 걱정 마.”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다가 코카서스 산정에 묶어버렸지만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인간에게도 벌을 내리기로 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갔다. 그리고 인간 여자를 만들게 했다.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명령대로 인간 여자를 만들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으니 얼마나 잘 만들었겠나. 기가 막히게 예뻤다. 박근혜누나가, 대가리가 나쁘고 깜빡깜빡 한다고 형광등 백 개를 켠 듯한 아우라가 있다고 누군가가 씹었는데(?), 이 여자는 서치라이트 백 개를 켠 듯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제우스는 여러 신들을 불러 이 여자에게 선물을 하나씩 하게 했다. 아테나는 지혜와 기술을 주었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남자 간장을 녹이는 교태와 한숨을 주었고, 헤르메스는 누구라도 꼬실 수 있는 말솜씨와 교활함을 주었다. 그리고 이 여자를 판도라라고 이름 지었다. ‘모든 선물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pan은 all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우스 자신의 선물로 상자 하나를 주었다.

“이게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이 상자는 절대로 열어보면 안 된다, 아가야.”

그리고 제우스는 판도라를 데리고 에피메테우스에게 갔다.

“이 여자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데리고 살래?”

우리의 철없는 에피메테우스, 어떻게 대답했겠는가? 그는 형의 부탁을 깡그리 잊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고 이게 웬 떡이냐. 감사합니다, 제우스 대신이시여.”

그리고 둘은 결혼을 하여 살았다.


그런데 판도라에게 문제가 생겼다.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어보고 싶어 죽겠는 거라. 원래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거잖아.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상자 생각만 났다. 밥 먹을 때도, 똥 눌 때도 상자를 꼭 껴안고 있었다나 어쨌다나. 수없이 만져보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서 무엇이 나왔나? 그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쟁, 기아, 질병, 원한, 복수, 질투 등등. 그리고 죽음. 판도라는 기겁을 하여 얼른 상자를 다시 닫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 모든 악들이 이미 다 세상으로 퍼져나가 버린 뒤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희망’이라는 놈만은 상자에 남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 희망만은 버리면 안 되고, 이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어떤 역경이나 악에 대항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구라를 푸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는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이 판도라의 상자가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라, 에피메테우스가 인간이나 세상에 이롭지 못한 온갖 ‘악’들을 쓸어 모아다가 상자에 가두어 두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자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가 열어버린 것이고 말이다. 일을 저질러 놓고 ‘생각은 늦게 하는’ 에피메테우스가 과연 이처럼 치밀해 보이는 일을 했을지는 좀 의문이라 나는 개인적으로 제우스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세상 모든 악이 들어 있었고,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순간 나머지 악들은 상자에서 나와 세상에 퍼지고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고 하는데, 애초에 왜 희망이 다른 악들과 함께 그 상자 속에 있었던 것인가 말이다. 이 의문은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 모두에 해당된다. 제우스가 판도라를 통해 인간을 벌주려고 만든 ‘모든 악’에 희망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고, 에피메테우스가 인간이나 세상에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든 악’들에도 역시 이 희망이라는 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희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라면 말이 안 된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이야기를 완전히 반대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제우스가 인간이나 세상에 이로운 온갖 좋은 것들을 박스에 넣어서 판도라에게 선물했다는 것이다. 즉 ‘악’과는 반대되는 것들, 즉, 불사, 행복, 무병, 공감, 사랑, 등등의 온갖 ‘선’들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판도라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열어버려 그 안에 있던 온갖 ‘선’들이 다 날아가 버리고, 그나마 ‘희망’이 남았다는 것이다. 왜 ‘희망’이라는 ‘선’이 ‘악’들과 같이 판도라의 박스에 들어 있었던가를 설명하려다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첫 번째 이야기에 아무런 오류도 없다고 생각한다. ‘희망’은 다른 모든 ‘악’들과 같이 상자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과연 희망이라는 것이 좋은 것인가? 희망이 ‘선인가?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헛된 희망만큼 악한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악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보라. 애들이 이유도 모르고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일자리 지켜달라고 하늘 높이 솟은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대학 등록금은 이렇게 올라 졸업을 하자마자 빚더미에 올라앉고 일자리는 이렇게도 없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노인네들이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학교를 못 가고 있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애들이 학교에서는 자고 학원에나 가야 공부를 하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아빠는 회사 다니고 엄마는 애 학원비 벌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하고 있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애들이 대학 나와 일자리가 없어 시간당 4천원 짜리 알바를 3년째 하고 있는데,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멀쩡한 사람 증거까지 조작하여 간첩으로 몰아놓고는,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제발 좀 먹고살게 해 달라고 거리에 나선 농민들에게 물대포를 쏘아 놓고는,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했더니 듣기 싫다고 역사책까지 바꾸겠다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담뱃값은 올리고 법인세는 내리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대한민국 강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전력이 넘쳐 나는데 원전을 지으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증세 없는 복지하겠다면서 복지 없는 증세만 하고 있으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 자살로 죽어 나가는 나라에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시행령으로 모든 법과 정의를 무력화시키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재벌들은 어떤 잘못을 해도 괜찮은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언론이라는 탈을 쓴 쓰레기들이 더 이상 정의를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추신수가 그렇게 돈을 많이 받고 공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유재석이 그렇게 돈을 많이 받고 텔레비전에 나와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너희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한다. 오해는 마시라. 추신수나 유재석이 싫거나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너희도 저들처럼 될 수 있으니 우선 내가 주고 있는 쥐꼬리만한 돈을 받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하는 놈들이 나쁘다는 뜻이다. 그렇게 부추기는 매스컴이 나쁘다는 뜻이다. 세상이 이 모양인데, 그래도 살만 한 세상이니 희망을 가지라고 늘 떠들어 대고 있는 게 싫다는 것이다.


이래도 희망이 좋기만 한 것인가? 희망에는 절망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절망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절망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키에르케골선생이 오래 전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는가? 희망 중에 100에 99는 실망으로 바뀐다. 아니 천에 999, 만에 9,999는 다 실망으로 바뀌고 곧 절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이명박이가 가진 재산이 십원짜리 하나 없이 깡그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박정희가 했던 친일행각, 독재행각, 살인행각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온 국민이 그를 제대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이승만이가 하와이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대통령으로서 했던 온갖 악행들을 온 국민이 다 알았으면 좋겠다. 박근혜가, 남경필이가, 김무성이가, 김문수가, 반기문이가, 조원진이가, 홍문종이가, 최경환이가, 안철수가, 기타 등등 이런 개같은 새끼들이 이제 그만 지구를 떠났으면 좋겠다. 그게 내 희망이다. 과연 내 희망이 이루어질까?


희망이란, 지배자들이, 그것도 악독한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착취하면서, 계속 잘 착취하기 위해 던지는, ‘너희들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냐’고 말하는 착취수단일 뿐이다. ‘너희들도 노력하면 유재석이처럼 될 수 있다’ ‘너희들도 노력하면 추신수, 유현진이처럼 될 수 있다’ ‘너희들도 노력하면 동방신기나 소녀시대가 될 수 있다’ ‘너희들도 노력하면 의사도, 판사도,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구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헛된 희망을 버려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그런 헛된 희망에 속아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그런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빼앗긴 것들을 요구해야 한다. 희망을 버리고,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을 더 이상 희망하지 않아도 좋게 해야 하지 않겠나.


30. 시시포스(Sisyphus)


제우스는 인간 편에 섰던 프로메테우스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다가 결국은 코카서스 산정에 묶어 버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지금부터는 제우스가 가장 미워한 인간, 시시포스 이야기를 하자.

시시포스는 유대신화를 통해 ‘고린도’라고 알려진 도시 코린토스를 창건하고 다스리던 왕이다. 제우스가 이 시시포스를 미워하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다.


전령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 헤르메스는 태어나자마자 그 이름에 걸맞게 도둑질을 한다. 형인 아폴론이 아끼던 소를 훔친 것이다. 아폴론의 소를 훔쳐, 꼬리에 빗자루를 달아 끌고감으로써 그 흔적을 없앴다. 범인이 누군지 오리무중일 때, 대가리 좋은 시시포스가, 그때까지 강보에 싸여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헤르메스의 발에 흙이 묻은 것을 보고는 그가 범인임을 지목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소의 흔적을 없앴는지까지 소상히 밝혀냈다. 소를 되찾은 아폴론은 기뻐했지만 제우스는 이때부터 시시포스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감히 인간이 신의 일에 참견을 하니 말이다. 게다가 아무리 도둑질을 했어도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귀여운 아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두 번째 사건은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하여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인 아이기나를 납치한 일이 있었다. 물론 자빠뜨리기 위해서다. 이를 다 지켜본 시시포스가 아소포스에게 가서 이 모두를 일러바치면서 댓가로 코린토스 땅에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아소포스는 그렇게 해주었다. 그래서 물이 귀하던 코린토스 땅이 물 걱정을 안 해도 되게 되었다고 한다. 아소포스는 제우스에게 가서 따졌고, 제우스는 아주 쪽을 판 것이다. 제우스가 결정적으로 시시포스를 미워하게 된 사건이다.


제우스가 삐쳤다. 타나토스를 불렀다. 타나토스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의 심부름꾼이다. 하데스가 우리의 염라대왕이라면, 타나토스는 저승사자쯤 된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타나토스는 시시포스를 잡으러 갔다. 이때부터 타나토스와 시시포스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된다. 저승으로 잡아다 놓으면 이상한 핑계를 대어 다시 살아나고, 다시 잡으러 갔더니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시간만 보낸다. 결국 시시포스는 제 명대로 다 살다가 늙어서 기운이 없어졌을 때에야 타나토스를 따라 저승으로 갔다. 그때에야 죽어준 것이다.

제우스는 많이 삐쳤다. 지하세계에서, 아주 높은 산의 꼭대기까지, 아주 큰 바윗돌을 굴려 올리는 벌을 주었다. 겨우겨우 꼭대기까지 올려다 놓으면 그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가 버린다. 한 시도 쉬지 못하고 끝도 없는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쓴 호메로스는 시시포스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자’라고 했고, 알베르 카뮈는 그를 ‘인간의 실존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자’라고 했다. 나는 모르겠다. 아폴론의 소 사건은 잘 모르겠지만, 남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그것을 일러바치고, 그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 현명하고 신중한 일인가? 그것이 인간의 실존인가? 죽음을 맞이하여 온갖 꼼수로 그 죽음을 피하고 좀 더 오래 사는 것이 현명하고 인간의 실존인가? 물론 까뮈가 시시포스를 ‘인간의 실존을 대변하는 자’라고 한 것은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리는 노동을 해야 하는 운명을 두고 한 말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런 호메로스나 까뮈의 말에 선뜩 동의하기는 좀 어렵다. 아무래도 서양 애들의 사고방식과 나의 사고방식은 잘 맞지 않는 면이 있나보다. 여하튼 시시포스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실존을 대변한다니까 그렇게 알고 있자.


31. 오이디푸스(Oedipus)


엘렉트라 이야기를 하면서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다음에 하자고 미룬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지금 하자.

테베에 라이오스라는 왕과 이오카스테라는 왕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었는데 어찌어찌 아들을 하나 낳았다. 기쁜 마음에 신탁을 받아보니, 청천벽력같은 신탁이 내렸다.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왕은 애 발목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어 양치기에게 건네주며 산에 갖다 버리라고 했다. 애를 받아 든 양치기는 애가 불쌍하여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웃 나라인 코린토스 양치기에게 그 아이를 주었다. 코린토스 양치기는 그 아이를 그 나라 왕에게 다시 주었다. 왕은 그 아이를 길렀다. 아이 발목에 구멍이 뚫려서 발이 퉁퉁 부어 있어서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지었다. ‘발목이 부은 자’라는 뜻이다. 참고로, 유대신화에서 야곱은 쌍둥이 형인 에서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 그래서 이름이 ‘발목을 잡은 자’라는 뜻의 야곱이다.


나중에 오이디푸스가 자라서 신탁을 받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신탁이 나왔다. 오이디푸스는 깜짝 놀랐다. 오이디푸스는 그때까지도 코린토스 왕과 왕비를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라를 떠나면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코린토스를 떠난다.


그리고 테베 땅으로 넘어온 그는 우연히 길을 가던 중 마차와 시비가 붙어 마차 주인과 마차를 몰던 사람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이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바로 테베의 왕이자 오이디푸스 자신의 진짜 아버지인 라이오스였다.

당시 테베 땅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나타나 길 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있었다. 이 스핑크스는 이집트 피라미드를 지키는 그 스핑크스가 아니라,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사자인 그리스의 스핑크스이다. 이 스핑크스는 테베 도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신전의 높은 기둥 위에 앉아, 길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죽여 버리는 괴물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정답을 말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는 이 스핑크스 문제의 해결책을 물으러 델포이 신전으로 가던 길에 오이디푸스에게 맞아 죽고 말았던 것이다.


왕이 죽자 테베 시민들은, 혼자 남은 왕비를 아내로 주고 왕으로 모시겠다는 조건을 걸고 그 스핑크스를 없애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라이오스를 죽인 오이디푸스가 이 소식을 듣고 스핑크스와 대적하러 갔다. 스핑크스와 마주한 오이디푸스에게 스핑크스가 문제를 냈다.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대가리가 좋거나, 이런 수수께끼를 푸는 데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사람이다. 어려서는 네 발로 기고, 젊을 적엔 서서 걷고, 나이 들어서는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말하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굳어버렸다.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고 왕비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을 할 것이라는 신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라는 심리학자가 나타나, 사내아이는 누구나 자신의 엄마에게 무의식적인 성욕을 느끼고, 아버지를 적으로 간주하여 질투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감정이 있다는 이상야릇한 말을 하며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라고 했다. 나는 모르겠다. 서양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동양인에게서 이런 심리상태를 본 적은 없다. 여하튼 이런 심리상태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고, 반대로 여자 아이가 아빠에게 사랑을 느끼고 엄마를 죽이고 싶어 하는 심리를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했다. 그런 게 있든지 없든지 그렇단다.


이후,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세월이 흘러 이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충격을 받아 자살을 하고 만다. 오이디푸스는 다시는 태양빛을 보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눈알을 뽑아 버린다. 그리고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테베에서 쫓겨나 방랑길에 오른다. 그리고 이 방랑길에 오른 오이디푸스를, 그가 죽을 때까지 딸인 안티고네가 모시고 다닌다. 인당수에 빠져죽은 심청이에 비견되는 서양의 효녀이다. 이것도 외워 두시라. 서양의 심청이는 안티고네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춘향이는? 트로이 전쟁에 나간 남편 오뒤세우스를 20년간이나 기다린 그의 아내 페넬로페이다. 이제 이 페넬로페 이야기를 하자.


32. 오뒤세우스와 페넬로페


페넬로페의 남편은 오뒤세우스이다. 오뒤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 그리스 편에서 싸웠다. 10년간의 전쟁에서 이겨 그는 고행인 이타까로 돌아간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 편은 들던 아프로디테와 포세이돈의 미움을 받아, 그는 고향 땅에 도착하는데 또 10년이 걸리게 된다.

페넬로페 입장에서는 남편이 전쟁에 나가 20년간이나 돌아오지를 않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오뒤세우스가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오뒤세우스가 전쟁에 나간 시기는 페넬로페와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막 아들을 하나 낳았을 뿐이었다. 즉, 신혼에 남편이 집을 떠나 20년간이나 돌아오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왕궁은 어느덧 구혼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들은 오뒤세우스의 집에 머물며, 오뒤세우스의 재산을 축내면서 페넬로페가 자신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오뒤세우스가 떠나기 전에 낳았던 아들은 어느덧 장성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텔레마코스라고 하는데, ‘멀리서 싸우는 자’라는 뜻이다.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어머니의 구혼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등쌀을 이기기 힘들었다. 그녀는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연로하신 시아버지의 수의 한 벌만 지어드리고 나서, 여러분들 중 한 분을 선택해 결혼을 하겠어요.”

그리하여 그녀는 오뒤세우스 아버지의 수의를 짰다. 하지만 그녀는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짰던 수의를 풀고, 낮에는 다시 수의를 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오뒤세우스는 트로이아에서 고향 이타까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과 모험을 하게 된다. 연을 먹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고향을 잊게도 되고, 부하들이 모두 다 돼지로 변하기도 하고,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세이렌의 노래 소리를 듣기도 하고,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되기도 한다. 이런 고난과 모험이 또 십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말이 좋아 고난과 모험이지, 십 년간이나 이곳저곳 다니며 노략질과 해적질을 하고 다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 집으로 돌아온 오뒤세우스는 아들 텔레마코스와 같이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페넬로페와 재회하여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트로이 전쟁의 일부를 이야기 한 것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이고, 오뒤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오뒤세이’이다.

20년간이나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남편을 기다린 페넬로페를 서양 최고의 열녀로 꼽으니, 우리의 춘향이 아가씨에게 비교할 만한 것이다. 심청이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춘향이는 오뒤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 외워두면 구라치기 좋다.